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송진현 기자 | 1985년 9월22일, 미국 뉴욕의 플라자호텔에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5개국 재무장관이 모였다.

당시 GDP 기준으로 미국의 약 50%까지 치고 올라온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이른바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냈다. 핵심은 미국에 막대한 무역적자를 안기고 전세계 수출을 쥐락펴락하던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달러 대비 엔 환율이 250엔 수준에서 2년 후 120~130엔까지 2배가량 절상되었다.

그 결과 일본의 수출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이는 일본에 극심한 버블현상을 낳았고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강요로 엔화의 대폭적인 절상이 이뤄지면서 일본 경제가 이후 깊은 수렁에 빠져 좀처럼 회복의 실마리를 찾지못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한국 경제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일본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5500억달러를 투자키로 한 합의문에 서명, 16일부터 대미 자동차 수출의 품목관세를 15%로 낮춰 적용받게 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협정 마무리가 지연되면서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물고 있는 상태다. 일본 자동차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미국 시장에서의 한국 자동차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3500억 달러 현금 투자요구에 우리나라가 합의해줘선 곤란하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상황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4100억달러인데 비해 일본은 1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일본의 GDP는 한국의 2.5배로 경제규모도 한국을 크게 압도한다.

더욱이 일본 엔화는 기축통화로 자리매김돼 있으며 일본은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기도 하다. 일본이 정부차원에서 미국에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총 5500억달러를 지급하더라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지급했다가는 급격한 환율변동으로 제2의 IMF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런 맥락에서 EU가 미국과 맺은 관세협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U는 국가가 보증하지 않는, 순수 민간 기업 차원에서 60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한국으로선 일본의 관세협정 모델을 따르지 말고 EU 방식을 밀어붙여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로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 연구원 딘 베이커도 최근 “한국과 일본이 합의를 수용하는 것은 말도 안되게 어리석을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의 대미 상품 수출액이 GDP의 7.3% 정도인 1320억달러인 점을 감안해 미국이 관세를 15%로 유지할 경우 이 액수는 5% 감소한 12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관세율이 25%로 올라갈 경우 수출 감소액은 125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과 3500억달러에 합의하는 대신 그 금액의 20분의 1을 수출로 손해를 입은 근로자와 기업을 지원하는데 쓰는 게 훨씬 낫다고 딘 베이커는 강조했다.

매우 타당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한국 정부는 미국의 3500억 달러 요구를 받아들이지 말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관세협정을 마무리해야 한다. 일본이 플라자 합의로 '잃어버린 30년'의 경기침체에 시달린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 <한스경제 발행인> 

송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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