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더불어민주당 돈 봉투 전당대회 사건이 일파만파다. 그 배경으로 안일한 지도부 인식과 송영길 전 대표의 태도를 꼽지 않을 수 없다. 50만원은 밥값도 안 된다는 자기 합리화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 송 전 대표는 22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기 귀국과 함께 탈당 의사를 밝혔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와 송 전 대표의 상황 인식은 구멍 난 배를 대충 때우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초선 의원들만 위기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민주당 초선 의원 81명이 회원인 ‘더민초’는 앞서 송 전 대표에게 “당장 귀국해 실체를 밝히라”며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연일 공개되는 녹취 내용은 충격적이고 구체적이다. 이번 기회에 구태를 일소하고, 다시 태어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행히 송 전 대표가 조기 귀국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가라앉게 됐다. 하지만 송 전 대표는 추후 복당 의지를 언급해 위장 탈당이자 미봉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내 최대 모임인 ‘더좋은미래’도 19일 “송 전 대표가 귀국을 미루며 외국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건 전직 대표로서, 책임 있는 지도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비명계 강병원 의원은 “더 이상 민주당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스스로 결단하라”고 압박했다. 이병훈 의원도 “기자 간담회는 파리가 아니라 국민 앞에서 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송 전 대표의 조기 귀국 결정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은 비등하다. 송 전 대표가 자신은 돈 봉투 사건과 무관하며 선을 그었는데 설득력은 의문시된다.

송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은 돈 봉투 살포를 보고 받지 않았을 뿐더러 인지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또 검찰의 돈 봉투 수사를 정치행위로 간주한 채 지지층 여론에 기댔다. 당 지도부 또한 송 전 대표 입장에 동조하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윤관석·이성만 의원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당이 출당·탈당 조치할 경우 검찰 수사에 동조하는 모양새가 된다는 이유에서 “일단 지켜주자”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강래구 감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이 같은 움직임에 힘을 싣고 있다. 아직도 돈 봉투 사건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한 확증편향이 아닐 수 없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민주당 강성 의원과 지지층들 의식구조다. 이들은 여전히 돈 봉투 사건을 기획수사와 야당탄압으로 규정하고 있다. 장경태 의원은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돈”, 또 정성호 의원은 “기름 값, 식대 수준”이라며 안일한 인식수준을 드러냈다. 그렇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믿어야 위안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국민 여론과는 반대다. 심리학은 이러한 심리상태를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합리화하는 인지부조화로 설명한다. 지금 민주당 지도부와 강성 지지층 인식상태가 이러지 않나싶다.

돈 봉투 사건의 본질은 구태와 비민주적인 관행일 뿐이다. 돈 봉투 전말은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개인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는 서초지역위원장이자 송 전 대표 체제에서 사무부총장을 지냈다. 이씨의 녹취록에는 돈을 뿌리자고 공모한 정황은 물론이고 어떻게 돈을 마련하고 배분하고 전달할지가 담겼다. 이들은 자신들 표현대로 밥값에 불과한 돈으로 동료 의원을 매수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Q식 야당탄압을 주장하고 있다.

기업이라면 이런 경우 파산을 각오해야 한다. 미국 엔론 사태는 생생한 사례다. 직원만 2만 명에 달하며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았던 엔론은 2001년 8월, 회계 부정이 드러나 파산했다. 세계적인 기업들 또한 부패와 싸움을 통해 성장했다. 그러한 기업문화는 신뢰 자산으로 축적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인한다. 돈 봉투 전당대회는 민주당이 여전히 산업화 시대 부패관행에 머물러 있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것도 민주주의를 위해 청년시절을 헌신했다는 586세대가 주도했다.

위기 상황에서 어른의 책임과 역할은 소중하다. 민주당 원로라면 정치 공학적 이해타산을 뛰어넘어 죽비를 들어야 한다. 적임자로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는 당이 어려울 때 두 차례 비대위원장을 맡아 위기를 돌파한 경험이 있다. 그는 평소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입에 올렸기에 어른으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정 전 의장마저 강성 지지층의 공격이 두려워 관망한다면 당은 구렁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한때 위기에 처했던 기업들도 처절한 혁신을 통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났듯 정 전 의장이 나설 때다.

이와 함께 정치자금법을 현실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 자원봉사라는 관행 아래 불법은 불가피하기에 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당 회계감사 도입도 검토할 때다. 현행법은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일지라도 자산총액 500억 원 이상, 매출액 500억 원 이상, 그리고 자산총액 120억 원, 부채총액 70억 원, 매출액 100억 원, 종업원 100명 이상인 경우 2개 이상에 해당될 경우 외부감사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한데 정당은 매년 수백억 원에 달하는 돈을 집행함에도 제외돼 있다. 검은돈에 기대는 관행을 제도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임병식 정치전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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