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둘러싼 갈등이 심상치 않다. 강행 처리를 예고한 야당과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밝힌 정부여당이 정면충돌한 양상이다. 전선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노동계와 경영계로 형성됐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강행하는 민주당과 입법권을 번번이 무력화하는 정부여당 모두 정파 논리에만 매몰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이 노란봉투법과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놓으면서 노동계와 경영계 간 대립은 한층 노골화됐다.

노조를 등에 업은 민주당과 경영계를 지지하는 국민의힘은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노란봉투법’ 핵심은 파업에 가담한 개별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노조와 달리하는 내용이다. 파업 주체인 노동조합과 개별 노동자 책임을 별도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앞세워 노조활동을 압박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입법됐다. 반면 재계와 경영계는 가뜩이나 불법 파업이 일상화된 마당에 노란봉투법은 기업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노동권 보장과 기업경영 침해가 맞붙은 셈이다.

지난달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 직 상정한 민주당은 의석수를 앞세워 무난한 통과를 예상하고 있다. 관건은 노란봉투법이 본래 취지를 상실한 채 정치쟁점화 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과 의료법, 방송법에 대해서도 대통령 거부권을 건의한다는 방침이다. 국회 입법권과 행정부 거부권이 맞선 모양새지만 총선을 앞둔 정치적 포석으로 이해하는 게 빠르다. 민주당이 대통령 거부권을 예상하면서 밀어붙이는 이유는 농민, 간호사에 이어 노동자 표심을 흔들 목적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만 보인다.

대법원 판결은 또 다른 파장을 불렀다. 대법원은 15일, 개별 조합원에게 불법 파업 책임을 묻는 것을 제한하는 판결을 했다. 2010년과 2013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점거사태와 관련한 소송에서 원심이 인정한 손해배상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개별 조합원 책임은 파업 가담 정도와 손해 기여도를 고려해야 하며, 노조와 동일한 책임을 전제로 50%를 부담시킨 건 부당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은 노동조합에서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를 미친 정도, 조합원 임금 수준과 배상 능력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면서 “개별 조합원의 책임 범위를 노조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경영계는 공동 불법행위의 균등책임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개별 조합원의 불법행위 가담 정도를 일일이 입증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10년 11~12월 생산라인을 점거해 278시간 조업을 중단시킨 조합원 4명을 상대로 현대차가 제기한 소송이다. 2심은 이들에 대해 20억 원의 배상을 판결했다.

극단적인 노사대립은 국가경쟁력에 걸림돌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공장을 건립하면서 최우선 고려하는 게 노사환경이다. 스웨덴은 세계 최고수준의 노사관계를 자랑한다. 린네대학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패러독스」에서 스웨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노조 신뢰는 매우 높다. 예테보리대학이 매년 공공기관과 시장 행위자를 대상으로 측정하는 신뢰도 조사에서 스웨덴 노조는 수년째 상위권에 있다. 2022년 조사에서도 노조 신뢰도는 교회와 동일했고 정당, 대기업, 은행보다 높았다. 어떤 이유에서 가능했을까. 저자는 높은 노조 가입율(70%)과 성숙한 노조활동을 들었다.

스웨덴 노조는 비정규직 차별 해소, 여성노동자 임금격차 축소, 업종 간 임금격차 해소, 파견직 근무자의 동일 임금적용과 노동환경개선에 앞장서왔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지 못할 경우 노노갈등은 불가피하다는 인식아래 연대임금제를 도입했다. 스웨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귀족, 특권노조에 대한 비판이 비등한 우리 현실과 비교하면 부러운 일이다. 노조간부들의 특권 내려놓기와 기업인을 존중하는 분위기도 다른 이유다. 스웨덴에서는 임기를 마친 노조위원장이 평노조원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또 기업인을 적이 아닌 국가 경제의 중요한 동반자로 인식한다.

최 교수는 “연대임금제는 노조에게는 사회적 존중과 인정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었고 기업들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노조가 존중받는 국가는 사회갈등이 낮고 국민 삶의 만족도는 높다. 나아가 사회 저변에서 상호 신뢰를 높게 한다”고 했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과 노조간부, 기업인들이 스웨덴을 다녀왔다. 노란봉투법을 계기로 노사문화를 근본적으로 재점검할 때다. 서로 존중하는 노사문화를 정립하되, 노동자와 경영계를 편 가르는 정치행태를 멈춰야 한다. 우리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노사안정은 절대적이다. 스웨덴에서 보고 온 것은 무엇인가.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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