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절차 따랐다는 시행사 vs ‘아이들 생명 걸린 도로’ 지키려는 용인시의 행정 공방
| 한스경제=김두일 기자 | “이 길은 아이들이 학교 가는 길이에요. 그런데 덤프트럭 수백 대가 다닌다니, 이게 어떻게 안전하겠어요.”
지난 11월 3일 오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고기초등학교 앞 도로. 인도조차 없는 왕복 2차로 도로에 차량이 줄 지어 지나갔다. 이곳을 하루 400여 대의 대형 덤프트럭이 통행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의 불안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논란의 발단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용인시는 고기동 아파트형 노인복지시설 사업의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승인하면서, ‘공사차량은 성남시 석운동 방면의 우회도로를 이용한다’는 조건을 명시했다. 이는 고기초 통학로가 협소하고 인도가 없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용인시 관계자는 “당시부터 주민 안전을 우선시한 결정이었다”며 “학교 앞 도로는 통행이 금지된 구간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행사는 성남시가 “타 지자체 공사차량의 도로 이용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고기초 정문 앞 도로로 반출입 노선을 변경해 달라고 용인시에 요청했다.
용인시는 이를 “당초 인가조건 위반”으로 보고 반려했고, 이에 시행사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시행사는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이 학교 앞 도로 통행을 허용한 취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용인시는 “재결은 인가조건 변경 거부 처분의 일부 인용일 뿐, 통행 노선을 특정하거나 허가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재결의 핵심은 ‘안전 확보를 전제로 협의하라’는 뜻”이라며 “보행자 분리나 안전대책이 전제되지 않는 통행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시행사가 내세우는 ‘법적 절차 준수’는 안전 확보라는 본질적 조건을 배제한 해석이라는 게 용인시의 입장이다.
용인시가 우려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 논리가 아니다. 국토교통부 자료 등에 따르면 덤프트럭 등 대형 트럭은 전체 교통사고 중 사망사고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학교 주변 도심 구간에서의 사고는 일반 차량보다 치명률이 두 배 이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좁은 도로를 학생과 트럭이 함께 이용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용인시 관계자는 “교행이 불가능한 폭 5.5m의 도로에서 보행자와 대형차량이 함께 다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행사는 지난 2월 한 달간 고기초 앞 도로를 통해 토사를 반출하며 “사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용인시는 “토사 붕괴 위험 방지를 위한 한시적 조치였고, 겨울방학 중이라 학생 통행이 없었다”며 “정식 노선 승인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다니지 않았던 시기의 사례를 근거로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논리”라고 반박했다. 주민들은 단순히 통학 안전뿐 아니라 학습권 침해 가능성도 지적한다.
대형 트럭 통행으로 발생하는 소음·분진·진동이 교실 환경을 악화시키고 학생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PM10, PM2.5 등 미세먼지 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다”며 “호흡기 질환, 알레르기 등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업시행자가 계획한 공사차량은 하루 약 460대. 이는 시간당 1분에 한 대 꼴로 차량이 지나가는 셈이다.
한 학부모는 “아침마다 도로가 차량으로 막히는데 그 사이로 트럭이 다닌다면 사고는 시간문제”라며 “시가 행정심판에 끌려다니지 말고 끝까지 안전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해당 사업이 명목상 노인복지시설이지만 실제로는 일반 아파트에 가깝다고 주장한다.법 개정 직전 인가를 받아 분양 형태로 추진된 점이 논란의 배경이다.
주민들은 “복지시설 이름으로 인허가를 받았지만 실상은 대규모 주거사업”이라고 비판했다. 시행사는 용인시가 행정심판 재결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간접강제를 신청했다. “하루 3900만 원씩 배상하라”는 요구까지 제기된 상태다.
용인시는 “안전 확보 없는 이행은 불가능하다”며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행정 절차 이전에 시민 안전이 우선”이라며 “안전대책이 없는 통행 허용은 행정의 직무유기”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의 본질이 행정 절차가 아닌 ‘생명 보호의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대형 공사 차량의 상시 통행으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업자는 행정적 책임뿐 아니라 민형사상 손해배상과 공사 중단 명령 등 중대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특히 사회복지시설과 같은 공공사업일수록 ‘안전관리 소홀’은 평판 리스크로 이어져 사업 지속성에도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법리 다툼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둔 행정적 판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이를 둘로 갈라 나누라 명한 솔로몬의 판결은 거짓 어머니의 욕심을 드러내고, 진짜 어머니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냈다. 그 냉혹한 판결을 통해 아이는 결국 생명과 진정한 보호자를 찾았다.
고기초등학교 앞 도로를 둘러싼 이번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행정적 논리와 사업적 이해관계를 넘어, 아이들의 안전을 먼저 고려하는 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김두일 기자 tuilki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