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화성 아리셀 배터리공장 화재 1년…CEO 15년형 ‘철퇴’
산업부, 중대재해관리 강화…AI·배터리 등 첨단산업도 ‘책임경영’ 압박
“기업 경영권보다 안전 거버넌스 우선”…업계 대응 분주
산업현장 이미지 예시./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산업현장 이미지 예시./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산업 현장의 재해사고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지만 기업들의 ‘안전 경영’은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지난해 화성 아리셀 배터리 공장 화재 사건은 국내 산업 안전 정책에 구조적 변화를 촉발했다. 이 사고로 23명이 숨지고 최고경영자(CEO)가 징역 15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중대재해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며 안전 책임을 CEO와 고위경영진까지 확대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반도체·배터리 등 첨단 산업 전반으로 이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가운데 업계의 대응도 분주해졌다.

지난해 6월 경기도 화성시 전곡산단 내 아리셀 리튬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는 취약한 국내 산업 안전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극 공정 중 발생한 불로 공장 내부가 전소됐고 23명이 사망,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진행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방폭설비 미비 ▲온도센서 작동 불능 ▲과도한 연속 작업 등 총체적 안전관리 실패가 드러났다. 법원은 지난 9월 아리셀 대표이사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공장장과 안전관리 책임자 등 간부 3명도 각각 5~10년형을 받았다.

사건을 1년 동안 심리한 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는 판결에서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던 예고된 인재”라면서 “이면에는 기업 생산량 증대에 따른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장의 안전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방치되고 있는 우리 산업 구조 현실과 일용직·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의 실태가 어둡게 드리워져 있다”고 했다.

고 재판장은 또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 극심하고 피고인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사망한 피해자들 대부분이 파견근로자들인데 피고인들이 납품기일을 맞추기 위해 급작스럽게 전지 생산량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아리셀 공장 화재 등 잇단 산업 현장 안전사고를 계기로 정부도 제도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난 8월 경기 가평 신가평변환소 전력인프라 건설현장 안전관리 실태 점검 현장에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적 처벌과 별개로 산업부가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 페널티를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산업 현장에서 종사자 사망이 잇따르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산업부는 이와 함께 산업별 맞춤형 안전 매뉴얼 제정, 민관 합동 점검 확대, 안전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술 확산과 함께 산업안전 관리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 7대 핵심과제’를 발표하며 부처 간 협업 등을 통해 AI 기술 등을 산업 안전 분야에 확산·도입할 계획을 밝혔다. 이로써 AI뿐 아니라 자율주행 시스템 등 비(非)물리적 첨단기술 분야까지 산업안전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유럽연합(EU)이 지난해 8월 발효시킨 EU 인공지능법(EU AI Act) 맥락과도 잇닿아 있다는 해석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인간 행동 조작, 사회적 점수를 부여 시스템 등 ‘허용 불가’ 수준 AI는 전면 금지된다. 또 얼굴 인식, 생체 정보 처리, 채용 및 교육 분야 등 사회적 영향이 큰 분야에 적용되는 ‘고위험 AI’는 엄격한 등록 절차 및 품질·위험 관리 의무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AI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으려는 각국 규제 움직임 중 가장 선도적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기업들 또한 안전 관리 체계를 재정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CEO 직속 최고위기관리책임자(Chief Risk management Officer·CRO) 겸 경영지원센터를 신설, ESG 경영을 한층 더 강화했다. 삼성SDI는 별도 안전보건 조직을 구성, 책임경영에 나섰다. 삼성SDI는 법인 이사회 산하에 지속가능경영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 인프라센터(CSO)를 두고 있다. 안전보건 조직은 이 중 한 축을 담당하며 인사기능 또한 분리돼 있다.

산업계 전반에서는 최근 ‘안전은 경쟁력이자 기업 존속 전제 조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과거에는 사고 발생 시 보상과 책임 규명에 초점을 뒀다면 이제는 사고를 사전에 예측하고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경영진 위험 요소로 평가받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과 공정 중심 기업일수록 위험을 사전 예측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한 생존 전략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수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