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책임론 불가피…공적자금 회수 요원
[한스경제=김정우 기자]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 합병이 유럽연합(EU)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3년째 표류 중이던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11일(현지시간) AFP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EU 경쟁당국이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9년 1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지분 55.7% 전량을 현대중공업지주에 팔기로 한 이후 본격적인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당초 6개월 내에 매각 절차를 끝낼 계획이었지만 EU를 비롯한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되면서 무산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었다.
기업결합 심사 대상 국가는 한국, EU, 일본,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 6개국이며 이 중 카자흐스탄, 싱가포르, 중국 3개국만 승인이 이뤄졌다. EU가 양사의 기업결합을 불허할 경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일본 경쟁당국도 사실상 합병이 무산된 것으로 보고 심사를 포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양사 M&A가 화물 선박 공급을 제한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불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유럽에서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양사 합병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송 선박의 건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사의 LNG 운반선,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세계 시장 점유율이 합계 60%가 넘는 만큼 독점적 지배력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현대중공업그룹 조선부문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은 당분간 LNG 운반선 가격을 인상하지 않고 중소 선박업체들에 일부 건조기술을 전수하겠다는 제안을 내놨지만 EU 측에서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 조선업이 호황을 맞고 있는 만큼 이번 인수 불발이 두 회사의 경영에 당장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 한국조선해양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인수에 참여한 만큼 재무적 부담은 적었다. 기업결합 이후 유상증자를 통해 1조50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었지만 인수가 무산되더라도 해당 자금을 신사업 재원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경영에 부담은 없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아직 공식 결정이 나온 것은 아니다. 조선시장은 단순 점유율로만 지배력을 평가하기가 불가하고 특정업체의 독점이 어려운 구조”라며 “국내 조선업 체질 개선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이번 기업결합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 입장에서는 새 주인을 찾아야 하는 과제와 함께 1조5000억원을 지원받지 못하게 돼 재무구조 불확실성 부담을 안고 가게 된다. 단 업황 호조에 따른 수주 확대 등으로 당장 경영에 큰 어려움은 없을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 등도 이 같은 이유로 무리한 매각에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반면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추진한 산업은행은 3년 동안 끌어온 조선업 구조조정 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2019년 인수 본계약 당시 산업은행은 국내 조선사 간 출혈경쟁을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매각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불발이 장기적으로 조선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또한 산업은행은 2015년부터 대우조선 경영정상화를 위해 7조원이 넘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온 만큼 이번 매각을 통해 재원을 회수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이동걸 산업은행장은 “일부에서 나온 무분별한 반대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기업결합 반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또 기업결합이 무산될 경우에 대비해 “플랜D까지 고민하고 있다”며 이해관계자와 긴밀하게 협의해 후속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우 기자 tajo81911@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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