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207억달러 자금…그레이스케일 제치고 블랙록·피델리티 주도권 장악
월가 스테이킹 개방에 관심…국내서 출시 여전히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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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한때 시장의 뜨뜨미지근한 반응 속에 지난해 7월 출범한 이더리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1년 만에 월가의 지형을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로 부상했다.

총 27조원(약 207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빨아들이며 비트코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제도권 핵심 자산으로 공인받았을 뿐만 아니라, '수익을 내는 금고'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혔다.

◆ 수수료 경쟁이 판가름한 ETF 패권전쟁

3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이더리움 ETF 시장은 월가 '공룡급' 자산운용사들 간 정면 충돌의 장이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과 피델리티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반면 기존 강자인 그레이스케일은 투자자들의 싸늘한 외면 속에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그 승부를 가른 결정적 무기는 바로 수수료였다. 가상자산 전문 미디어 DL뉴스에 따르면 그레이스케일의 이더리움 신탁(ETHE)은 ETF 전환 이후에도 연 2.5%라는 높은 운용보수를 고집했다. 반면 블랙록의 '아이셰어즈 이더리움 트러스트(ETHA)'와 피델리티 등 신흥 강자들은 0.15~0.25%대의 파격적인 저수수료를 내걸며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투자자들의 선택은 명확했다. '비싼 브랜드' 대신 합리적인 상품으로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블룸버그 ETF 애널리스트 에릭 발추나스에 따르면 실제로 그레이스케일 ETHE에서는 1년 만에 43억달러가 빠져나갔고 이 막대한 자금은 고스란히 블랙록 ETHA 등 저수수료 ETF로 이동했다. 그 결과 ETHA는 1년 만에 100억달러를 돌파하며 ETF 역사상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이더리움 ETF의 성공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본질적 차이를 극명하게 부각시켰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서 희소성과 가치 저장의 상징이라면 이더리움은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을 앞세워 '디지털 석유'라는 새로운 지위를 확보했다. 마치 석유가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듯, 이더리움은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dApp)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경제의 엔진을 돌리는 핵심 연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최근 자금 흐름 양상도 이런 인식 변화를 뒷받침한다. 이달 들어 일주일 만에 미국 시장의 이더리움 ETF로만 18억5000만달러가 몰려든 반면, 비트코인 ETF에는 고작 7200만달러 유입에 그쳤다. 이는 투자자들이 단순한 가치 저장 수단을 넘어 실제 사용성(유틸리티)과 성장 가능성에 더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스테이킹 개방, 마지막 남은 퍼즐

이제 시장의 관심은 스테이킹 개방에 쏠려 있다. 이더리움은 네트워크에 코인을 예치하면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현재 ETF 투자자들은 규제상 스테이킹 참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만약 스테이킹 보상이 이더리움 ETF에 결합된다면 어떨까. 가상자산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는 “이더리움이 월스트리트에서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인 금융 상품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순히 가격 상승만을 기대하는 투자에서 벗어나 정기적인 수익까지 창출하는 일석이조 상품으로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이 이더리움 ETF를 중심으로 가상자산 시장 재편에 나선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여전히 관련 상품 출시가 요원하다. 금융당국이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투자자 보호 문제를 들어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재현 Noone21 대표는 “해외에서는 이미 이더리움을 포함한 다양한 가상자산 금융 상품이 출시돼 제도권에 안착하고 있다”면서 “국내 투자자 보호와 해외 자금 유출 방지,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해서라도 이더리움 ETF 도입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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