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의 시작 알렸던 신치용·김세진·김상우
창단 30주년 맞아 구단 반등 시도하는 임도헌
|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 “삼성화재를 3년 내에 국내 정상에 올려놓겠다.”
1995년 11월 7일 삼성화재 배구단 창단식에서 이학수(79) 당시 대표이사는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 ‘야심찬 목표’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분위기였다. 1984년 시작된 슈퍼리그는 1990년대 중반까지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서비스의 굳건한 양강 체제였다.
삼성화재는 이근량(86) 당시 상무를 단장으로 앉히고, 신치용(70) 전 국가대표 코치에게 사령탑을 맡겼다. 선수단은 김세진(51)과 김상우(52) 등을 비롯해 총 10명으로 구성했다. 한국스포츠경제는 국내 남자배구 최고 명문인 삼성화재 30주년을 맞아 구단 전설들인 신치용 전 단장(현 한국체육산업개발 대표)을 비롯해 에이스였던 김세진 현 한국배구연맹(KOVO) 경기운영본부장, 임도헌(53) 현 단장, 김상우 현 감독을 최근 단독으로 인터뷰했다.
◆명가의 시작 알렸던 신치용·김세진·김상우
삼성화재 배구의 상징과도 같은 신치용 전 단장은 “벌써 30년 전인가 싶다. 41세에 창단 감독이 됐던 기억이 새롭다. 인지도가 떨어지던 저를 구단은 과감히 감독으로 택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1995년 팀 창단 후 1997년 겨울리그에 첫 출전해 우승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출전인 그때만 해도 누구도 삼성화재의 우승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어 “물론 그전인 1996년 가을에 원주 실업연맹전이 있었는데 선수가 8명 밖에 되지 않았다. 신진식(50) 등 핵심 선수들이 오기 전이었다. 그런데 그 대회에서 첫 우승을 했다. 그게 삼성화재의 공식적인 첫 우승이고, 이어진 1997년 겨울리그에 첫 출전해 우승을 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창단 멤버였던 김세진 본부장과 김상우 감독도 그때를 또렷하게 기억했다. 김세진 본부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97년 처음 출전한 겨울리그에서 우승을 했을 때다.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서비스라는 2강이 있는 상황에서 삼성화재가 우승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란 세간의 평가가 있었는데, 젊은 피들이 함께 뭉쳐 우승을 차지했다”고 털어놨다. 김상우 감독은 “1996년 원주 실업연맹전에서 8명이 출전해 팀의 첫 번째 우승을 해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라고 회상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국내 남자배구는 삼성화재와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실업배구 슈퍼리그 시절 77연승을 기록했고, 2005년 V리그 출범 후엔 남녀부 통틀어 최다인 8차례 정상에 오른 바 있다. 신진식 전 감독과 신영철(61) OK저축은행 감독, 최태웅(49) SBS 스포츠 배구 해설위원, 권순찬(50) 전 감독, 박철우(40) 우리카드 코치까지 모두 삼성화재 DNA를 갖고 있는 이들이다.
임도헌 단장의 경우 1990년대엔 현대자동차 배구단 소속으로 삼성화재를 위협했지만, 2006년부터 2017년까지는 삼성화재 코치와 감독을 거쳤고 지금은 구단 수장을 맡고 있다. 삼성화재를 내외부에서 모두 경험한 임도헌 단장은 “수석코치 시절이던 2010-2011시즌에 V리그 정규리그 최하위로 시작해서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후 챔피언결정전 전승으로 우승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돌아봤다. 신치용 전 단장 역시 “그렇다. 2라운드까지 꼴찌였다. 남들이 다 삼성화재를 비웃을 때 꼴찌에서 다시 치고 올라가서 챔피언이 됐다.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겪으면서 7전 전승을 기록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창단 30주년 맞아 반등 시도하는 임도헌
과거 만났던 신진식 전 감독은 “삼성화재 배구의 특징은 기본기다”라고 힘주었다. 남자배구 중심축으로 통하는 ‘신치용 사단’은 신치용 전 단장 특유의 지도 방식인 혹독한 훈련량을 견뎌냈던 이들이다. 설악산 지옥의 훈련은 선수들에게 악명 높은 코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러한 훈련과 인내가 있었기에 삼성화재 왕조도 탄생될 수 있었던 셈이다.
안타깝게도 삼성화재는 언젠가부터 명가의 기세를 잃었다. 리그 2위에 올랐던 2017-2018시즌을 끝으로 성적이 지지부진하다. 특히 2020-2021시즌과 2022-2023시즌엔 리그 꼴찌에 머물렀다. 스포츠계에선 스포츠단 운영 주체가 제일기획으로 바뀐 2010년대 중반 이후 예산이 줄어들면서 삼성화재를 비롯한 각 종목 삼성 구단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진단했다. 삼성화재는 8일 창단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던 KB손해보험과 홈 경기에서 3-1로 승리했지만, 올 시즌 현재 2승 4패 승점 7로 부진하고 있다.
신치용 전 단장은 “삼성화재가 요즘 부진해서 안타깝다. 삼성화재 배구단은 삼성화재가 운영해야 다시 정상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창단 후 초반 20여 년 동안 정상에 설 수 있었던 데는 이학수 창단 대표이사를 빼곤 얘기할 수 없다. 제 인생 또한 배구를 빼면 얘기할 수 없다”고 구단과 배구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삼성화재 선수 시절 ‘월드스타’로 통했던 김세진 본부장은 “은퇴한 지 이미 20년이 됐지만 그래도 마음 속엔 친정팀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소속이 다르지만 한 사람의 배구인으로서 3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다시 한번 옛 명성을 찾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김상우 감독 역시 “창단할 때부터 함께했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감사함을 늘 갖고 있다. 거기서 오는 긍지와 책임감이 제 배구 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다”라고 감사해했다. 임도헌 단장은 “창단 30주년 맞이한 단장으로서 구단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도전과 성장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중요한 해인 것 같다”고 무거운 책임감을 전했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