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이나라 기자 | 올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수가 사상 처음으로 20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작 카드업계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글로벌 네트워크사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결제 혜택과 데이터 주도권을 독점하는 사이, 국내 카드사는 '결제 제공자'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는 역대 최고치인 2009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른 관광수입은 202억달러(약 29조4000억원)로 국내 소비 규모의 2.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실제 수치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수는 1637만명으로 2023년보다 48%가 증가했다. 글로벌 카드사인 비자(Visa)가 발표한 결제 데이터에서도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외국인 카드 결제 금액이 2023년 대비 2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미국·일본·중국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홍콩 관광객의 결제액은 각각 50% 이상 급증했다. 이에 단순한 관광 수익을 넘어 내수 경기 회복을 견인할 핵심 변수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또한 과거 쇼핑 일변도였던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트렌드도 체험·헬스케어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비자에 따르면 헬스케어 업종 결제액은 2023년 대비 58% 증가했으머 건강식품 등을 취급하는 드럭스토어와 약국 결제도 각각 60% 이상 늘었다.
또한 일본 관광객은 피부과 시술을 중심으로 의료관광 결제를 크게 늘린 것으로 집계됐으며 대만·홍콩 관광객은 드럭스토어에서 K-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외국인 관광객 1인당 평균 지출액을 약 146만원으로 추정했다. 이를 단순 합산하면 연간 30조원 규모의 소비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그러나 업계는 연 30조원의 거대한 시장에서 국내 카드사가 가져가는 몫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국인 관광객 대다수가 국내 카드사보다는 본국에서 발급받은 비자·마스터·JCB 카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발급 카드가 한국에서 쓰일 때의 정산 규칙은 비자나 마스터카드 등 국제 네트워크의 룰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외국인이 들고 온 해외 발급 카드 → 한국 가맹점 결제 → 국내 매입사(국내 카드사) → 국제 브랜드(Visa/Master 등) → 해외 발급사로 이어지는 체계다.
국내 매입사가 받는 수수료는 국제 브랜드 룰에 의해 정해져 있어 우리나라 카드사가 임의로 조정할 수 없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급된 신용카드의 경우 비자 또는 마스터카드가 수수료 수익의 70%를 가져간다. 이에 따라 국내 매입사(국내 카드사)가 가져가는 몫은 10~20% 수준에 불과하다. 즉 해외 발급사로 유출되는 국제 브랜드 수수료와 VAN/PG 비용이 겹치면서 국내 카드사는 거대한 시장에서도 '박한 마진'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카드사의 외국인 대응 전략은 단기 관광객보다는 중장기 체류 외국인에 집중돼 있다. 신한카드는 해외송금 핀테크 기업 이구페이(E9pay)와 제휴해 외국인 전용 신용카드를 내놓았으며 농협카드는 외국인등록증 보유자를 대상으로 'NH글로벌위드체크카드'를 출시했다. KB국민카드와 하나카드 역시 환율 우대·수수료 면제· 다국어 상담 서비스를 앞세워 장기 체류 외국인 고객 확보에 나섰다.
이와 달리 국내 카드사의 상품 중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전용 상품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신한카드가 내놓은 '트립패스(TripPASS)' 선불카드가 그나마 대표적 시도로 꼽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글로벌 결제수단을 이용한 플랫폼이 국내에서도 늘고 있는 만큼, 범용성과 확장성에서 개선점이 많다는 평가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JCB·유니온페이와 같은 국제 결제 브랜드와의 제휴 마케팅을 통한 수수료 수익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현지 대형 카드사들을 중심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신용카드 사용에 대해 별도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닛케이신문은 지난달 5일 보도를 통해 "방일객 증가로 인한 국제 브랜드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업계 전체가 연간 200억 엔 규모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3대 카드사는 해외 발급 카드에 대해 추가 수수료 부과를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외국인의 거대한 소비에도 불구 국내 카드사의 경우 단순히 가맹점 수수료 일부만 취하는 구조다"며, "결제 생태계 주도권을 글로벌 네트워크사에 내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나라 기자 2country@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