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배터리 전해액 업계 1위 엔켐이 대규모 전환사채(CB) 발행을 계기로 재무구조 대수술에 나서고 있다. 회계상 손실 확대와 부채비율 급증이라는 단기 충격에도 불구하고, CB 전환을 통한 자본 확충과 재무 안정화라는 구조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하지만 최근 1년간 주가가 80% 이상 폭락하며 지속되는 적자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장폐지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2025년 1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계속되면서 엔켐이 성장통을 딛고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부상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 CB 발행이 부른 회계 쇼크···장부상 손실 5000억원 돌파
22일 금융위원회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엔켐의 재무 악화는 2023년부터 시작된 공격적인 CB 발행에서 비롯됐다.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했지만, 이는 오히려 매출 감소와 파생상품 평가손실이라는 예상치 못한 역풍으로 작용했다.
2023년 연결기준 매출액은 4247억원으로 전년 대비 833억원(16.4%)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겨우 30억원에 그쳤고, 당기순손실은 501억원까지 확대됐다. 2024년은 더욱 암울하다. 영업손실 653억원, 당기순손실 5712억원으로 적자 기조가 심화됐다.
적자 전환의 핵심 원인은 영업 외적 요인, 즉 전환사채 평가손실에 있다. 파생상품으로 분류되는 전환권은 주가 상승 시 부채로 계상되며, 공정가치 상승분이 회계상 손실로 반영되는 구조다. 2023년 260억원에 불과했던 파생상품평가손실은 2024년 무려 5201억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실제 현금 유출이 아닌 장부상 손실이어서 기업의 본질적 경영 상황과는 괴리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대규모 회계 손실은 투자자 심리를 크게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부채비율 400% 급증에도 미래 투자 강조···자본 확충 효과는 긍정적
CB 발행 여파로 2023년 말 기준 엔켐의 부채비율은 종전 150%대에서 400%까지 급등했다. 파생상품부채가 전체 부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부채는 주가와 연동된 평가성 부채로, 향후 CB가 주식으로 전환될 때 자본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차입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실제로 2024년 상반기 CB 일부가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부채비율은 151.8%로 대폭 하락했다. 이는 CB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기적으로는 부채를 급증시키지만, 전환 시점에는 자본 확충으로 이어져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자본 확대 효과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23년 말 2864억원이던 자본총계는 2024년 말 4747억원으로 증가했다. 약 6860억원 규모의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서 자본이 빠르게 확장됐고, 이는 자본잠식 위험 완화에도 기여했다.
엔켐은 CB 발행으로 확보한 자금을 미국·유럽 공장 등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에 투입하고 있다. 이 같은 대규모 선행투자가 향후 현금흐름 개선과 영업현금 플러스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 올해 1분기 실적도 부진···주주가치 희석·현금흐름 압박은 여전
글로벌 시장 공략을 통해 재무난을 타개하려는 엔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실적은 여전히 부진했다. 연결기준 매출액은 68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7%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19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영업손실(118억원) 대비 적자 폭이 62.2% 증가한 수치로, 수익성 개선이 여전히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엔켐은 ESS(에너지저장장치) 전해액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내년 6만톤 규모의 ESS용 전해액 공급 계획은 올해 공급량 대비 361.5% 증가한 것으로 북미와 유럽 시장 수요 증가에 발맞춘 전략이다. CATL, BYD 등 중국 주요 기업과의 거래 확대를 통해 추가 수익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생산기지 확대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 헝가리, 폴란드에 이어 프랑스 덩케르크에 신규 생산시설 설치를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시험장비 전문기업 듀오콤 인수를 통해 배터리 소재 분야에서 테스트 장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품질 신뢰도 향상과 신제품 개발 가속화를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CB 전환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 희석은 피할 수 없게 됐다. 2025년 2월 전환가액 조정으로 발행주식 수가 16.1% 증가하면서 주주가치 약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금 유동성 압박도 심각하다. 2024년 상반기 현금성 자산은 259억원으로 급감했으며, 단기 차입금 증가와 함께 단기 유동성 리스크가 가중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회계상 손실보다는 영업현금흐름의 플러스 전환과 대규모 투자 설비의 정상 가동 시점을 엔켐 기업가치 재평가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 상장폐지 우려 vs 저가 매수 기대···성장 잠재력-재무 리스크 기로
현재 엔켐 주가 하락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극심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에서는 상장폐지 임박이라는 극단적인 우려가 제기되며 이는 기업의 재무적 안정성에 대한 근본적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전환가액이 현재 주가의 2배 이상인 14회차 CB의 경우 조기상환청구권 행사가 가능해져, 주가 상승이 없다면 엔켐의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일부 투자자들은 현재의 낮은 주가 수준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판단하며 반등을 기대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주가 변동성이 여전히 크고, 실적 부진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의 심리는 매수와 매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결국 엔켐은 현재 심각한 재무 부담과 시장 신뢰 하락에 직면해 있지만, ESS 시장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라는 중장기 성장 비전도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리스크 요인이 우세하지만 향후 실적 개선 여부에 따라 기업가치 재평가의 실마리도 열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수익성 지표(PER, EPS)가 왜곡된 상황에서 엔켐은 성장 잠재력과 현금 창출력이라는 '진짜 실력'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현시점에서 엔켐 투자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며, 실적 회복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과가 향후 주가 반등의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혔다.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