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1일부터 홍콩, 라이선스 의무화·50개 업체 신청 대기 중
미국 연방법 완성, 한국은 뒤늦은 출발...2조달러 시장 경쟁 본격화
이미지=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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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홍콩이 1일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스테이블코인 허가제를 시행했다. 아시아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홍콩이 미국·중국·유럽 등 주요국보다 앞서 스테이블코인 규제 표준을 선점하며 글로벌 디지털 금융 질서 재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28년 2조달러(약 27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되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국의 제도화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1일 홍콩금융관리국(HKMA)에 따르면, 지난 5월 21일 입법회를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조례가 정식 발효됐다. 이에 따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운영 사업자는 반드시 HKMA의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하며, 미인가 사업자에 대한 마케팅은 전면 금지된다.

현재 약 50개 업체가 라이선스 신청을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단일 또는 복수의 법정통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주요 규제 대상이며, 발행사들은 ▲고품질·고유동성 예치자산 100% 이상 보유 ▲독립 감사·투명한 공시 ▲엄격한 고객확인(AML) ▲소비자 보호·환불 청구권 부여 등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

로펌 메이어브라운과 로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 운영 사업자에게는 6개월간의 유예기간이 부여되지만, 미인가 영업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강력한 규제 의지를 드러냈다.

◆ "글로벌 규제 표준 선점" 홍콩의 야심찬 행보

홍콩 당국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규제를 넘어 글로벌 암호자산 규제 표준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 로펌 데이비스 포크는 지난달 발표한 특별 리포트에서 "이번 조례와 가이드라인은 미국, 유럽 등과 비교해도 가장 면밀하고 선진적인 구조를 갖췄으며, 향후 크로스보더 결제 및 공공·민간 파트너십에서 규범적 기준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HKMA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투기·투자 수단이 아니라 실질 결제 솔루션"임을 강조하며, 예치금 신탁관리, 조기 해지·상환 의무, 고도의 자금세탁방지 체계 등 세밀한 관리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 암호자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실물경제와의 연계를 통해 건전한 금융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점은 홍콩의 이런 행보가 중국 본토의 정책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베이징 당국이 위안화 유출과 금융 불안 우려로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을 '전면 금지'하고 있는 반면, 홍콩은 글로벌 자본 유입과 혁신 실험장 역할을 적극 용인하고 있다. 이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 하에서 홍콩이 중국과 차별화된 금융정책을 추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규제 경쟁에서 미국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지니어스 법(GENIUS Act)'에 서명하면서 연방 차원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완성했다. 이는 연방 차원 최초의 포괄적 스테이블코인 규제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미국의 규제 체계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평가다. 각 연방기관(SEC, CFTC)과 주별 기준이 혼재해 시장 혼란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준비금, 투명성, 고객 보호 등의 의무는 명시됐지만, 일관된 통제와 시장 일원화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뒤늦게 글로벌 경쟁에 합류했다. 지난달 28일 여야 의원들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을 동시 발의했지만 현재 자본시장법, 전자금융법, 특별금융정보법(특금법) 등 기존 금융법령에는 스테이블코인을 직접 규율하는 조항이 없는 상태다.

타이거리서치 윤승식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논의 자체가 늦게 시작된 것부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홍콩은 스테이블코인 샌드박스를 시행했으며 그 이전부터 논의를 이어왔기에 충분한 합의를 이뤘다. 반면 한국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중심으로 진행해왔으며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가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 "아직 늦지 않았다"···한국형 모델 가능성 제기

그러나 업계에서는 한국이 아직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상자산 분석 전문기업 체이널리시스코리아 구민우 부사장은 "아직 늦지 않았으며, 한국의 금융 규제 역량을 반영한다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운용의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구 부사장은 "현재 입법부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 관련 법안이 제정 중이며, 기존 특금법과 외국환거래법 등의 후속 개정을 통해 보다 정교하고 빈틈없는 규제 체계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다만 그는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가지 중요한 과제를 제기했다. 7년간 가상자산 의심거래 분석업에 종사해온 구 부사장은 "발행 이후 스테이블코인이 개인 지갑이나 해외 거래소 등을 통해 유통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금세탁이나 불법 자금 이동을 탐지·대응할 수 있는 '유통단계 실시간 거래 모니터링 체계'에 대한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단계의 규제뿐만 아니라 실제 시장 유통 과정에서의 리스크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통찰로,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홍콩의 이번 조치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미칠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홍콩이 동일 행위, 동일 규제 원칙 아래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표준을 실질적으로 선점했다"며 "중국 본토의 보수적 통제, 미국의 혼합적 입장, 한국의 정책 공백과 대비되는 강한 리더십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금융업계에서는 "홍콩의 스테이블코인법이 암호자산 금융 혁신에 제도적 안전망을 제공한 첫 사례"라며 "향후 글로벌 블록체인 산업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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