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동용 기자] 지난 9일 유례없는 '국가적 재난' 수준의 폭우가 서울과 경기지역을 강타했다. 이날 하루 서울에 내린 비는 1907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15년 만에 가장 많았다. '미흡한 대처'를 꾸짖는 여론에 정부와 지자체는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다. 다만, 기상청이 '기록적 폭우'를 예보했던 만큼, 이번 대처가 적절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폭우로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한 주택 반지하에서는 모녀 등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침수차량들은 시동이 꺼진 채 곳곳에 방치됐고, 처참한 광경에 "무정부 상태를 보는 것 같다"는 비판 마저 나왔다. 수백명의 이재민들은 학교·체육관 등에 임시로 설치된 대피시설에 머물고 있다. 실종자들을 찾기 위한 수색도 한창이다.
이런 상황에도 인터넷 뉴스 등의 댓글을 보면 '정치적 책임 공방'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명피해가 발생한 만큼,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정부에 조속한 대처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여론이다.
'오세이돈 논란'이 대표적이다. 오세이돈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합성어로 오 시장의 수방정책을 비꼬는 표현이다.
오 시장은 지난해 5월 서초동 반포천 유역 분리터널 공사현장을 방문해 "이 공사가 완성되면 시간당 85㎜의 폭우를 감당할 수 있어 20년에 한 번 오는 빈도의 폭우에도 대비된다"며 "강남·서초 일대에 침수 피해를 본 분들이 안심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난 임기 때 세 차례(2006년·2010년·2011년)나 침수 피해를 본 지역주민들과 '오세이돈'이라는 별명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이번 폭우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 시간당 100㎜가 넘게 쏟아져 침수피해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단순히 서울시의 대처를 질타하는 여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폭우 마저 정치적으로 몰고 가는 일부 누리꾼들이다.
폭우피해와 관련된 인터넷 뉴스에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2011~2020년) 시절에 늘어난 수방 및 치수 예산이 "오 시장이 다시 취임하면서 삭감됐다"는, 지극히 '정치적'인 댓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서울시 중대재해와 안전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안전총괄실 실장과 국장이 공석인 상태로 확인되면서 논란은 더 커졌다. 이를 시작으로 "오히려 (더불어)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 서울시의회에서 수방 예산을 삭감한 것"이라는 반박성 댓글도 쏟아졌다. 순식간에 폭우피해와 관련된 기사의 댓글창은 정치적 책임공방을 벌이는 전쟁터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폭우가 쏟아진 당일 서초동 자택에서 새벽까지 전화로 상황을 챙겼다는 기사 댓글창에도 '전화 지시' 자체를 비판하는 여론 보다는 "청와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이전했기 때문"이라는 댓글이 더 주목 받았다.
이후, "경호의전을 받으면서 나가는 게 적절치 않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을 다룬 기사에는 "오히려 빵집과 영화관에 갈 때, 경호의전이 필요치 않은 것 아니냐" 등 '전 정권이 더 나았다'는 뉘앙스의 댓글이 이어졌다. 이에 반박해 일부 누리꾼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 시절 "필요없는 곳에 세금을 낭비하는 여성가족부의 예산을 수해방지·치수 예산으로 썼다면 이런 재앙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현(現)여권과 구(舊)여권 지지층들의 눈에는 이재민과 실종자의 안위 보다 정치적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를 가리는 문제가 더 시급한듯 보였다.
이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대처가 적절했다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기록적 폭우로 많은 국민이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정치적 책임 공방은 수습 후에 따져도 늦지 않다는 견해다. 당장 눈앞에 펼쳐진 '국가적 재난' 앞에서 누구의 책임이 더 중한지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지금도 소방 당국은 지하주차장 등에서 배수 작업이 끝나지 않아 실종자 수색에 난항을 겪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8~9일처럼 10일도 폭우가 이어질 전망이다. 더 이상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전 국민이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정치적 공방은 그 다음이다.
김동용 기자 dy072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