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박종훈 기자] 대표적 규제산업인 은행업은 금융업 전반에서도 가장 벽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최근엔 비대면 거래 증가로 영업점이 줄어들며 금융 소외 문제가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인 은행 대리업 규제완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은행의 본업에 대한 위탁을 허용하는 것은, 단순히 각 은행과 고객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이는 금융산업 전반의 구조를 바꾸는 시도이며, 소비자 편의성 제고에필요한 일이다. 이용주체별 긍정적인 측면만 바라보자면 결국 이는 금융 활성화와 소비자 편의성 제고에 크게 기여하는 일이다. 하지만 가장 큰 난관은 ‘리스크’ 통제를 위한 규제 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다.
국내 4대 은행의 영업점 축소는 지속적이다. 출장소를 포함해 지난 2018년 3563개이던 오프라인 점포는 2020년엔 3303개로 줄었다. 2022년에는 3000개의 벽도 뚫려 2883개를 기록했다.
이 같은 감소는 비대면 금융거래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은행의 입장에선 효율성 제고와 비용절감이란 두 가지 토끼를 잡고 있는 것이다.
금융산업 전반을 주관해야 할 금융 당국은 이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여하한 방법을 동원한다고 해도, 가장 확실한 방안인 대체점포를 도입하는 것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추세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겪고 있는 상황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일찌감치 은행 대리업 제도를 선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미 지난 2002년 제도를 도입했으 2005년에 은행법 개정으로 이를 보완했다.
왜냐하면 2002년 도입된 제도가 출자규제·전업의무·대리업무 제한 등으로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출자규제는 은행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한정하는 내용이며, 대리업무 이외의 업무 겸영을 금지하는 전업의무 규제도 있었다. 이와 같은 규제가 다시 은행 대리업 자체의 활성화에 제한이 되자 제도를 개정한 것이다.
개정된 일본 은행법 제2조에선 은행대리업을 “은행대리점의 업무는 ①예금 또는 정기적금 등의 수입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의 체결의 대리 또는 매개 ②자금 대출 내지 어음 할인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의 체결의 대리 또는 매개 ③외환거래를 내용으로 하는 계약의 체결 대리 또는 매개”라고 정의하고 있다.
출자규제와 전업의무를 철폐해 은행 대리업 진입 유연성을 확보했고 위탁 은행의 책임 의무를 강화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일반 사업자가 은행 대리업에 진입할 때 출자 관계를 요하지 않으며, 금융 당국의 허가로 적격여부를 심사하되 금융업을 영위하고 있는 자는 신고제로 유연성을 확보한 것이다. 또 은행은 대리업자 지도 및 감독 의무와 대리업자가 은행 대리 행위로 고객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실제 이와 같은 규제 완화로 일본은 은행업의 유형이 다양해졌다. 저성장 장기화로 은행은 비용절감과 수익성 확보를 위해 점포 수를 줄이는 한편, 판매 채널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은행 대리업을 활용하고 있다.
우선 은행들이 자회사를 설립하는 유협이 대표적이다. 중소금융이나 모기지 등, 특정 분야의 전문성과 영업력을 높이고 영업점 효율화를 목적으로 은행들이 자회사를 설립해 대리업을 영위하는 것이다. 미쓰비시 UFJ 은행은 자회사를 설립해 매출 100억엔 미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대출, 예금, 외환거래 상담 및 중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터넷은행 Au 지분은 ‘Au 파이낸셜 서비스’란 자회사를 설립해 업무를 위탁하고 있다.
소니그룹은 자회사 ‘소니 라이프 파이프플래너’를 설립해 소니뱅크의 은행 대리점 사업 라이선스를 2007년 취득해, 소니뱅크 모기지 상품 중개 및 계좌 개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이와증권은 다이와넥스트은행 대리로 예금 수령이나 외환거래 계약을 중개하고 있다.
편의점 ATM을 운영하는 인뱅 세븐은행은 SMBC, 리소나은행, 치바은행 등과 제휴를 맺고 대리업무를 진행한다. SBI스미신넷은행은 후쿠시마은행 등과 대리업 계약을 체결하고 이들 영업점을 활용해 대리업자 전용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그밖에도 은행이 유통·통신 등 비금융회사에 은행 대리점을 두는 등의 협력도 나오고 있다. 판매채널 확장과 함께 이종 산업 결합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한 것이다.
MUFG가 미사와홈 주식회사의 자회사와 대리점 위탁 계약을 맺고, 미사와 주택 소유자에게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중개한다. 라쿠텐은행은 부동산 컨설팅기업 &Do홀딩스 자회사 파이낸셜Do를 은행 대리인으로 두고 50세 이상 대상 역모기지 상품을 판매한다.
호주는 은행 지점 축소로 인한 지역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995년부터 우체국 대리점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대륙 전역 3500여개 우체국이 80개 이상 은행 업무를 대리 수행하는 ‘뱅크@포스트’ 서비스다.
선진국의 사례가 비용절감이나 새 판매채널 확장을 위한 시도라면, 개발도상국에선 낙후 지역의 금융포용 확대를 위해 이와 같은 고려가 이뤄진다.
방글라데시의 은행 대리점 가이드라인은 지난 2013년 발표 이후, 전체 은행 대리점의 88%가 농촌 지역에서 운영 중인 것만 봐도 잘 드러난다. 2022년 기준 31개 시중은행이 1만 5126개 은행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하고 운영 중인데,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리점이 96.1% 증가한 점은 시사할 만하다. 또한 말레이시아, 인도, 브라질, 남아공 등도 은행이 주도해 은행 대리업 부문이 확대됐다.
케냐나 필리핀 등의 국가에선 통신회사가 주축이 되어 은행 대리업을 영위 중이다. 모바일 머니 서비스를 중심으로 가맹 동네 소매상점이나 잡화점 등에서 계좌 개설과 입금 등의 이용이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각국이 처한 금융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금융접근성 확대’라는 본연의 취지는 글로벌 추세이다. 금융 앱이 아니라, 여타 서비스 앱에서 은행 업무 등의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는 임베디드금융 역시 트렌드다. ICT 기술의 발달로 많은 혁신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이처럼 금융과 비금융 산업의 융합은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고은아 연구위원은 “다만 은행 업무 대리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 통제를 위한 관련 규제 정비 및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은행 대리점이 다양한 형태로 은행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기성의 전통 은행 지점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보다 잠재적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신용리스크·운영리스크·법률리스크·유동성리스크·평판리스크·시장리스크 등 다양하다.
은행 대리업자의 진입규제나 영업행위 규제 등의 내용은 제도의 변화와 함께 금융 당국이 주력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은행의 위탁자 관리와 책임에 대한 역할도 커져야 한다. 이와 같은 대비는 넓은 의미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고 연구위원은 “호주, 일본이 우체국을 대리인으로 하여 낙후지역의 금융접근성을 보완하고 있는 것처럼 국내도 지방에 네트워크가 발달한 우체국의 은행 대리점 역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특히 대면 창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은행 대리인 계약을 체결한 증권사나 타 은행 영업점에서 단순 은행업무를 처리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반복해 강조되어야 할 지점은 ‘리스크 관리’다. 특히 최근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등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삽시간에 번져나가는 뱅크런 상황이라든지, 부동산 PF 대출 부실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비은행예금취급기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사전에 철저한 대비 없이 규제 벽을 허무는 것은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박종훈 기자 plisilla@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