내용요약 與 “이재명, 사법리스크 피하기 위한 방탄용 단식” 비판
여권 내 일각선 “반쪽짜리 단식일지라도 정치적 도의해야”
민주 “비정한 정부…YS‧DJ 때는 의례적으로라도 걱정했다”
“보수, 진보 넘어 모든 면에서 적대적 관계…정치실종 상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투쟁천막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박수연 기자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단식투쟁천막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박수연 기자

[한스경제=박수연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단식에 돌입한지 14일째이지만 정부‧여당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가 실종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달 31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능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 이 대표는 단식투쟁에 앞서 윤석열 정권을 향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사죄와 △국민중심 국정방향 전환 △일본의 핵오염수 방류에 대한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제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단행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단식이 14일째에 돌입한 13일까지도 정부와 여당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당은 이 대표의 단식이 사법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방탄단식’이라고 비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를 향해 “수사에 앞서 단식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민주투사 코스프레로 부끄러운 혐의를 포장하며 소속 의원들로 하여금 사법시스템에 모욕을 주는 게 이 대표가 약속한 당당한 태도라면 국민들의 이해와는 그 의미가 한참 다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쌍방울 그룹의 대북송금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대표는 지난 9일과 12일 단식 중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아무도 강권하지 않은 단식쇼로 인한 동정이 아닌 후안무치에 대한 '괘씸죄'가 추가돼야 할 판"이라고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 대표의 만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김 대표는 에둘러 거절했다. 12일 양향자 한국의희망 공동대표는 김기현 대표를 만나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가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정면충돌하려 한다"며 "여당이 나서야 할 때다. 김기현 대표가 역할을 해 줘야 한다"고 이 대표와의 만남을 제안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비공개로 만나고 공개토론을 하자, TV토론하자 여러 차례 제언했다. 그런데 본인 쪽에서 만나자는 것에 대해서 명확한 답이 없어서 미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만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원인을 이 대표 측으로 돌렸다.

같은 날 대통령실도 이 대표의 단식과 관련 "정치현안에 대해선 언급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선을 그었다.

◆ 과거 야당 대표들의 ‘단식투쟁’ 어땠나

정부와 여당의 무반응과 단식 중 검찰 소환 조사 등에 민주당은 ‘비정한 정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조정식 민주당 사무총장은 12일 의원총회에서 “과거 여당은 야당 대표가 단식하면 걱정하는 척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조롱과 비난으로 도배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김영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은 YTN 라디오에 출연해 “2019년 11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했을 때,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현 광주시장)이 매일 나가서 안부를 물었다. 비서실장이나 국무총리까지 와서 걱정 하면서 ‘대화로 푸는 게 좋지 않냐’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일절 그런(만남성사)게 없는 상황”이라며 “좀 비정한 정부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황 전 대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등을 주장하며 8일간 단식에 나선 적이 있는데, 당시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 이어 이낙연 전 국무총리까지 황 전 대표를 찾아 단식 중단을 권유한 바 있다.

2019년 11월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청와대앞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 연합뉴스
2019년 11월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청와대앞 농성장을 찾은 나경원 원내대표./ 연합뉴스

여권 내에서도 국민의힘 지도부가 '정치적 도의'는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성태 전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반쪽짜리 단식이라도 우리는 집권당이니 국정운영에 무한한 책임이 있다"며 "국민의힘 지도부 입장에서 이 대표가 생명이 위독해지고 극한 상황이 아니라도 정치적 도리는 일정 부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전 의원 역시 2018년 5월 ‘드루킹 댓글 사건 특검’을 요구하며 총 9일 간의 단식투쟁을 벌였을 때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우원식 의원이 김 전 의원을 찾아 단식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이 외에도 2016년 10월,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단식에 돌입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당시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찾았다. 이처럼 과거에는 정부 및 여당이 단식 중인 야당 대표를 찾는 것이 ‘의례적’이었다.

2014년 세월호 특별법 지정을 놓고 단식투쟁에 돌입했던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당 최고위서 “과거 YS(김영삼 전 대통령), DJ(김대중 전 대통령) 등 야당 지도자의 단식 때에는 의례적으로라도 정부와 여당이 걱정하는 척이라도 하고 때로는 극적인 타협이 이뤄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야당 대표의 단식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이런 비인간적인 정권은 처음 본다”고 지적했다.

여야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협치는 멀어지고 국회가 ‘민생’을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상병 시사평론가는 현 상황을 놓고 “정치가 이미 실종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정치가 됐다”며 “여야를 떠나 아무리 나쁜 정당, 좋은 정당일지라도 동료 의원이 열흘 이상 단식을 하고 있다면 가서 손이라도 한 번 잡아주는 것이 도리”라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영남당과 호남당의 양분이 이제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 모든 면에서 적대적 관계가 돼버렸다”며 “민생은 여야가 협치하고 머리를 맞댈 때 챙길 수 있는데, 지금은 말만 ‘민생’이지 실질적으로는 내년 총선을 위한 표밭에 마음이 가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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