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오픈AI와 향후 5년간 3000억달러 규모 서비스 계약 체결
엔비디아, TSMC 등 AI 인프라 기업 주가 동반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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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전통 강자 오라클(Oracle)이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핵심 플레이어로 화려하게 부상했다. 오라클의 주가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하루 만에 35.95% 폭등하며 1992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례적인 주가 폭등의 배경에는 회계연도 2026년 1분기(2025년 6~8월) 실적 발표에서 드러난 폭발적인 클라우드 수요와 오픈AI(OpenAI)와의 사상 최대 규모 계약 체결 소식이 있었다. 오라클의 이러한 약진은 AI 산업의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오라클의 주가가 사상 최고점을 찍으면서 오라클의 지분 42%를 보유하고 있는 창업자 래리 엘리슨의 자산 가치도 급등해 한때 일론 머스크를 넘어 세계 최대 부자에 올라서기도 했다. 현재는 오라클의 주가가 소폭 하락하면서 일론 머스크에 이은 세계 2위 부자에 자리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가 집계한 래리 엘리슨의 자산은 현재 약 360억달러(약 500조원)에 달한다.

오라클 주가 급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폭발적인 클라우드 수요다. 오라클이 발표한 잔여 이행 의무(RPO, 수주 잔고)는 4550억달러(약 629조원)로 전년 대비 무려 35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RPO는 계약 후 향후 수년간 인식될 매출을 의미하는 지표로 이 수치의 폭발적인 증가는 오라클의 미래 수익에 대한 전망을 극대화하며 시장의 신뢰를 끌어올렸다.

정작 1분기 오라클의 실적은 시장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매출은 월가가 예상한 150억4000만달러보다 낮은 149억3000만달러였고 주당순이익은 1.47달러로 예상치에 살짝 모자랐다. 그럼에도 2030년까지 클라우드 매출을 7배 늘린다는 장기 성장 전망이 주가에 훨씬 더 강력한 모멘텀을 제공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오라클은 오픈AI와 2027년부터 5년간 3000억달러(약 414조원)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자원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클라우드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됐다.

이 계약은 단순히 오라클의 매출 증대를 넘어 세계 최고 AI 기업이 오라클의 클라우드 인프라를 선택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라클이 초거대 AI 모델 훈련에 필요한 막대한 성능과 확장성, 안정성을 갖추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증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픈AI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4.5GW에 달하는 막대한 전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후버댐 2개 이상의 발전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오라클이 이러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인프라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AI 시대의 핵심 경쟁력이 컴퓨팅 파워뿐만 아니라 전력 자원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라클의 발표에 월스트리트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도이체방크, 뱅크오브아메리카, UBS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일제히 오라클의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 오라클의 공격적인 투자 전략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매출액 대비 46%에 달하는 높은 자본적 지출(CAPEX) 비율은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23%)나 알파벳(18%)을 크게 상회하며 향후 매출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주가에 반영됐다.

오라클의 성공이 단순히 AI 붐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독자적인 전략의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오라클은 아마존 웹 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 이른바 빅3와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고 AI 및 데이터베이스(DB) 워크로드에 특화된 틈새 시장을 주력으로 공략해 왔다.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브렌트 틸 애널리스트는 ”AI 시대에서 오라클의 점유율 확대는 명확하다. 오라클의 RPO 4550억달러는 마이크로소프트 3680억달러, 아마존 1950억달러, 구글 1080억달러를 넘어선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이 AWS 44%, MS 애저 30%, 구글 클라우드 21%로 빅3가 전체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지만 2030년에는 오라클이 17%의 점유율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라클의 ‘데이터가 있는 곳에 AI를 배치한다(Bring AI to Data)’는 분산형 클라우드 전략은 데이터 주권 및 보안 문제에 민감한 유럽 등에서 강력한 경쟁 우위가 되고 있다. 여기에 기업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오라클 DB를 가장 빠르고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는 점은 기존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유입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엔비디아 및 AMD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최신 GPU를 대규모로 확보하고 있다는 점 또한 오라클의 기술적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오라클의 주가 폭등이 단순한 기업 개별의 호재를 넘어 AI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라클의 주가 급등 이후 엔비디아, 브로드컴, TSMC 등 AI 인프라 관련 종목들이 동반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AI 산업의 성장이 ‘칩을 구동하는 인프라’로 확산되고 있다고 내다봤다.

물론 오라클의 장밋빛 미래 전망에도 불안 요소는 남아 있다. 당면의 우려는 막대한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지출 부담이다. 오라클은 올해 자본 지출을 350억 달러로 65%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는데 이로 인해 최근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을 기록했다. 오픈AI와 같은 특정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될 경우 사업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클라우드 시장 빅3와의 경쟁 역시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증권가는 오라클의 1분기 실적 발표 후 목표 주가를 대체적으로 350달러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글로벌 투자정보 플랫폼 시킹알파(Seeking Alpha)에서는 급등한 주가에 대한 밸류에이션 부담과 단기 현금흐름 압박을 이유로 보수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오라클의 주가는 10일 최고점을 찍은 후 다시 10% 이상 빠지며 서서히 하락세를 보였지만 15일(현지시간) 미국과 중국 정부가 미국 내 ‘틱톡’ 사업권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3.4% 급등했다. 오라클은 미국 내 틱톡 사업권 인수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거론된다.

지난 1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출범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을 찾은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에게 틱톡 인수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으며 엘리슨 CEO는 인수 의사가 있음을 비쳤다. 다만 클라우드 인프라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오라클이 천문학적 금액이 예상되는 틱톡 사업 인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석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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