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원칙대로’ 불법체류 단속…기업 투자·외교신뢰 시험대에
현대차-LG엔솔 합작공장, 수개월 운영차질 불가피…재발방지책 주목
|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불법체류 단속 여파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우려가 나온다.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에 대한 강제 구금 사태 이후 정부가 후속 조치에 나서며 상황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현지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아울러 미국 내 제조업 기반 강화에 나섰던 양국 협력 구도 향방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지난 4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엘라벨 현대차-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배터리 회사)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 단속을 감행했다. 체포된 인원은 총 475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한국 국적자가 300명 이상 포함됐다. 단일 사업장 단속 규모로는 최대 규모다.
이로 인해 LG에너지솔루션 소속 47명(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명)과 HL-GA 베터리회사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 250여명이 한때 구금됐다. 현재는 한국 정부 측이 포크스턴 ICE 구금시설에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면담을 완료하고 출국 동의 절차를 밟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 체류자 적발을 넘어선 외교 긴장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구금자 중 다수가 무비자 입국 후 장기 체류하거나 관광 목적으로 입국 후 근무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가 이들의 신병 확보 장면을 촬영, 웹사이트에 공개한 점도 구설수를 낳았다.
앞서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통화하며 정상회담을 통해 형성된 양국 신뢰관계와 협력 모멘텀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시기에 이번 사태가 발생하고, 특히 우리 국민 체포 장면이 공개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후 정부는 ICE에 의해 구금된 한국인 300여명에 대해 자진출국 형식으로 귀국시키기로 미국 정부와 교섭을 마무리했다. 강제추방과 달리 자진출국은 본인이 스스로 미국을 떠나겠다고 동의하고 출국하는 것으로 추방 기록이 남지 않는다.
미국 측은 한국인 구금자 대부분을 조속히 석방하고 조만간 전세기를 통해 한국으로 귀국시키는 데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10일 자진출국 희망 직원들을 태워 전세기가 출발할 것으로 전망되나 시점은 유동적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 번복은 혼란을 키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체포 작전 직후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다. ICE는 맡은 일을 했을 뿐”이라며 단속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내 최대 규모 합작 공장을 짓고 있고 전임 정부에서부터 대외 투자 유치를 강조하는 와중에 단속의 정치적·외교적 고려는 없었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읽힌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초기 입장과 달리 이후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과 관계가 매우 좋다”고 다소 톤을 바꿨다.
국내 산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약 76억달러(한화 약 10조5000억원) 규모로 건설 중인 해당 합작공장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혜택을 염두에 둔 핵심 거점이다. 특히 한국이 배터리 소재·부품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불거진 이번 사태는 중장기 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합작공장 운영은 최소 3개월 이상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협력업체 직원 구금과 자진 출국 등으로 현지 공장 설비 도입을 재개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이 공장은 연말 가동을 목표로 건설 마무리 및 생산 설비 도입 중에 있었다. 구금됐던 인원 중 협력업체 직원들이 많았던 것도 이들이 장비 도입 임무를 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구금된 직원들이 귀국하더라도 비자 문제를 해결하려면 3개월 이상 걸리는 만큼 공장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공장 생산량은 연간 30기가와트시(GWh) 규모로 이는 전기차 30만대 분량의 배터리다.
향후 산업계의 대미 프로젝트 판도 변화에도 관심이 쏠린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 신·증설 중인 공장은 최소 22곳이다. 배터리·반도체·철강·석유화학·태양광·조선·식품·유통 등 주력 산업군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들의 미국 투자액은 총 145조원 규모에 달한다. 이 중 올해 완공 예정 공장만 LG에너지솔루션 오하이오 및 미시간 랜싱 공장, LG화학 테네시 공장, 롯데케미칼·롯데알미늄 켄터키 공장, 한화큐셀 조지아 공장, CJ푸드빌 조지아 공장 등 6곳이다.
한편 정부는 재발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 개선을 추진할 방침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향후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산업부 및 관련기업과 공조 하에 대미 프로젝트 관련 출장자 체류지와 비자 체계를 점검 개선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창수 기자 charles@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