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저 공기저항계수 0.144 달성...최고 수준 공력 성능 입증
| 한스경제= 곽호준 기자 | 시험차가 시속 200km의 강풍도 거뜬히 견디며 질주한다. 또 풍동시험실 속 눈보라가 몰아치는 영하 30℃에서도 전기차는 끄떡없다. 이 모든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자동차의 목표는 단 하나다. 전 세계 각지 도로를 달리기 위해 축적된 데이터와 집약된 기술은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실현하는 자동차'를 완성하기 위함이다.
23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를 찾았다. 남양연구소는 글로벌 완성차 시장 3위를 3년 연속 유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핵심 기지인 만큼 철저한 보안 속에서 제한된 시설만 투어를 진행했다.
이날 상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곳은 ▲공력시험동 ▲환경시험동 ▲R&H성능개발동 ▲NVH동 총 네 곳으로 극한의 테스트를 수행하는 핵심 연구 시설이다.
◆ 공력시험동 - 공기 흐름을 가다듬어 저항을 줄이는 핵심시설
자동차의 공력성능은 ▲동력성능 ▲연료(전기에너지) 소비 효율 ▲주행 안정성 ▲주행 소음(풍절음) 등 차량 성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전기차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 자동차와 공기역학의 관계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공력성능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공기저항계수(Cd)'다. Cd란 공기의 저항을 받는 정도를 숫자로 표시한 것으로 0~1 사이 범위에 분포하며 수치가 낮을수록 공기저항을 덜 받아 효율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현대차·기아는 Cd를 낮추기 위해 공력시험동에서 개발하는 전 차종을 대상으로 공력성능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공력시험동은 3400마력의 출력을 발휘하는 직경 8.4m, 건물 3층 높이 크기의 송풍기로 차량 속도 기준 시속 200km까지 재현한다. 현대차그룹이 개발하는 자동차는 이런 극한 환경 속에서 고속 주행을 하더라도 공기 흐름을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
특별히 이날은 세계 최저 Cd 0.144를 달성해 최고 수준의 공력 성능을 입증한 '에어로 챌린지 카를' 공개했다. 이를 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액티브 카울 커버 ▲액티브 사이드 블레이드 ▲액티브 리어 디퓨저 ▲3D 언더커버 등 공력 제어 신기술이 대거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는 향후 양산차 기술이나 파츠 등의 개발에 반영될 예정이다.
박상현 공력개발팀 팀장은 "개발하는 모든 자동차의 공력 성능을 높이기 위해 외관 디자인부터 차량의 하부 설계는 물론 공력 신기술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 환경시험동 - 영상 50℃, 영하 30℃ 폭염·혹한 환경 검증 한 곳에서
자동차는 최적의 환경에서만 달리지 않는다. 고온 다습, 혹한의 설원, 폭우와 폭설 등의 어떠한 기후 조건에서도 문제없이 달려야 한다.
환경시험동은 이를 검증하는 공간으로 실제 환경을 다양하게 구현하는 '환경 풍동 챔버'를 통해 온도, 습도, 풍속, 조도 등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는 시설이다. 이곳에서는 영하 30℃ 혹한 지역부터 50℃에 육박하는 고온 환경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인 기후를 고스란히 재현하며 냉·난방 공조 시스템과 전기차의 배터리 열관리 성능을 검증한다.
50℃에 육박하는 고온 챔버는 '솔라(Solar)'라고 불리는 인공 태양광 제어 램프로 최대 제곱미터당 1200W의 일사량으로 태양광 노출 환경을 재현한다. 이곳에서는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6 N'이 열을 견디며 시속 50km로 주행 중이었고 ‘서멀 마네킹(Thermal Manikin)’이라는 센서 탑재 인체 모형이 냉방 쾌적성을 측정하고 있었다. 서멀 마네킹은 실제 사람을 대신해 차량 내부의 쾌적성을 측정하는 장비다.
송대현 차량시험1팀 책임연구원은 "서멀마네킹을 통해 에어컨 송풍구 위치나 공조 시스템의 작동 방식에 따라 체감 온도가 어떻게 달라지는 확인할 수 있어 실내 쾌적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강설·강우 환경 풍동 챔버에서는 영하 30℃로 설정된 극한의 환경 속에 대형 전기차 '아이오닉 9'이 눈보라를 맞으며 실험대에 올라 있었다. 이곳에서는 눈·비 유입에 따른 배터리 상태, 충전구 불량 여부, 보닛·도어·트렁크 등과 같은 개폐 장치 상태 등을 세밀히 점검해 전장 계통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고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에 기아에서 새롭게 공개한 전동화 목적기반차(PBV)인 'PV5' 역시 영하 20℃로 설정된 저온 챔버에서 배터리 효율 검증과 히트펌프 성능을 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고효율 히트펌프를 비롯해 최소 전력으로 최대 난방 효과를 내는 기술의 시험과 평가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 R&H성능개발동 - 실제로 주행하지 않아도 정교한 데이터 확보 가능
주행의 즐거움은 단지 속도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노면 충격의 흡수, 핸들링 반응성, 서스펜션 조율 등의 주행 감각은 자동차의 경쟁력을 완성하는 필수 요소다.
무엇보다 전동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R&H(Ride & Handling) 성능은 차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전기차는 슈퍼카에 비등한 가속력을 낼 수 있어 고속 영역에서의 주행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전기차는 배터리로 인한 무게 증가로 서스펜션과 타이어에 가해지는 부담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대비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R&H성능개발동에서는 ▲고속 타이어 진동 분석 ▲타이어 특성 시험 ▲핸들링 주행 시험기 ▲승차감 시험기 등을 통해 실제 도로에서 주행하지 않아도 일반 도로는 물론 레이싱을 즐기는 서킷과 같이 모든 주행 조건에 대응하는 데이터를 축적한다.
특히 차량의 핸들링 특성을 연구개발하는 핸들링 주행 시험기에서는 주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차 평가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실제 차량과 주행 로봇이 탑재돼 다양한 가상 도로 환경을 체험하면서 한계 상황을 반복 평가할 수 있다.
김성훈 주행성능기술팀 연구원은 "실제 바깥에 있는 도로에서 주행하지 않아도 이 시험기를 통해 다양한 노면 조건과 한계 상황을 반복적으로 시험할 수 있다"며 "스팅어링 응답이나 차량의 거동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하는 데 큰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 NVH동 - 정숙함을 뛰어넘는 감성까지 입히는 곳
전동화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정숙성과 편안함 역시 자동차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엔진 소음이 사라진 전기차는 작은 풍절음, 노면 소음, 미세한 진동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NVH(소음, 진동, 불쾌감) 성능이 더욱 중요하다.
NVH동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이다. 다양한 주행 조건을 구현해 NVH 성능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정숙성은 물론 감성 품질까지 동시에 충족하는 차량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표 시설인 '로드노이즈 실험실'은 10×14m 규모로 벽면은 두꺼운 흡음재로 빈틈없이 둘러싸여 소리의 반사가 없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3D 스캔으로 제작된 실제 도로의 노면 질감을 그대로 구현한 패치를 샤시 다이나모미터 롤링 벨트에 부착하여 노면 소음을 반복 측정한다.
서재준 소음진동기술팀 팀장은 “아스팔트, 콘크리트, 험로 등 실제 도로와 최대한 동일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3D 스캔과 재료 반발계수까지 반영한 패치를 제작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로드노이즈 시험 목적은 소음의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설계와 소재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소음 원인을 줄여나가기도 한다.
이어 방문한 '몰입음향 스튜디오'는 가상현실(VR)을 기반으로 음향 성능을 평가하는 곳이다. 이곳은 외부시험로, 터널, 실내 주차장 등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차량 음향을 체험하며 차량 내부 음향은 물론 보행자 보호음(AVAS)까지 가상공간에서 구현한다.
바로 옆에 위치한 '몰입음향 청취실'은 실제 차량에 탑승한 듯한 청각 경험을 제공한다. 수십 개의 '돌비 애트모스' 스피커와 '앰비소닉' 음향 시스템을 통해 인포테인먼트 음향부터 주행음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정욱 소음진동해석팀 책임연구원은 "고객이 실제로 듣게 될 음향을 있는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정숙성뿐 아니라 감성적 사운드 경험까지 설계하는 것이 현대차·기아의 목표"라고 밝혔다.
남양기술연구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술을 정밀하게 다듬으며 미래 모빌리티의 설계를 시작해 완성해가는 현대차그룹의 심장이다. 이 같은 종합 개발 역량이 바로 현대차·기아가 미래 모빌리티를 선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라 할 수 있다.
곽호준 기자 khj@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