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규제안 찬성국 입항·통상 제재 으름장
"규제 지연시 불확실성 증가…韓산업경쟁력에도 아쉬운 결과"
|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 글로벌 해운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 첫 탄소세 시장 도입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한 압박으로 최종 문턱에서 불발됐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17일 영국 런던에서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임시회의를 열어 '선박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기조치(Mid-Term Measure)' 채택 여부를 논의했으나 다수 회원국이 결정을 1년 연기하는 방안에 투표했다고 로이터·AFP·블룸버그 등 다수의 외신이 보도했다.
앞서 IMO는 지난 4월 제83차 MEPC에서 이 중기조치(규제안)를 승인했다. 규제안에 따르면 총톤수 5000톤 이상 국제 항해를 하는 선박은 선박 연료유의 강화된 온실가스 집약도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운항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에 비례한 비용을 납부하게 된다.
해상운송 부문은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의 3%를 차지하는 산업이다.
이 규제안은 해상운송 부문의 순탄소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감축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이른바 ‘넷제로 프레임워크(무탄소 전략)’의 일부다.
IMO의 구상대로라면 이번 MEPC 임시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 개정안을 통과시킨 후 2027년 3월부터 발효돼 대형 선박들에 2028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7% 감축할 의무가 부과될 예정이었다.
중기조치의 요지는 간단하다. 선박의 온실가스 집약도(GFI)에 따라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받고 달성하지 못하면 탄소세를 내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탄소세로 조성되는 펀드는 무탄소 연료 전환뿐 아니라 기후위기 취약국의 환경보호 및 적응을 위한 지원에도 사용되는 등 공정하고 정의로운 책임 분담(CBDR)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
이번 MEPC 임시회의 개최 전부터 탄소세 도입을 지지하는 유럽 국가와 이를 반대하는 미국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MARPOL 개정안 채택 여부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노르웨이를 비롯해 덴마크,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일본, 싱가포르의 7개국 주요 선주협회는 최근 IMO가 지난 4월 승인한 중기조치와 관련된 프레임워크를 자국 정부가 승인함에 따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을 촉구하는 공동 호소를 발표했다.
이들은 공동 호소문을 통해 "우리 산업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이며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글로벌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미국 쪽에는 그리스와 일부 해운 대기업들이 가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존프레드릭센을 비롯한 저명한 그리스 해운그룹, 주요 선급협회가 미국 정부를 중심으로 연합해 탄소세 시장 도입 반대를 외쳐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IMO가 추진해 온 이 조치를 '글로벌 탄소세'라고 비난하면서 협약 채택에 찬성 투표하는 국가들에 미국 입항 금지, 비자 발급 제한, 통상 조사, 미국 정부 계약 금지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와 함께 중동의 산유국을 비롯한 반대국들은 임시회의 개막 이후에도 안건 상정 자체를 거부하며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오랜 시간 협상을 교착 상태에 빠뜨렸다.
이들은 수년간의 협의를 거친 안건임에도 ‘졸속 추진’이라고 비판했으며 “해운은 전 세계 탄소배출의 고작 3%”라며 감축 필요성을 경시하는 주장으로 이어갔다는 것이 관련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중단 결정 전날인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IMO의 계획이 "녹색 환상에 쓰기 위한 신종 녹색사기 관료체제 신설"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미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방식, 형태, 형식이든지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IMO 회원국들은 며칠간 논쟁을 벌이다가 역시 이 조치에 반대해 온 사우디 아라비아가 논의를 1년 연기하자는 안건을 제출했으며 회의 마지막날인 17일에 '1년 연기' 방안이 찬성 57표, 반대 49표로 통과됐다.
기후솔루션은 논평을 내고 “탄소세 시장 도입 1년 연기는 더 짧아진 시간 안에 훨씬 가파른 전환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에 강하게 노출됐다”며 “만약 차기 회의에서 중기조치가 재논의 끝에 채택되더라도 예상 발효 시점인 2028년부터 2030년까지 불과 2년 만에 20~30%의 감축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선사들에도 한층 더 급격하고 과중한 감축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계 1~2위 조선업과 7위권 해운업을 모두 보유한 한국의 장기적인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아쉬운 결과”라며 “국제해운의 탈탄소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 상황에서 HMM, 현대글로비스, 팬오션 등 국내 주요 선사들은 이미 자체적인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하고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때 기업에 절실한 것은 규제의 연기가 아니라 명확하고 일관된 정책 신호”라고 덧붙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명확하고 확실한 규제 정책이 있어야 국내 조선·해운업계가 확신을 갖고 친환경 선박 발주와 무탄소 연료 전환에 속도를 내고 결과적으로 현재의 선도적 위치를 강화해 나갈 수 있다”면서 “난항 끝에 중기조치 채택이 끝내 미뤄지면서 오히려 투자 불확실성만 커지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꼬집었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