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부채 상환 위해 화석연료 프로젝트 강요 당하는 국가들 우려 
'부채 정의' 추구하는 NGO "화석연료 프로젝트 관련 모든 부채 취소해야" 
남반구 54개 국가, 기후위기 대응보다 부채 상환에 더 많은 비용 지출
'부채 정의'를 추구하는 비정부기구(NGO) 'Debt Justice'가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전 세계 남반구 국가들의 부채는 150% 증가했다. 그 중 54개 국가가 부채 위기에 처해 기후위기 해결보다 부채 상환에 5배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부채 정의'를 추구하는 비정부기구(NGO) 'Debt Justice'가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전 세계 남반구 국가들의 부채는 150% 증가했다. 그 중 54개 국가가 부채 위기에 처해 기후위기 해결보다 부채 상환에 5배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스경제=김동용 기자] 부유한 국가들과 민간 대출 기관이 부채가 많은 국가들을 화석 연료에 의존하도록 "덫"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채 상환을 위해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강요받는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라는 비판이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부채 정의'를 추구하는 비정부기구(NGO) 'Debt Justice'는 최근 연구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Debt Justice'는 채권자들이 위기에 직면한 국가, 그 중에서도 특히 화석연료 프로젝트와 관련된 부채는 모두 취소할 것을 촉구했다. 

'Debt Justice'의 수석 정책 책임자인 테스 울펜덴(Tess Woolfenden)은 "높은 부채 수준은 많은 남미 국가들이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국가들이 부채 상환을 위해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덫에 갇혀 있다"며 "심지어 화석연료 프로젝트는 종종 기대했던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시작하던 시점보다 더 큰 부채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이 '독'같은 함정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전 세계 남반구 국가들의 부채는 150% 증가했다. 그 중 54개 국가가 부채 위기에 처해 기후위기 해결보다 부채 상환에 5배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들은 태풍과 홍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더 많은 부채를 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홍수 피해를 입은 파키스탄에 제공된 100억 달러(약 13조 4000억원)는 대부분 대출 형태로 지원됐으며, 도미니카공화국은 2017년 허리케인으로 피해를 입은 뒤, 국내총생산(GDP) 중 부채 비중이 68%에서 78%로 증가했다. 

보고서는 "기후와 부채 위기는 이윤과 탐욕을 채우기 위해 인간, 경제, 환경 자원을 가차없이 추출하는 주요국들의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며 "부채 탕감은 부유한 국가들과 대출 기관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촉구했다.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환경단체 '유스티사 앰비언탈'(Justiça Ambiental)의 캠페인 코디네이터인 다니엘 리베이로(Daniel Ribeiro)는 모잠비크가 2013년 가스전 발견에 따른 수익 예측을 토대로 런전에 본사를 둔 은행에서 의회의 허가 없이 대출을 받아 부채 부담이 2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리베이로는 "2014~2016년 유가와 가스 가격이 하락하면서 모잠비크는 부채 위기에 빠졌지만, 국제 대출 기관이 모잠비크를 구제하기 위한 제시한 해결책은 미래의 가스 수입을 통해 상환되는 대출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화석연료로 인한 부채를 화석연료로 갚아야 하는 구조"라며 "(환경 문제를 생각하면) 화석연료만 계속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악순환이 고착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중남미 국가 수리남도 채무 불이행 후 모잠비크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다. 지난 2020년 채권자들은 오는 2050년까지 수리남 석유 수입 30%가량에 대한 권리를 갖는 계약에 합의했다. 

이 합의를 두고 수리남 시민사회 단체인 프로젝타(Projekta)의 관계자는 "(당초 구상은) 채권자들과 수리남의 계약이 기후 공약 내에서 이뤄지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의 부채가 지속 불가능하게 증가하면서 이제 부채는 모든 정책 결정을 지배하고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채권자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빨리 돈을 버는 것만이 최우선 과제가 됐고, 지속가능성이나 기후 정의 등은 더 이상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라고 토로했다. 

아르헨티나 환경 및  천연자원 재단(Farn)의 투자·권리 운동가인 레안드로 고메즈(Leandro Gómez)는 "아르헨티나가 (부채로 인해)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권을 박탈당했다"며 "(부채를 빨리 상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석연료 회사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스개발 프로젝트를 장려하고, (기존에 계획했던)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 연합뉴스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앞서 지난 6월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수장이 "기후 위기로 타격을 입은 가난한 국가들이 엄청난 부채 상환으로 어려움을 겪어서는 안 된다"며 주요국들의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IMF 총재는 6월 20일 당시 새로운 글로벌 금융 협정에 관한 세계정상회담을 앞두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상이변에 고통 받는 국가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기후위기로 인한 충격으로 (재정적) 타격을 입었을 때 우리(IMF)는 해당 국가들이 부채 상환 의무를 충당하기 위한 자금을 제공한다"며 "이러한 문제에 대해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 기후위기가 가난한 국가나 극빈층에 더 타격을 입힌다는 주장은 다양한 연구보고서에서 다뤄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2월 내놓은 '제6차 평가보고서' 중 '제2 실무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 생산에 타격을 입혔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미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는 이른바 '기후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취약한 지역의 사람들은 덜 취약한 지역의 사람들에 비해 홍수나 해수면 상승 등으로 사망할 확률이 15배나 더 높았다. 

보고서는 "폭우·열대성 저기압·가뭄이 빈번해지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던 곳에서 떠나도록 내몰 것"이라며 "평등·기후 정의를 기반으로 사람과 자연이 지속 가능하게 기후 변화의 영향에 대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촉구했다. 

 

김동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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