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과 지나친 밀착…개인정보 침해 우려 부각
|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 미국 증시의 주도주로 급부상했던 인공지능(AI) 방산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주가가 지난주 15.7% 급락하며 투자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팔란티어의 주가는 지난 12일 186.97달러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후 현재 157.17달러까지 하락했다. 이는 4월 이후 가장 긴 연속 하락 기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란티어의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100% 이상 상승하며 여전히 S&P 500 최고 성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주가 급락의 직접적 원인은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 앤드류 레프트가 운영하는 헤지펀드 시트론 리서치의 공격 때문이다. 시트론은 지난 19일 팔란티어에 대한 공매도 보고서를 발표하며 목표가를 40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현재 주가 대비 75% 하락을 의미한다.
레프트는 “팔란티어는 역사상 가장 비싼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주식”이라며 “오픈AI와 동일한 매출 대비 밸류에이션을 적용하면 40달러가 적정가”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팔란티어의 밸류에이션 지표는 극단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주가수익비율(PER)이 523.9배에 달해 마이크로소프트(30배), 구글(25배) 등 주요 기술주보다 10배 이상 높다. 순방향 PER도 212배로 메타(22배), 구글(20배)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다만 팔란티어의 실제 사업 실적은 매우 양호하다. 지난 8월 발표한 2분기 실적에서 매출 10억4000만달러(약 1.4조원)를 기록해 처음으로 분기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한 수치다. 이에 팔란티어는 올해 전체 매출 전망치를 지난해 대비 45% 성장한 41억4000만달러(약 5.7조원)로 상향 조정했다.
분야별로는 미국 상업 부문 매출이 3억6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3% 급증했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한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한 4억2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계약 총액은 22억7000만달러로 140%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3년 페이터 틸과 알렉스 카프가 창립한 팔란티어는 단순한 데이터 분석 회사를 넘어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팔란티어는 AI 분야의 메시와 같다. 대형 언어모델(LLM)은 팔란티어 없이는 실제 세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팔런티어의 사업은 크게 세 가지 플랫폼으로 나뉜다. 정부 전용 플랫폼 ‘고담(Gotham)’은 CIA, FBI, NSA 등 미국 정보기관과 국방부의 핵심 도구다. 오사마 빈 라덴 추적 작전부터 현재의 사이버 테러 방지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상업용 플랫폼 ‘파운드리(Foundry)’는 2016년 출시된 기업용 데이터 운영 체제로 모건 스탠리, 머크, 에어버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데이터 처리를 단축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AI 플랫폼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는 2023년 출시된 차세대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여러 대형 언어모델을 통합하고 AI 에이전트를 관리해 기업 전체의 의사결정을 AI가 지원하도록 설계됐다.
팔란티어는 현재 정부 부문에서 55%, 상업 부문에서 45%의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상업 부문이 연평균 93% 성장하며 정부 의존도를 낮춰가고 있다. 팔란티어의 성장 가속화는 2023년 챗GPT 열풍과 함께 시작됐지만 단순히 AI 트렌드를 따라간 것은 아니다. 20년간 축적된 데이터 통합 노하우와 AI를 결합한 것이 핵심이다.
팔런티어의 강점은 ‘온톨로지 기반 구조’다. 컴퓨터 분야에서 온톨로지는 특정 영역들의 개념과 이들 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을 의미하는데 팔런티어는 데이터 간의 관계와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의하고 텍스트·이미지·음성을 통합 처리해 단순한 인사이트가 아닌 즉시 실행 가능한 결과를 제공한다.
미국 정부 시장에서는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최고 보안 등급 시스템 구축 경험과 한 번 도입하면 교체가 거의 불가능한 미션 크리티컬 시스템의 특성, 기관 간 데이터 공유 시 필요한 표준화된 플랫폼 요구 등이 후발 주자들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팔란티어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리스크 중 하나인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 침해 논란이 정부 사업에서 비롯된다. 회사 기술이 정부 감시 체계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되면서 다양한 윤리적, 법적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 폭로 이후 팔란티어와 NSA의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 간 연관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공식적으로는 직접 연관성을 부인하지만 팔란티어가 제공하는 플랫폼이 NSA가 구글·페이스북·애플 등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백엔드 시스템으로 활용된다는 의혹이 있다.
미국 이민세관단속청(ICE)의 핵심 도구인 ‘FALCON 시스템’도 논란이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가족 분리 정책의 기술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로 인해 팔란티어 직원들의 항의와 사직이 이어지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뉴욕 경찰서 등에서 활용되는 예측 치안 시스템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기존 편견이 알고리즘에 반영돼 소수민족 지역 집중 단속으로 이어진다는 비판이다.
올해 트럼프 재집권 이후 팔란티어의 정부 데이터 통합 역할이 더욱 확대되면서 감시 사회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민주당 의원 10명은 지난 6월 팔란티어에 서한을 보내 연방 기관 데이터를 통합하는 마스터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 론 와이든 상원의원은 “트럼프가 정적들을 감시하고 표적화할 도구를 제공하는 감시의 악몽”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국세청(IRS), 사회보장청, 국토안보부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해 개인의 세금 기록, 의료 정보, 학자금 대출, 은행 계좌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것이 1974년 프라이버시법 등 다수 연방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는 “민주 국가를 돕지 않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민주적 감시와 견제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매출의 55%가 정부 계약에서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리스크는 계속 확대될 전망이다.
주가 하락을 증폭시킨 또 다른 요인은 임원진의 대량 주식 매도다. 지난 1년간 팔란티어 임원들의 주식 매도와 매수 비율이 2350대 1에 달하는 극단적 불균형을 보였다. 특히 주가가 최고점 근처에 있을 때 집중적인 매도가 발생해 내부자들조차 현재 주가가 과도하다고 판단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 증권가에서는 팔란티어 주식에 대해 ‘보유’ 의견을 내며 목표주가를 137.16달러로 현재가 대비 13% 하향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 애널리스트들이 현재 밸류에이션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팔란티어의 극단적 밸류에이션은 완벽한 실행과 지속적 고성장을 전제로 하고 있어 작은 실망에도 큰 폭 조정이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분석했다.
팔란티어는 올해 3분기 매출을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한 수준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이런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수 있을지 그리고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운영을 통해 정치적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을지가 향후 주가 향방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석주원 기자 stone@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