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청글로리, /한국마사회 제공
챈청글로리, /한국마사회 제공

| 한스경제=류정호 기자 | 경마는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 수 세기에 걸쳐 각국의 문화와 전통이 응축된 세계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해 왔다.

경마 종주국인 영국의 ‘앱섬 더비’는 1780년부터 이어져오며 왕실과 귀족뿐 아니라 일반국민으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가장 짜릿한 2분(The Most Exciting Two Minutes in Sports)’ 이라는 수식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켄터키 더비’는 올해 기준 시청자 수 2180만명, 더비경주 단일 베팅액 2억3440만달러(약 3272억원)를 기록하는 등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내셔널풋볼리그(NFL) 정규시즌 시청자수가 약 3000~3500만명 수준임을 감안할 때 경마가 자국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 스포츠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경주가 개최되는 처칠다운스 경마장이 소재한 루이빌 지역은 해당 기간 중 호텔 객실 점유율이 90%를 넘어서는 등 미 전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중이 몰려들며 4억4100만달러(약 6155억원)의 지역 경제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와 전통 면에서 영미권 국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이른바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의 상금을 자랑하며 무서운 속도로 세계 최고 경마대회 타이틀을 추격하는 중동 국가들도 있다. ‘사우디컵’과 ‘두바이 월드컵’이 대표적이다. 메인 경주 총상금이 각 2000만달러(약 277억원), 1200만달러(약 166억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올해 사우디컵에서는 일본의 ‘포에버영(Forever Young)’, 두바이 월드컵에서는 역전의 아웃사이더, 미국의 ‘히트쇼(Hit Show)’가 우승하며 총상금의 절반인 145억원, 99억원을 가져갔다.

두라에레데. /한국마사회 제공
두라에레데. /한국마사회 제공

 아시아의 한계를 넘어 세계무대로의 도약을 준비 중인 ‘K-경마’는 경주 공정성과 강화된 동물복지 기준, 고화질 생중계, 풍부한 데이터 및 리플레이 제공 등으로 해외 팬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전 대륙 26개국 수출, 전년 기준 약 1200억원의 매출이 이를 방증한다. 거기에 봄가을 야간경마, 사계절 축제, 도심 접근성 등 해외 팬들의 방문 경험까지 더해지며 K-컬처형 레저로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위상을 높여가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국제경주인 ‘코리아컵’과 ‘코리아스프린트’도 올해로 8년 차를 맞이했다. 국제무대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만큼 해외에서 원정 오는 경주마들의 수준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70여 두에 가까운 해외마가 예비 등록을 마쳤고, 지난 24일 해외 출전마 총 8두의 최종 명단이 발표됐다. 대부분 국제 레이팅 110 이상의 우수한 말들이지만 이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우승 후보 4두를 소개한다.

우선 해외경주에 관심이 있는 경마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이름이자 홍콩을 대표하는 인기마는 ‘챈청글로리(Chancheng Glory)’이다. 이번 챈청글로리의 출전이 더욱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은 코리아컵 출전으로 경주 실황이 홍콩으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홍콩은 해외 경주 실황 수입에 있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데 인터내셔널G1급 경주이거나 자국 경주마가 출전하는 경우 등으로 제한한다. 이번 수출로 마사회는 최소 100억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다. 매출뿐 아니라 한국경마에 대한 홍콩인들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타가노뷰티. /한국마사회 제공

2020년 3월생으로 올해 5세인 챈청글로리는 통산전적 29전 8승, 이 중 2위는 4회, 3위는 5회 차지했다. 작년 올해 1월 개최된 Centenarry Vase(G3, 1800m)에서 거둔 우승이 커리어 하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시티홍콩골드컵’ 등 G1급 경주에 출전해 3위를 기록하는 등 선전하고 있다. 현재까지 수득상금은 2220만 홍콩달러(약 40억원) 가량이다. 조교사인 프랜시스 루이는 홍콩 최강마이자 국내 팬들 사이에서도 ‘경주에서 지면 분을 못 이겨 우는 경주마’로 알려진 ‘골든 식스티(Golden Sixty)’의 담당 조교사이기도 하다.

일본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꼽히는 ‘두라에레데(Dura Erede)’는 부마가 ‘두라멘테(Duramente)’, 모마가 ‘마르케사(Marchesa)’, 외조부마가 ‘오르페브르’로 탁월한 혈통을 자랑한다.

2020년 1월생인 이 말은 이미 2세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2022년 연말 일본 나카야마 경마장에서 열린 ‘Hopeful Stakes’(G1, 2000m)에서 대이변을 일으키며 우승했다. 당시 90.6배라는 고배당 속에 거둔 승리로 일본 경마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2023년과 2024년 ‘Champions Cup’(G1, 1800m)에서 연속 3위를 기록하며 더트주로의 강호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두바이, 사우디 등 세계적 더트 무대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재까지 통산전적 18전 2승, 이 중 2위 2회, 3위 4회를 기록하고 있다. 수득상금은 약 1억9500만엔(약 19억원) 가량이다. 국내 팬들도 일본 더트경마의 차세대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두라에레데의 실력을 직접 체크할 좋은 기회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 경마 팬들에게 꾸준함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는 ‘타가노뷰티(Tagano Beauty)’는 2017년생으로 스프린터형인 부마 ‘헤니휴즈(Henny Hughes)’의 혈통을 이어받아 더트 단거리에 강세를 드러내 왔다. 초반에는 페이스 조절에 힘쓰다가 경주 중후반전 힘을 응축,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폭발적으로 추입하는 스타일이다. 이러한 경주 전개는 ‘팬들이 가장 믿고 보는 더트 베테랑’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통산전적 40전 6승, 2위 10회, 3위 10회로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총상금은 3억엔(약 30억원)을 돌파했다.

치카파. /한국마사회 제공
치카파. /한국마사회 제공

화려한 G1 우승마는 아니지만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이어온 커리어와 여전히 건재한 막판 추입력이 합쳐지며 많은 팬의 관심을 끌고 있다. ‘타가노뷰티’는 지난 2010년 국제기수초청으로 한국에 방문해 YTN배에서 우승을 거둔 이시바시 슈 기수가 기승한다. 당시 떠오르는 신예였던 그가 이번 경주에서 얼마나 노련해진 기승술을 선보일지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치카파(Chikappa)’는 2021년생으로 ‘젊고 강한’ 스프린터계의 강자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부마는 딥임팩트 계열의 ‘리얼스틸(Real Steel)’, 모마는 ‘유니캐라(Uni Chara)’로 뛰어난 혈통 기반을 갖추고 있다. 특히 부마는 다수의 그레이드경주 우승마를 배출한 명종마로 ‘치카파’를 비롯해 ‘올파르페’, ‘레벤스틸’ 등 우수 경주마를 다수 생산했다.

‘치카파’는 통산전적 17전 5승, 2위 6회를 기록하고 있으며 수득상금은 1억5000만엔(약 14억원) 가량이다. 데뷔 직후에는 잔디주로를 주로 달렸던 더트주로로 성공적으로 전환해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아왔다. 지난해 ‘동경배경주’(JPN2, 1200m)서 1위, 연이어 ‘JBC스프린트’(JPN1, 1400m)서 2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이번 코리아스프린트에서도 맹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치카파’에 기승예정인 기수는 다케 유타카로 일본 경마의 아이콘이자 레전드로 불리는 인물이다. 세대 불문, 경마는 몰라도 다케 유타카를 모르는 일본 국민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1987년 데뷔 이래 38년 동안 활동해 오면서 겸손한 자세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국민적 인기를 얻어온 다케 유타카와 젊은 스프린터 ‘치카파’가 선보일 호흡이 궁금해진다.

류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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