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매파기조·관세발 인플레·기관 레버리지 청산 겹쳐
캐시우드, 비트코인 2030년까지 380만달러 긍정론 내세워
|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디지털 자산의 맏형인 비트코인이 심리적 방어선으로 여겨졌던 11만달러를 깨뜨리며 급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모호한 통화정책 신호와 글로벌 규제 강화, 기관투자자들의 레버리지 청산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가상자산 시장 전체가 출렁이고 있다.
2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기준 비트코인은 전주 대비 1.67% 하락한 10만9062달러에 거래됐다. 8월 한 달간 6% 떨어진 데 이어 9월 첫 주부터 추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시장에서는 '붉은 9월' 징크스가 다시 한번 현실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가격 하락과 함께 기술적 지표들도 일제히 경고등을 켜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지난 5월부터 유지해온 핵심 지지선인 11만달러를 하향 돌파했다. 50일 이동평균선도 11만4000달러까지 밀려났다. 특히 단기 추세선이 장기 추세선 밑으로 내려가면서 하락 신호인 데드크로스를 형성했고, 추세 강도를 나타내는 이동평균수렴확산지수(MACD)도 약세 전환을 확인했다.
이같은 급락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연준의 모호한 통화정책이였다. 연준은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를 4.25~4.50%로 5차례나 동결하며 시장 기대를 번번이 저버렸다. 오는 16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앞두고 시장은 86% 확률로 0.25%포인트 금리 인하를 예상하고 있지만, 연준 내부의 신중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요인들이 연이어 등장한 것도 시장 불안을 키웠다. 금융·투자 정보 플랫폼 시킹알파에 따르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 신호를 보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까지 고개를 들었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2.7% 오르는 데 그쳐 인플레이션 진정 기대감이 커졌지만, 지난달 15일 등장한 '안전무역법안'이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모든 수입품에 10% 기본 관세, 중국산에는 최대 100% 징벌 관세를 매기겠다는 이 법안을 두고 전문가들은 생필품 가격을 15~18%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3%포인트 금리 인하를 요구했지만, 관세발 인플레이션 공포가 이를 제약하는 족쇄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시장 상승을 이끌었던 제도권 자금 유입이 이번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IBIT는 8월 기준 910억달러(약 122조원) 규모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 7월에는 70만 비트코인을 돌파하며 ETF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문제는 투자 방식이었다. 상당수 기관이 차입을 통해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이른바 '트레저리 전략(기업이 전략적 준비금의 일부를 비트코인으로 보유하는 것)'을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8월 들어 상황이 급반전됐다. 파사이드UK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에서 8월 한 달간 7억4920만달러의 순 유출이 발생했다. 이는 6월 이후 첫 주간 순 유출로, 기관투자자들의 포지션 조정이 본격화했음을 뜻한다.
레버리지 포지션은 상승장에선 수익을 키우지만 하락장에선 손실을 증폭시키는 양날의 검이다. 실제로 비트코인이 11만달러 지지선을 하향 돌파하자마자 대규모 레버리지 청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블록헤드 분석에 따르면 장기 보유자들이 9만7000달러 수준에서 매도세를 보이면서 15억달러 규모의 ETF 자금 유입에도 불구하고 하락 압력이 지속됐다.
시장 내부 요인에 더해 규제 불확실성까지 시장 불안을 키웠다.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시장(MiCA) 법안이 작년 12월 30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으며, 올해 1월부터는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CASP)들이 EU 내에서 영업하려면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15개 EU 회원국이 이미 18개월보다 짧은 전환 기간을 채택하면서 규제 압박이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규제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달 백악관이 내놓은 '디지털 자산 정책 보고서'가 시장 혼란을 부채질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전략비축 암호화폐'로 분류한 반면 리플(XRP) 등은 배제했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정책적으로 '골라잡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 가운데, 코인베이스의 대규모 보안 사고까지 겹쳤다.
이 같은 복합적 악재로 인해 일부 전문가들은 추가 하락 가능성을 경고했다. 매트릭스포트리서치 관계자는 "비트코인의 조정은 새로운 촉매 요인이 가격 변동을 이끌어낼 때까지 2~3주간 지속될 것"이라며 "9월 계절적 요인이 여전히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혁신적 기술 투자로 유명한 캐시 우드는 비트코인에 대해 대담한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ARK 인베스트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우드는 비트코인이 2030년까지 380만달러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드는 "비트코인 하락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비트코인이) 기관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상품으로부터 단 1~5%의 자금 재배치만 이뤄져도 수십억달러의 자본이 유입될 것"이라고 전했다.
세계적인 펀드 운용 그룹 피델리티 인터내셔널 소속인 분석가들은 비트코인이 2038년까지 10억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예측의 배경에는 비트코인의 공급 한정성(2100만개)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수요가 있다.
최현호 전 동의대 경영학부 교수는 "단순한 차트 분석이나 가격 예측에만 매달리지 말고 거시경제·규제 환경까지 종합 분석해야 한다"며 "기관투자자들은 레버리지 전략의 위험성을 되돌아보고 건전한 투자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