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규제 정비·기관 투자 확산으로 '성숙 단계' 진입 전망
|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등록된 증권·상품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현물 거래를 허용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그동안 전용 거래소에서만 가능했던 가상자산 거래가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 등 주요 증권거래소에서도 이뤄질 수 있게 됐다.
17일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전세계 가상자산 시장이 내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보면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예측한 '1000조원 규모 시장' 달성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미국 금융당국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닌 암호화폐가 기존 금융시스템과 본격 융합하는 신호탄이라는 게 업계 공통된 의견이다. 폴 앳킨스 SEC 의장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치로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며 "암호화폐 혁신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변화는 즉각적이었다. 그동안 코인베이스나 바이낸스 같은 전용 거래소에서만 거래할 수 있었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이제는 뉴욕증권거래소나 나스닥에서도 직접 사고팔 수 있게 됐다.
가장 큰 의미는 접근성 확대다. 미국 가계의 58%가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별도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 없이도 기존 증권계좌로 가상자산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잠재 투자자 수천만 명에게 가상자산 시장 문이 활짝 열린 셈이다.
국내에서도 제도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부터 '가상자산 대여 가이드라인'을 본격 시행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무분별한 고위험 투자 방지다. 레버리지 서비스를 제한하고 투자자별로 대여한도를 차등 설정했다. 또 대여 수수료를 연 20%로 상한선을 두고, 시가총액 20위 안의 주요 가상자산으로만 대여 범위를 제한했다.
특히 강제청산 위험 상황을 사전 고지하도록 해 투자자가 대응할 시간을 확보했다. 과거처럼 시장 급변 시 예고 없는 강제청산으로 큰 손실을 입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금융위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화를 통해 건전한 가상자산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2026년 상반기 법제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내놓은 내년 가상자산 시장 전망은 한결같이 낙관적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한국 가상자산 시장이 2026년 1000조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 기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10% 비중을 근거로 연평균 20% 성장을 예측한 것이다. 이 같은 규모가 달성되면 가상자산 관련 산업에서 4만 명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고 5조원의 경제적 생산 가치가 생길 것으로 BCG는 분석했다.
바이낸스 리서치도 9월 월간 보고서에서 긍정적 전망을 제시했다. "미국 금리인하 기대감과 기관 투자 확산으로 암호화폐 시장 총액이 8% 증가했다"며 "제도권 편입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개별 가상자산 가격 전망도 강세다. 업계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2026년 8만~30만달러, 이더리움이 7천~2만5000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가상자산 시장에 불어오는 바람은 거시경제 차원에서도 우호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0%, 2026년을 3.1%로 예측했다. 안정적인 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가상자산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개선되고 있다. 금리가 내려가면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 주식, 가상자산 등으로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IMF가 올해 0.8%, 내년에는 1.8% 성장을 전망했지만, 가상자산 같은 혁신 금융 서비스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도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사업 표류다. 현재 은행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사업이 중단된 상태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사업에 대해 은행들은 "한국은행이 비용 부담 없이 재촉만 한다"며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글로벌 차원의 규제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미국에서는 리플(XRP)과 솔라나 등 주요 알트코인의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 10월 예정돼 있지만, SEC 내부 이견으로 지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내년 가상자산 시장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신중한 접근을 당부하기도 했다.
고진석 텐스페이스 대표는 "2026년은 가상자산 시장이 투기에서 투자로 완전히 전환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시가총액 상위권 주요 자산을 선별하여 신중히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앞으로의 시장에서 안정적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주요 가상자산으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솔라나, BNB 등을 꼽으며 "이들 자산이 강세를 보이며 연말까지 우상향 흐름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은 이러한 시장 전망에도 불구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투자 지침을 제시했다.
고 대표는 "대형 자산군에 집중하되, 분산 투자를 통해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특히 비트코인의 비중을 60%로 하고, 기타 자산을 40% 정도로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무리한 단기 거래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 전략을 세우고, 시장 변동에 따른 감정적 결정을 자제해야 한다"며 "최소 3개월 동안 시장을 지켜보면서 가능하면 매일 일정 금액을 꾸준히 투자하며 장기 보유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시장 동향과 주요 자산의 펀더멘털을 지속적으로 분석하며, 명확한 투자 목표와 위험 관리 전략을 세워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거시적 시장 환경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며, 큰 수익보다는 안정적 목표 수익에 충실한 전략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