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 ‘순환적 자금 구조’ 반영…SK온 북미공장 투자 등 연관성 ‘주목’
|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SK이노베이션이 발전 자회사 지분을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총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확보, 업계 관심이 쏠린다.
표면적으로는 자회사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유상증자 참여지만 실질적으로는 본사로의 현금 전환을 목적으로 한 ‘내부 유동화’ 성격이 짙다는 해석이다.
정유·화학 부문 실적 부진과 배터리 사업 투자 지속으로 운전자금 확보에 대한 압박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 조치는 숨통을 틔우기 위한 재무 유연성 확보 전략으로 읽힌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나래에너지서비스와 여주에너지서비스가 각각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총 조달 규모는 3조원에 달한다.
조달된 자금 가운데 차입금 상환분을 제외한 2조4100억원은 SK이노베이션 재무구조 개선에 투입된다. 회사는 지난 7월 기업가치 제고 전략 설명회에서 연내 8조원 규모 자본 확충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메리츠금융 측은 2030년 4월부터 2035년 10월까지 전환우선주(CPS)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다. 모두 전환할 경우 각각 50.1%의 지분율을 확보하게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전환권 행사에 앞서 메리츠금융이 보유한 CPS 매도를 제안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이 이번에 조달한 자금 3조원 중 2조4100억원은 재무구조 건전성 강화에 쓰인다. 나머지는 나래·여주에너지서비스 차입금 상환에 사용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 조건에 조기상환 옵션과 상계 조항이 포함돼 있어 향후 금리 하락 시점에 맞춘 SK이노베이션 측의 유연한 자금 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나래에너지서비스의 경우 기존 출자에 대한 환급채권과 상계 가능한 구조도 포함됐다.
아울러 이번 조치는 외형상 자회사에 대한 재무 지원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자산 유동화를 통한 본사의 유동성 확보 행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여주에너지서비스와 나래에너지서비스는 각각 여주 LNG 발전소, 파주 열병합발전소를 운영하는 SK E&S 산하 계열사로 안정적 수익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들 자회사에 대한 CPS 인수를 통해 외부 차입 없이 자금을 확보했고 이는 사실상 본사 자금 유입을 위한 구조적 우회로 풀이된다.
IB업계에선 직접 차입보다 내부 자산을 활용한 유동화란 점에서 SK그룹 특유 ‘순환적 자금 구조’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단기적 현금 유입에 집중한 일종의 고육책이라는 시선도 있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은 정유·화학부문 실적 부진과 함께 배터리 사업을 맡는 SK온의 북미 공장 증설 등 자금 소요가 늘어난 상황이다.
이번 조달은 단기적으로 숨통을 틔우는 동시에 중간 배당과 신규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선제 조치 성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입금 증가에 따른 재무 부담 우려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편이다.
여주에너지서비스 증자분 8300억원은 자기자본 대비 3.9%, 자산(35조원 기준) 대비 2.37% 수준이다.
나래에너지서비스 건까지 포함해도 전체 차입 비중은 자기자본 중 11.3% 정도다. 다만 두 건 모두 만기일이 동일(2030년 10월 25일)하게 설정된 점에서 만기 집중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
향후 자금 재조달(리파이낸싱) 계획과 사업 부문별 현금 흐름 안정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이후에도 북미 배터리 공장 투자, 울산 CLX 정유 설비 전환, 배터리 소재 합작법인(JV) 등 굵직한 자금 집행 일정을 다수 앞두고 있다.
이번 CPS 조달은 그에 앞선 유동성 선 확보 일환으로 읽힌다. 향후 실적 회복 여부에 따라 조기상환 또는 재조정 가능성도 남겨둔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화학 부문 회복 속도에 따라 CPS 구조는 조기상환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시장 금리 하락이나 정유 수익 반등이 뒷받침되면 차입 구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현 시점에선 직접적 부채 확대를 피하면서 본사 자금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유동성 운용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창수 기자 charles@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