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최근 집중호우 직전까지 도시 침수·하천 범람 대책 방치
여야, 국회 계류 중인 각종 수해방지법 처리…사후약방문식 대응 되풀이
공론화·비판 여론 생기면 뒤늦게 합의…전세사기·정인이 사건 대표적
국회의사당 본청 전경. /김근현 기자
국회의사당 본청 전경. /김근현 기자

[한스경제=김동수 기자] 21대 국회가 ‘뒷북 대응’이란 오명으로 얼룩지고 있다. 여야가 최근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집중호우로 장기간 계류된 수해방지법을 우선 처리하겠다고 뜻을 모았지만, 참사 뒤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어서다. 국회의 사후약방문식 법안 처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전세사기 특별법’이나 ‘정인이법’ 등 그동안 법안은 발의해 놓고 뒷짐 지다 공론화에 뒤늦게 처리한 경우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 여야, 향후 국회서 수해방지법 처리 공감대 형성

여야는 국회에 계류된 각종 수해방지법을 향후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국 각지에서 집중호우로 40여명이 목숨을 잃고 1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하자 그동안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도시 침수와 하천 범람 방지 대책 법안을 신속하게 심의하겠다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피해 복구 지원도 중요하지만 향후 재난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각종 수해방지법안을 8월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에는 이미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도시 침수와 하천 범람 방지 대책 법안이 많다”며 “우선 이 법안들을 신속하게 심의해서 8월 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기를 여당에 제안한다”고 밝혔다.

여당 역시 민주당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국민의힘은 여야가 국회 상임위 일정까지 조정하며 정쟁을 멈추고 수해 복구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을 환영했다. 아울러 이달 말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관련법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다음날 원대책회의에서 “당장 7월 말에 예정된 본회의에서 수해 관련 대응 법안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양극화 시대 한국의 민주주의의 발전방안’ 출판기념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양극화 시대 한국의 민주주의의 발전방안’ 출판기념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세사기·정인이 사건 등 참사 발생하면 뒷북 법안 처리

정치권이 향후 국회에서 최우선으로 수해방지법을 처리한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여야가 참사 때까지 뒷짐만 지다가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1대 국회에는 이미 재난안전 기본법과 하천법 개정안, 건축법 개정안 등 다수의 수해대책 관련 법안이 쏟아진 바 있다. 특히 해당 법안들은 지난 2021년 국회에 발의되거나 지난해 태풍 힌남노 피해로 재해를 막겠다고 여야 의원들이 내놓은 대책이다. 하지만 46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20일 오전 6시 기준)되는 참사가 발생하자 그제야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겠다는 정치권의 행보는 전형적인 뒷북 대응이라는 평가다.

문제는 사후약방문식 법안 처리가 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회적 이슈가 커지거나 여론의 비판에 밀려 뒤늦게 국회 논의 테이블에 법안을 올리는 예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상반기 국회가 처리한 ‘전세사기 특별법’이다.

지난해 2월부터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생활고를 이유로 잇달아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전세사기 특별법은 석 달이 지난 5월에서야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같이 전세사기를 방지할 법안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상당수가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국회가 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셈이다.

‘정인이법’ 역시 마찬가지다. 21대 국회에는 임기 시작 해인 2020년 말까지 30건에 달하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당시 단 한 것도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후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양부모 학대로 숨지는 일명 ‘정인이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자, 여야는 아동학대 방지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합의한 후 2021년 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문가는 양극화된 정치가 종식하지 않는 한 여야의 이러한 사후약방문식 법안 대응은 계속될 것으로 본다. 정치의 핵심 기능은 민생을 살피는 것인데, 지금처럼 여야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는 관련 논의나 협의가 불가능하다는 게 이유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우리 사회의 민생을 보듬는 것이 정치의 핵심인데, 이러한 기능이 현재 고장 난 상태로 여야는 대화도 못 하고 있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생과 관련된 논의나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극화된 정치가 종식되지 않는 한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될 때, 마치 사이렌을 키고 출동하는 소방차처럼 불을 끄러 나가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며 “여야가 상대방을 향해 ‘네 탓’ 공방 또는 정쟁보다는 민생 입법을 두고 경쟁하는 한편, 국민들도 이런 정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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