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수조원대 AI 인프라 투자 대신 오픈AI와의 협업 선택
카카오톡과 AI의 결합으로 일상 속 AI 서비스 확대 기대
지난 9월 23일 이프카카오 컨퍼런스에서 AI 전략을 발표하는 정신아 카카오 CEO./카카오
지난 9월 23일 이프카카오 컨퍼런스에서 AI 전략을 발표하는 정신아 카카오 CEO./카카오

|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지난달 31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한국 정부 및 기업과의 협업을 발표하면서 국내에 26만장의 GPU를 공급한다는 깜짝 소식을 전했다. 엔비디아 GPU는 인공지능(AI) 학습 및 개발 분야에서 독점적인 위상을 갖고 있으며 수요가 너무 많아 물량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현재 5~6만장 수준의 GPU를 확보한 것으로 집계되는데 여기에 26만장의 GPU를 추가로 공급받는다면 단숨에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권 AI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엔비디아와의 협업에 참여한 기업은 6만장의 GPU를 공급받기로 한 네이버를 비롯해 삼성, 현대차, SK 등이다. 최근 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는 카카오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카카오의 AI 전략에 있어 GPU 확보와 설비 투자에 대한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올해 2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2024년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 투자에 약 550억원을 투입했지만 2025년에는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는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는 “카카오가 오픈AI 등 외부 AI 기술을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AI 저비용화가 가능해졌다”며 AI 투자에 효율성을 중시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네이버가 올해 GPU 확보를 포함한 AI 인프라에 1조원을 투자했다고 밝힌 것과 명백히 대조되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아키텍처 GPU의 가격은 개당 3~4만달러로 예상되는데 네이버가 6만장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최소로 잡아도 2조6000억원 이상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실적이 좋지 않았던 카카오 입장에서 AI를 위한 막대한 지출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카카오는 이런 과도한 투자에서 한발 물러나 실용 중심의 AI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가 지난 2월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오픈AI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은 AI 전략 수정을 위한 하나의 돌파구인 셈이다.

카카오의 AI 전략은 모델 개발 방향에도 반영됐다. 카카오는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서 소규모언어모델(SLM)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는 GPU 투자 규모를 대폭 줄이면서도 실용적인 수준의 AI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체 거대언어모델 개발을 위해 과도한 투자를 하기 보다는 이미 검증된 최고 수준의 모델들을 조합해 사용자에게 최적의 AI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카카오의 선택은 벌써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카카오는 카카오톡에서 바로 챗GPT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ChatGPT for Kakao’를 출시했다. 카카오에 따르면 ChatGPT for Kakao 서비스는 열흘 만에 이용 약관 동의자 200만명을 넘어섰다. 실제 사용자 수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서비스 초기부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수치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개편해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구 목록을 소셜미디어처럼 변경해 이용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지표에서는 일평균 체류 시간이 기존 24분대에서 26분대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AI 서비스인 ChatGPT for Kakao와 ‘카나나 인 카카오톡’을 통해 이용자가 카카오톡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아직 서비스 초기이긴 하지만 ChatGPT for Kakao 서비스 이용자의 체류 시간이 4분 정도까지 올라오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카카오 AI의 또 다른 축인 카나나 인 카카오톡은 현재 클로즈베타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정 대표는 카나나 인 카카톡의 이용자 반응이 긍정적이며 내년 1분기 정식 출시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카카오가 GPU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카카오는 정부의 1조4600억원 규모 GPU 확보 사업에 최종 사업자로 선정됐다. 정부는 지난 7월 ‘AI 컴퓨팅자원 활용기반 강화사업’ 사업자로 네이버클라우드(H200 3056장), NHN클라우드(B200 7656장), 카카오(B200 2424장)를 선정하고 총 1만3000여장의 GPU를 구축·운영한다.

이를 통해 카카오는 필요한 GPU 자원에 간접적으로 접근하고 정부의 소버린 AI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산·학·연에 GPU 저비용 공급이 가능해졌다. 이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지난 9월 공개한 ‘하이브리드 GPUaaS’ 서비스와도 맞닿아 있다. 고객들이 자신의 GPU를 클라우드에서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돕는 이 서비스는 카카오의 저비용 AI 철학과도 연결된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AI 서비스는 출시 초기 단계인 만큼 우선적으로는 더 많은 이용자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AI를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익숙해지도록 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라며 “이용자 기반이 잘 만들어진 이후에는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유료 구독자 확대와 서비스 고도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석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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