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中에 원가경쟁·규모 밀리고 日엔 기술·수익성 뒤져
370만톤 감산 자율협약에도 산업 체력회복 불투명
납사 기반 범용제품 구조로 고정수요·재무건전성·사업다변화 모두 열세
울산 석유화학단지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에서 TLS(Tower Lifting System)를 활용해 프로필렌 분리 타워를 수직으로 세우고 있는 모습./ 에쓰오일 제공
울산 석유화학단지 에쓰오일 샤힌 프로젝트 건설 현장에서 TLS(Tower Lifting System)를 활용해 프로필렌 분리 타워를 수직으로 세우고 있는 모습./ 에쓰오일 제공

|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적 한계에 발목 잡힌 채 생존 기로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과 일본의 정밀화학 중심 구조개편 사이 한국은 여전히 납사 기반 범용제품 위주 포트폴리오에 머물며 수익성·재무안정성·설비경쟁력 등 전 부문에서 경쟁국 대비 열위란 평가다.

최근 나이스신용평가가 발간한 ‘구조적 공급과잉 하에서 잃어버린 경쟁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한국 석유화학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석유화학사들은 중·단기적으로도 실적 개선 여력이 제한적이며 대규모 구조조정 없이는 신용도 하방 압력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는 원가 구조가 꼽힌다. 에틸렌 캐시코스트 기준 한국의 NCC 설비 생산단가는 톤당 1000달러 수준으로 글로벌 수요선 상 고비용 구간에 위치한다.

중동 및 북미 에탄 분해 설비(ECC)는 물론 중국의 납사·석탄·LPG 혼합 기반 설비보다도 경쟁력이 낮다.

특히 중국은 러시아산 저가 납사 및 프로판 도입을 통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한 반면 한국은 여전히 중동산 납사에 대한 의존도가 60% 이상으로 고정돼 있다.

같은 동북아권 국가인 일본조차 고비용 NCC 설비를 정리하며 정밀화학 중심으로 전환 중인 상황에서 한국만 과거 방식에 머무르고 있는 양상이다.

수익성과 재무지표도 위태롭다. 2024년 기준 한국 석유화학업계 평균 영업이익률은 –0.3%로 동북아 3국 중 유일하게 적자 전환했다. 반면 중국은 5.1%, 일본은 3.4%의 흑자를 기록하며 업황 저하에도 견고한 수익성을 유지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토탈에너지스, SK지오센트릭 등 주요 기업 실적은 줄줄이 뒷걸음질쳤다.

또 이익창출력 저하로 순차입금/상각전영업이익(EBITDA) 비율은 2021년 1.1배에서 2024년 4.3배로 급등했다. 이는 일본(3.2배), 중국(1.0~1.6배)보다도 확연히 높은 수치다. 과거 비교우위였던 한국의 수익성은 사라졌고 빚만 늘었다.

내수 및 수출시장 접근성도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 내수 시장 의존도가 40%에 불과해 수출 경쟁력 저하가 실적으로 직결된다.

최대 수출국이던 중국은 에틸렌 자급률을 2019년 40%에서 2025년 7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범용 합성수지 자급률도 대부분 60~80%에 이르며 한국 수출 주요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내수 의존도가 80%에 이르는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은 외부 수요 충격에 훨씬 취약한 구조다.

여기에 미국이 ECC 설비 확장으로 자국 내 수요를 충당하며 한국의 대(對)미국 수출 비중도 낮아지고 있다.

설비 경쟁력에서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 상위 5개 석유화학사 평균 에틸렌 생산능력은 670만톤으로 한국(210만 톤), 일본(80만 톤)을 압도한다.

대형 설비 기반 수직계열화(정유-석유화학 통합 설비)는 고정비 절감과 제품 다변화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으며 고효율 설비만 남기는 방식의 구조조정도 병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신규 증설 중심 대응에 머물고 있다. 실제로 2026년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에틸렌 180만톤)가 완공되면 국내 총 에틸렌 생산능력은 1460만톤으로 기존 대비 15% 늘어난다.

시장 축소와 가격 경쟁 심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설비만 늘리는 투자가 오히려 산업 전반 수익성 하락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8월 주요 납사 분해 설비(NCC) 기업들과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최대 370만톤 규모 감산 계획을 제시했지만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보고서는 “단기 실적 개선보다 장기 사업구조 지속가능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경쟁력 열위 설비부터 유휴화 및 통합, 포트폴리오 전환, 고부가화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 이상 신용도 하락과 구조적 경쟁력 추락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결국 ‘선택적 구조조정’이 아닌 ‘전방위적 혁신’ 없이는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김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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