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 장비 반입마다 별도 허가 의무화
| 한스경제=고예인 기자 | 미국과 중국발 '악재'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자유롭게 들여올 수 있도록 허용했던 예외 조치’를 없애기로 하면서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내 공장의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중국 최대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인 알리바바가 자체 새로운 인공지능(AI) 칩을 개발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글로벌 기술 패권 변화에 대한 대응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어쩌나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중국의 '반도체 홀로서기'라는 이중 압력에 직면했다. 최근 뉴욕증시와 아시아 주요 시장은 반도체 관련 주가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고 국내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법인은 오는 12월 31일부터 현지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 공장에 들여오려면 건별로 미국 정부의 까다로운 심사 및 라이선스를 받아야 한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가 지난달 2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법인을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승인 목록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다. 구체적으로 핀펫기술을 사용한 로직칩,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생산 장비·기술을 중국 기업에 판매할 경우 미국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신속한 업그레이드와 첨단 공정 도입이 불가능해진 셈이다.
그동안 최소 50조원 가량의 투자금을 중국 반도체 공장에 쏟아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조치로 인해 생산성 개선과 기술 고도화는 큰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는 특히 TSMC 등 대만계 기업에는 영구적 VEU 자격을 부여하고 한국계 기업에만 규제 불이익을 집중했다는 점에서 한국 반도체산업의 불안정성과 차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이번에 명시한 VEU 제외 대상은 삼성전자 시안법인과 SK하이닉스 우시법인·다롄법인 등 3곳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 쑤저우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 충칭에 공장을 두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와의 외교적 협상 및 예외적 허가 요청 ▲동남아·중동 등 신규 투자처 발굴 ▲첨단 패키징 및 신공정 기술 내재화 ▲중국 내 생산설비의 현상 유지와 리스크 관리 등 다각적인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VEU 지위가 철회되더라도 우리 기업들에 대한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정부는 그간 미국 상무부와 VEU 제도 조정 가능성과 관련해 긴밀히 소통해왔다”며 “우리 반도체 기업의 원활한 중국 사업장 운영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안정에 중요하다는 점을 미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VEU 지위가 철회되더라도 우리 기업들이 받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와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 중국 IT기업의 AI 칩 독자 개발 가속화
미국이 때릴수록 중국은 자국의 반도체 자립 추진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최근 화웨이에 이어 중국 최대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인 알리바바가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AI) 칩을 공개했다. 미국이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 통제에 나서자 중국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자체 개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9일 알리바바의 새 AI 칩은 기존 칩보다 더 범용성이 높고 더 다양한 AI 추론 작업에 활용될 수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는 엔비디아 H20 등 저사양 AI 프로세서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엔비디아 칩 대중국 수출 제한과 맞물려 알리바바 및 화웨이 등 중국 IT 기업들은 기술 자립을 주요 기조로 삼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제재 속에서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최근 캠브리콘의 목표가를 기존 1243위안에서 1835위안으로 상향했다. 현재 주가 기준으로도 약 33%의 상승 여력이 남아있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가 캠프리콘의 상승을 기대한 이유로는 ▲중국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자본지출 확대, ▲중국의 반도체 자립화 움직임, ▲캠브리콘의 연구개발(R&D) 투자 의지다.
중국 정부 또한 공공 데이터센터에서 자국산 칩 사용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AI와 데이터 인프라 관련 반도체 시장에서는 중국 내 수요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산 및 한국산 고사양 반도체의 판매·기술 협력 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연이은 악재로 단기적으로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심리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규제 강화와 중국 의존도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글로벌 경쟁력 수성은 물론, 기술 안전 보장 및 국제 공급망 재구조화라는 복합적 문제에 당면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2기 출범 후 대중국 제재가 강화되면서 국내 메모리 밸류체인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으나, TSMC와 마찬가지로 메모리는 이미 수십 년간 공급망이 전 세계로 분산돼 미국 주도로 이를 재편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단기적으로 주가에 부담될 수 있는 뉴스지만 곧 해소될 수 있는 불안감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향후 한미, 한중 관계의 변동에 따라 국내 반도체 산업의 운명 역시 크게 바뀔 수 있는 시점에 놓였다”며 “위기관리와 미래 성장 동력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예인 기자 yi4111@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