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미국은 초지능, 중국은 실용적 AI 전략…한국은 균형 찾아야
AI 거품론에 대한 해답으로 실용주의 AI 부상…판단은 아직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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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인공지능(AI)를 둘러싼 국가 간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과는 다른 AI 전략을 펼치며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이 인공일반지능(AGI) 개발과 독점 모델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반면 중국은 당장 쓸 수 있는 AI 기술의 실용적 확산에 주력하는 장기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양국의 전략적 차이는 한국의 AI 정책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WSJ는 “미국이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붓고 기가와트(GW) 규모의 에너지를 태워가며 중국을 앞서려 하는 동안 중국은 완전히 다른 경주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챗GPT 출시 이후 3년간 AGI 개발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있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AGI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 없이 ‘응용 지향적(strongly oriented toward applications)’ 기술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접근법은 구체적이고 실용적이다. 시진핑은 지난 4월 25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집단학습회에서 ”생산성 향상과 긴급 수요 충족을 위한 실용적이고 저비용 도구” 개발에 최우선 순위를 두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AI플러스 캠페인’을 통해 교육·의료·치안·농업·제조업 등 전 산업에 걸쳐 AI를 신속히 도입하고 있다.

중국의 실용적 AI 전략은 ’다크팩토리’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다크팩토리는 인간 작업자가 없어 조명도 필요 없는 완전 자동화 생산 시설로 AI와 로봇이 조립·검사·물류를 모두 담당한다. 샤오미는 베이징에 3초마다 스마트폰 1대를 생산하는 완전 자율 공장을 건설했고 폭스콘은 인간 개입 없이 작동하는 생산 라인을 구현했다.

의료 분야에서도 혁신이 두드러진다. 칭화대 인큐베이팅 스타트업 타이렉스(Tairex)는 42명의 AI 의사가 운영하는 ’에이전트 병원’ 플랫폼을 개발해 지난해부터 내부 시험을 시작했다. 각 AI 의사는 수일 만에 수만건의 의료 사례를 처리할 수 있으며 진료 정확도 88%, 진단 정확도 95.6%, 치료 권고 정확도 77.6%를 달성했다.

중국 정부는 올해 1월 84억달러(약 11.7조원) 규모의 AI 투자 기금을 조성해 스타트업 지원에 나섰다. 이는 미국의 민간 주도 투자와는 대조적인 국가 주도형 전략이다. 외신들은 중국의 올해 AI 자본 지출을 총 840억~98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중 정부 투자가 560억달러(약 78조원)를 차지한다.

중국 지방정부들도 AI플러스 캠페인하에 각자의 AI 개발 계획을 발표했으며 국무원은 2030년까지 AI를 과학기술 연구와 산업 발전에 종합적으로 통합해 경제 발전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중국의 또 다른 강점은 오픈소스 전략이다. 딥시크(DeepSeek)와 Z.ai 등 핵심 AI 모델을 MIT 라이선스로 공개함으로써 글로벌 개발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했다. 딥시크는 불과 두 달 만에 개발비용 560만달러, API 100만 토큰당 0.55달러라는 효율을 보여주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은 AI 글로벌 3대 강국을 목표로 설정하고 산업·공공 분야 AI 도입을 가속화 중이다. 새 정부는 100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국가 AI 인프라를 조성하고 초거대 AI 인프라와 하이브리드 클러스터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소버린 AI 구축을 통한 해외 기술 의존성 탈피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상황에서 한국이 미국과 같은 AI 기술 선진국을 따라잡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다. 이미 기술 격차가 상당히 벌어진 상황에서 앞으로 투입될 자금에서도 많은 격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AI 전략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기술 격차가 벌어진 AI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하게 투자하기보다는 우리 실정에 맞는 AI 기술을 발굴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나오고 있다.

이미 중국의 성공 사례를 한국에 적용하는 구체적 방법론도 제시되고 있다. 실용 우선 접근법으로는 카이스트·포스텍 중심의 실용 AI 컨소시엄을 구성해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방안이 제안됐다. 오픈소스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네이버·카카오 모델을 부분 공개하며 정부 오픈소스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전문가들은 언제 도달할 지 모르는 완벽한 기술보다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 기술 활용에 집중할 때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이 빠르게 쌓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원태 국민대 특임교수는 “한국은 ‘특화형 소버린 AI’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공동설계’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용주의 AI 전략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AI 거품론에 대한 해결 방안 중 하나로도 제시된다. WSJ는 “AI 버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이 실리콘밸리의 AGI 추구에 대한 실용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중국이 ”가장 똑똑한 기계가 아닌 가장 유용한 기계를 만들려 하고 있다”는 업계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했다.

미국의 AI 관련 전력 수요는 2030년까지 16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중국의 접근법은 상대적으로 지속가능하고 확장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AGI 달성 시점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 목표에만 매몰되면 현재 기술을 활용한 실용적 응용에서 중국에 뒤처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AI 경쟁은 이제 막 시작됐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어떤 전략이 더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말한다. 조지워싱턴대학교의 제프리 딩 교수는 “닷컴 버블 붕괴와 수년간의 발전 과정을 거친 후에야 세계 경제를 재편할 수 있었던 인터넷처럼 AI 분야의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데에도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석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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