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일본 7월23일부터 우호 국가 이외 나라에 반도체 23개 품목 수출 제한
중국 "양국 기업 이익과 무역관계 해칠 것"
한국도 대중국 규제 동참 압박 받아 미중 사이 입장 난처
미국 반도체지원법. /미국 상무부
미국 반도체지원법. /미국 상무부

[한스경제=노이서 기자]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는 가운데 일본 정부도 미국의 대중국 규제에 본격 동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어 한국 기업과 정부의 입장만 더 난처해졌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오는 7월23일부터 한국과 미국 등 우호 국가를 제외한 국가에 첨단 반도체 관련 23개 품목을 수출하는 것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 수출이 필요할 경우 경제산업성에 관련 허가를 받아야 한다.

23개 품목에는 반도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첨단 반도체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작에 필수로 사용되는 식각장치, 열처리 및 박막 등 설비가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월31일에 처음 반도체 수출 규제 관련 개정안을 공개했으며, 약 두 달 동안의 의견수렴을 거쳐 5월23일 최종안을 확정했다. 

특히 규제 정책의 목적은 첨단 기술이 군사적 목적에 사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며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대중국 압박에 본격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을 일제히 내놓고 있다. 닛케이신문에서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즉시 반발에 나섰다. 가오펑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일본의 규제 발표 당일 “중국 기업과 관련 기관들이 그 동안 일본 정부에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아무런 응답을 듣지 못했다”며 “이 규제 조치는 중일 양국 기업의 이익을 해치고 무역관계를 훼손할 것이며 전 세계 반도체 산업구조와 공급망을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요청으로 네덜란드와 일본까지 중국 규제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도 동참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현지시각 23일 마이크 갤러거 미국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미국의 동맹 한국은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최근 중국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세계 3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꼽히는 미국 마이크론의 제품 구매 중단을 결정한 것을 놓고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마이크론 빈자리를 채우면 안 된다고 압박한 것이다.

중국에 대규모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한국 기업으로서는 난처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만약 미국과 노선을 함께 하면 마이크론에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의 규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은 일본, 네덜란드와 달리 미국의 노력에 힘을 보태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장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심해질수록 한국 반도체 업체들도 고통스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가운데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 관보에 따르면 최근 우리 정부가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안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했다. 규정안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현지 생산능력을 짓는 대신 ‘우려국가’에서 ‘첨단 반도체’를 10년간 5% 이상, 그 이전 세대인 ‘범용 반도체’를 10년간 10% 이상 증산할 경우 보조금을 환수한다. 

관보에 올라온 의견서 공개본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가드레일 조항을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부당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설정하면 안 된다”며 일부 키워드의 정의를 재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업계에서는 한국 정부가 첨단 반도체의 증설 범위를 5%에서 10%로 늘려달라고도 용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한국반도체산업협회(KSIA)도 미국 정부에 관련해 의견서를 제출했다. 다만 중국 정부가 보안 이슈를 들이밀며 마이크론 제품 구매 중단 조치를 내리는 등 반격을 가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 업계와 정부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첨단 반도체를 제외하면 미국도 중국과의 무역거래나 협력을 모두 끊은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반도체 중에서도 범용 반도체와 같이 경쟁 필요성이 떨어지는 분야에서는 한중 거래를 늘려가는 포지션을 잡고 동시에 미중 사이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이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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