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무역장벽'인 RE100...정부는 재생에너지 비중 하향조정
업계 "재생에너지 부족 전망"...전문가 "아직까진 충분"

[한스경제=정라진 기자] RE100(재생에너지 100%)이 또 다른 무역 장벽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내의 재생에너지 규모가 크지 않은 것에 비해 이를 늘려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췄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수출이 40%나 쪼그라들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그런데도 PPA(전력구매계약) 등을 활성화하고 CF100(원전포함 재생에너지100%)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이처럼 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마저 엇갈리는 상황 속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에너지 시장이 격변하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값싼 화석 연료의 시대는 저물고, 전 세계 화석 연료를 기반한 사업들은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부산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부산 신선대 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韓 재생에너지 비중 1.9%에 불과...환경규제는 이미 '무역장벽' 작용

올해 초 더 클라이밋 그룹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RE100에 가입한 기업은 334개사로 집계됐다. 이들은 2021년 최소 42%의 재생에너지를 소비했다. 

RE100 가입사가 속한 국가들 중 모나코가 전체 소비 전력의 427%가량을 재생에너지로 사용 중이다. 스위스(109%), 리히텐스타인(102%) 등 순이었다. 그에 반해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전체 소비 전력의 1.9%에 불과했다. OECD국가들 가운데서도 최하위였다. 

보고서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싱가포르가 재생에너지 조달에 있어 가장 힘든 시장이라고 봤다. 특히 "한국에서 RE100은 RE100 글로벌 정책 메시지를 기반으로 지역화된 정책 메시지 세트를 개발하기 위해 회원 및 전문 이해관계자와 협력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전력 구매 계약(PPA)에 대한 접근성 개선 요구 △국가 재생 에너지 목표 상향 등 기업 조달에 대한 시장 및 정책 장벽을 제거하는 데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우선 재생에너지 생산이 어려운 우리나라만의 지형적 특성과 한계가 존재한다. 좁은 국토면적과 높은 인구밀도, 수력·바이오 등의 잠재량 제한, 태양광·풍력에 불리한 구조 등 때문이다.

더불어 지난해 정부는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보급 목표를 기존 30.2%에서 21.6%로 하향조정했다. 목표치 달성이라는 부담은 덜었지만 업계에서는 2023년 재생에너지 보급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대표적으로 태양광 설비 보급의 감소를 예로 들수 있다. 에너지공단의 '2021년 신재생에너지 보급통계 확정치'에 따르면 2021년 태양광 신규 설비 보급은 약 3.9MW(메가와트)로, 2020년(4.6MW) 대비 약 16% 감소했다. 2022년 보급은 전년보다 더 감소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발전 용량이 2021년 4.4GW(기가와트)에서 2022년 3GW까지 줄어서다. 

재생에너지 보급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은 RE100에 꾸준히 가입 중이다. 지난해까지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27곳이 RE100을 선언했다. 

타 규제들과 달리 강제성이 없는, 자율규제임에도 RE100에 가입하는 이유는 환경 규제로 인해 수출길이 막힐까하는 우려에서다. 여기에 RE100에 참여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에도 RE100 준수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 가운데 대기업은 28.8%, 중견기업 9.5%가 글로벌 수요기업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았다. 

실제로 환경 관련 규제는 이미 무역장벽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기술표준원이 낸 ‘2021 무역기술장벽(TBT)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환경 분야 TBT 통보건수가 전년 대비 34% 증가해 총 542건을 기록했다. 전체 TBT의 21%가 환경 분야다. 

매들린 픽업 더 클라이밋 그룹 RE100 매니저는 한 컨퍼런스에서 "한국이 이런 기조에 따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2040년까지 한국의 주요 수출 사업이 4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 "국내 재생에너지 환경 열악"...전문가 "아직 충분해"
업계와 전문가들의 입장은 엇갈렸다. 업계는 재생에너지의 부족을 우려했지만 전문가는 아직까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박민철 SK하이닉스 부사장은 한 컨퍼런스에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에너지 소비가 재생에너지 공급량을 넘어선 상황"이며 "기업들의 RE100 합류로 당분간 재생에너지가 부족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황호송 삼성전자 상무도 "재생에너지가 저렴하고 가격이 예측 가능한 미국, 유럽, 중국에서는 이미 재생에너지 100% 조달 목표를 달성했지만 이와 달리 국내 재생에너지 환경은 열악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재생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는데 2030년 참여 기업이 늘어나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녹색프리미엄 입찰이 충분하다. 수요가 생기면 물량도 늘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냐. 물량은 지켜볼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태양광 패널./ 연합뉴스 
태양광 패널./ 연합뉴스 

아울러 RE100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며 CF100을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CF100을 (RE100)의 대체 개념으로 보지 않고 옵션 중 하나라고 보면 좋을 것"이라며 "관련 인증을 하게 되면 또 하나의 옵션이 생기는 것이다. 기업의 필요에 따라 원하는 인증 받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도 행정명령으로 정부 기관들은 CF100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PPA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RE100 가입사들 가운데 PPA은 사용되는 재생에너지의 전기의 35%를 차지했다. PPA는 전기사용자와 발전사업자가 정해진 계약기간 동안 사전에 협의한 가격으로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아직 PPA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전이 중개하는 제3자 PPA 계약은 3건, 기업간 직접 PPA는 4건에 불과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위원은 "PPA로 재생에너지 조달 가능하지만, 한전이 송전비용, 보안공급비용 과도하게 요구하고 있어 잘 이뤄지지 않는다. PPA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정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 역시 직접 PPA 활성화를 위해 기업에 외국과 같은 세액공제 혜택에 대해 고려할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또한 태양광의 경우 국가 주도의 입지 확보 뒤 RE100 전용 단지를 조성해 PPA 계약을 맺는 방법도 제시했다.

 

정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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