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문 대표
전유문 대표

| 한스경제 | 현석은 한때 유력 신문사의 간판 기자였다. 그의 전화 한 통, 기사 한 줄에 세상의 여론이 움직였다. 고급 식당과 주점은 통상적인 그의 공간이었고, 사람들은 그와의 만남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았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권력의 맛은 달콤했으며, 현석은 자신이 그 견고한 성공의 성에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는 불안감은 잠시 잊고 있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 중에는 건설회사 사장 흥식도 있었다. 흥식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1년 동안 그는 마치 숙제처럼 현석을 매일 접대했다. 현석 집안 대소사에도 흥식은 자신의 일처럼 나섰다. 고급 양주와 밴드의 음악이 흐르는 자리에서 흥식은 기자 현석이 아닌 '인간 현석'의 고충을 들어주었다. 쉴 새 없이 채워지는 잔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는 '신뢰'라는 이름의 끈끈한 감정이 쌓여갔다. 흥식의 계획은 치밀했고, 현석은 오랜 기간 공들여진 덫에 빠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달콤한 속삭임이 시작됐다. “기자 생활도 언젠간 끝납니다. 현직에 계실 때 5억원만 투자하면 평생 생계 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평생 보장이라는 유혹 앞에서, 1년 동안 쌓아온 흥식과의 '신뢰'는 어떤 계약서보다 굳건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현석은 미래의 안락을 위해 통장을 털고 대출까지 받아 형식에게 5억원을 건넸다.

투자는 곧 모든 것의 종말이었다. 돈을 받은 흥식은 다음 날 아침부터 세상에서 지워진 듯 사라졌다. 현석이 마주한 것은 신문사의 차가운 시선과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였다. 한순간에 순재산이 마이너스가 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그는 모든 지위와 명예를 잃었다. 그에게 줄을 섰던 사람들은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이제 현석은 서울의 밤거리를 대리운전 기사로 배회한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던 남자는, 이제 전세지하방 습한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5억 원. 투자의 결과는 평생의 안락이 아니라, 평생 짊어져야 할 빚의 무게였다. 휘발된 권력, 배신당한 신뢰, 그리고 어깨를 짓누르는 채무의 씁쓸한 잔향만 남은 채 현석은 오늘도 자동차 엑셀을 밟는다. 그의 남루한 현실 속에서 과거의 화려했던 순간들은 더욱 잔인한 조롱처럼 느껴질 뿐이다.

전유문 오코글로벌 대표, 전 KB국민은행 지점장, 채권시장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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