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저작권 분쟁 격화되는데 국내 AI 관련법 정비 시급
|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저작물을 무단으로 수집해 사용한다는 논란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AI 저작권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KBS, MBC, SBS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에 네이버가 방송사 뉴스 기사를 생성형 AI '하이퍼클로바(HyperCLOVA)'와 '하이퍼클로바X' 학습에 무단으로 활용했다며 각 방송사당 2억원씩 총 6억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청구했다.
지난달 18일 첫 변론기일에서 방송사들은 “네이버가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제작한 뉴스 콘텐츠를 무단으로 자신들의 상업적 AI 상품에 사용한 권리 침해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방송사 측은 네이버의 생성형 AI에 직접 질문한 결과 뉴스 기사를 학습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네이버는 “콘텐츠 약관을 통해 제공받은 뉴스가 있다”며 “저작권법에 따르면 시사보도를 위한 뉴스는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방송사들은 자사 뉴스가 단순 시사 보도가 아니라 창작성 있는 저작물이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저작권 침해가 핵심 쟁점인데 어떤 저작물이 침해 대상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가 있다”며 양측에 추가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 국내 언론계, 네이버 상대 저작권 침해 공세 가속화
이 소송은 시작에 불과하다. 한국방송협회는 부분 피해액 산정 결과 이미 5억원을 초과했으며 향후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한 하이퍼클로바 개발 과정에서 학습 데이터 중 뉴스가 13.1%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신문협회도 지난 4월 네이버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국신문협회는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 개발 과정에서 뉴스 콘텐츠를 무단 학습하고 학습 데이터 내역 공개를 거부하며 생성형 AI 검색 서비스에서 뉴스 콘텐츠를 부당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이번 방송 3사와 네이버 소송의 핵심 쟁점은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사용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방송사들은 네이버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상업적 목적으로 대규모 뉴스 콘텐츠를 수집해 AI 모델을 학습시켰다고 주장한다.
특히 네이버가 AI 검색 서비스 'Cue:'와 'AI 브리핑'을 통해 학습된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면서도 원저작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네이버의 시사 보도 면책 주장도 중요한 쟁점이다. 저작권법 제7조 제5호는 단순한 시사 보도를 저작물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지만 방송사들은 자사의 보도가 단순 사실 전달이 아닌 취재, 편집, 분석이 결합된 창작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는 한국 법원이 뉴스 콘텐츠의 창작성 기준을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한 중요한 선례가 될 전망이다.
또 다른 쟁점은 네이버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여부다. 한국신문협회는 네이버가 국내 검색 시장 및 온라인 뉴스 유통 시장에서의 지배적 지위와 언론사와의 뉴스 제휴 계약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주장한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압도적인 검색 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언론사가 네이버 뉴스 제휴를 통해 트래픽을 얻고 있다. 이로 인해 네이버의 일방적인 약관 변경이나 데이터 활용에 언론사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 이미 법적 공방 치열한 글로벌 AI 저작권 분쟁
한국의 상황은 글로벌 AI 저작권 분쟁의 일부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오픈AI가 현재 40여건 이상의 저작권 소송에 직면해 있다. 가장 주목받는 사례는 뉴욕타임스가 2023년 12월 제기한 소송으로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수백만 건의 기사를 무단으로 챗GPT 학습에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2025년 3월 미국 법원은 오픈AI의 소송 기각 요청을 거부하며 저작권 침해 주장의 핵심 부분이 재판으로 진행되도록 허용했다.
작가들도 대규모 집단 소송에 나섰다. 2023년 9월 작가조합과 17명의 작가들이 오픈AI를 제소했으며 오픈AI는 공정 이용 원칙을 근거로 방어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최대 뉴스 통신사 ANI가 2024년 11월 오픈AI를 델리 고등법원에 제소하며 챗GPT가 자사 콘텐츠를 무단 학습하고 ANI에 허위 뉴스를 송출했다고 주장했다.
앤트로픽의 사례는 무분별한 AI 학습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AI 챗봇 클로드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불법 다운로드된 수백만권의 책을 학습에 사용했다는 혐의로 소송을 당한 앤트로픽은 지난 8월 약 15억달러(약 2조1500억원) 규모의 합의에 도달했다. 이는 AI 저작권 소송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합의금으로 약 50만권의 책에 대해 권당 3000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미지 생성 AI도 저작권 분쟁의 중심에 있다. 올해 초 챗GPT 이미지 생성 기능을 이용한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 유행은 AI가 만드는 이미지에 대해 저작권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올해 6월에는 디즈니와 유니버셜 스튜디오, 9월에는 워너브라더스가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하며 할리우드도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음악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6월 유니버설 뮤직 그룹,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워너 뮤직 그룹 등 3대 메이저 음반사들이 AI 음악 생성 플랫폼 Suno와 Udio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음반사들은 침해된 작품당 최대 15만달러의 법정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어 수억달러 규모의 법적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 AI 시대에 대응 못하는 법제도
AI 저작권 논란의 핵심은 AI 학습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공정 이용으로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불확실성에 있다. AI 기업들은 AI 학습이 인간의 학습과 유사하며 원본을 직접 복제하거나 배포하지 않기 때문에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작권자들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이 기존 저작물과 유사하여 시장을 대체할 수 있으며 이는 공정 이용 원칙을 훼손한다고 반박한다.
데이터 출처의 합법성도 중요한 쟁점이다. 지난 8월 미국 성인 영화 제작사 스트라이크 3 홀딩스는 메타가 불법 복제 네트워크를 통해 저작물을 무단으로 수집하여 AI 학습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AI 학습 데이터 수집 과정의 적법성이 저작권 분쟁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저작권을 둘러싼 논란은 AI 기업들 입장에서도 갈수록 리스크가 되고 있다. 앤트로픽의 사례처럼 법원에서 저작권 침해가 인정될 경우 수조원의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AI 기업은 저작권자와 직접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오픈AI는 뉴욕타임스와의 소송 중에도 불구하고 AP통신, 복스 미디어, 파이낸셜 타임즈 등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으며 구글도 뉴스 코퍼레이션과 계약을 맺었다.
기술적 해결책도 모색되고 있다. 일부 AI 기업들은 합성 데이터나 공개 도메인 데이터만을 사용하거나, 데이터 출처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지난해 4월 미국 의회에 발의된 ‘Generative AI Copyright Disclosure Act(생성형 AI 저작권 공개법)’는 AI 기업들이 학습 데이터셋을 공개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명성 요구가 기업의 영업 비밀을 침해할 수 있다는 반발도 있다.
지난 5월 미국 저작권청은 생성형 AI 학습과 공정이용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AI 모델 학습이 복제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저작권법 제30조의4를 통해 상업적 및 비상업적 데이터 분석에 대해 명확한 예외를 유지하고 있으나 불법 복제된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수집하는 경우 책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명시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6월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생성형 인공지능 결과물에 의한 저작권 분쟁 예방 안내서’를 발간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한국에서는 현행 저작권법이 생성형 AI가 학습을 목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 규정을 신설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저작권법 개정안은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었고 제22대 국회에서는 아직 재발의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AI 저작권 관련 법제도가 아직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방송사와 네이버의 소송은 향후 관련법 제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에 따라 국내 AI 기업들의 데이터 활용 전략과 콘텐츠 제작자들의 권리 보호 수준이 결정될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건전한 AI 산업 육성을 위해서도 AI와 저작권 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석주원 기자 stone@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