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대한 과도한 지출 억제…잠재적 AI 수혜 기업 재평가
|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2000년대 후반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이후 애플은 항상 전 세계 IT 산업 혁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20년대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선 후 애플은 더 이상 첨간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불리지 않는다.
전 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AI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며 새로운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할 때 애플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와 뒤처진 기술력으로 비판을 받았다. 애플의 주요 AI 개발자는 경쟁사에서 막대한 금전 보상을 제시하며 영입해 갔으며 자체 개발 AI 서비스의 성능 역시 경쟁사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AI 때문만은 아니지만 미국의 주요 빅테크 기업들을 지칭하는 매그니피센트7 중 올해 애플의 주가 상승폭이 가장 낮다. 11월 기준 애플의 주가는 올해 8.4%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엔비디아는 45%, 알파벳은 52% 급성장하며 미국 증시의 상승세를 주도했다.
지난달 말 나스닥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을 당시 엔비디아는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5조달러를 돌파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시가총액 4조달러는 넘으면서 강세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최근 AI 거품론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AI 빅테크들의 주가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AI 거품론은 AI 관련 주식이 과도하게 부풀려지면서 투자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실질 수익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막대한 투자금이 회수되지 못한다면 막대한 투자를 주도한 금융 시장 전체가 붕괴되는 위협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장조사기업 매크로스트래티지 파트너십의 줄리엔 가란 연구원은 현재의 AI 거품이 닷컴 버블보다 17배 크고 지난 2008년 부동산 버블보다 4배 크다며 “세계 역사상 가장 크고 위험한 거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올해 AI 관련 기업들은 미국 주식시장 수익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 집중도가 극심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프라 투자 규모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까지 AI 데이터센터만 5.2조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 인프라 투자는 7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투자가 실질적 수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픈AI는 지난해 약 12억달러의 수익에도 불구하고 5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에는 80억달러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AI 거품론이 힘을 얻으면서 관련 주식들은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AI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는 5조달러를 돌파했던 시가총액이 4.54조달러로 내려앉았고 4조달러를 넘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도 3.74조달러로 감소했다. 시가총액 3.5조달러로 역대 최고 기록을 썼던 알파벳도 3.36달러로 하락했다. 반면 AI 기술 경쟁에서 뒤쳐졌던 애플은 큰 감소폭 없이 4조달러의 시가총액을 유지하며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다시 시가총액 순위 2위에 올라섰다.
이처럼 시장 상황이 변하면서 증권가에서는 애플의 AI 접근 전략을 재평가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LA타임즈 등 외신은 애플의 AI 분야 지출은 연간 140억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의 940억달러, 메타의 700억달러에 비해 훨씬 적다는 점을 주목했다.
애플의 AI 분야에 대한 적은 투자에 대해 미국 증권가에서는 과거 “보수적 접근으로 AI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고 비판했지만 이제는 “신중한 우위”로 재평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경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애플을 여전히 강력한 기술 기업으로 평가한다. 더욱이 AI 인프라에 대한 과도한 지출을 억제함으로써 막강한 자금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현시점에서 매우 큰 강점이다. 만약 AI 거품이 터지면서 AI 관련 산업이 붕괴한다면 애플은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로 외부의 AI 기술 자산들을 매입할 수 있게 된다.
애플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대신 자체 AI칩을 개발해 온디바이스 AI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비록 애플의 AI 서비스 ‘애플 인텔리전스’가 아직 원하는 만큼의 기능과 성능을 갖추지 못했지만 최신 애플 기기들은 모두 AI 칩을 탑재해 언제든지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다.
물론 애플의 AI 전략은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평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AI 경쟁에 뒤처진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애플이 불확실성이 높아진 향후 AI 시장에서 높은 잠재력을 가진 기업으로 재평가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 증권가는 애플을 하락장에서 안정적인 회피처라고 평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AI 낙관론도 큰 지지를 얻고 있다. 과거 닷컴버블 시대와 달리 현재 AI 거품론을 지탱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AI 낙관론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애플을 여전히 뒤처진 기업으로 보며 매력적인 투자처로 보지 않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에버코어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브라이언 폴락은 “매그니피센트7 기업 중 애플은 AI에 대한 투자가 가장 적지만 동종 기업들이 쏟아붓는 막대한 자본을 지출하지 않고도 AI의 잠재적 수혜자가 될 수 있다”며 “애플은 강력한 재무상태, 막대한 현금 흐름, 견고한 경제적 해자(economic moat)를 갖추고 있다. 모든 요소가 AI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쓰고 더 크게 의존하는 기업들보다 애플을 방어적인 종목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석주원 기자 stone@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