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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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전시현 기자] 한국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이 사상 최대인 183조원을 돌파하며 미국 투자 대세론이 다시 불붙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국내 증시가 3000선을 넘나들며 활황세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개인투자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미국 시장에 꽂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예탁결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317억400만달러(약 183조45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초(1월2일) 1090억1900만달러와 비교해 20.8%나 급증한 수치다. 불과 7개월 만에 227억달러(약 31조원)가 늘어난 셈이다.

미국 주식 보관액은 지난해 11월 처음 1000억달러를 뚫은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12월 1100억달러, 올해 5월 1200억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이제 1400억달러(약 200조원)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 주식 1, 2위는 여전히 테슬라(212억9000만달러)와 엔비디아(146억6000만달러)가 차지했다. 특히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의 트럼프 행정부 밀착행보와 자율주행 기술 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국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그 뒤를 AI 소프트웨어 업체 팔란티어(51억9000만달러), 아이폰 제조사 애플(42억2000만달러), AI 서비스 기업 마이크로소프트(34억4000만달러)가 이었다. 상위 5개 종목이 모두 테크 기업으로 채워진 것은 한국 투자자들의 AI와 첨단 기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관세 기반의 공격적 무역정책을 예고하자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 바람이 불었다.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견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달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시장 참가자들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변동성에 적응한 데다, 미국의 소비지표와 AI 인프라 투자, 기업 실적 등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여전히 탄탄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이 스테이블코인 (달러 등 실물화폐에 연동된 암호화폐) 제도화를 위한 지니어스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디지털 자산 생태계 확대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증시 호황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신증권 서영재 연구원은 "AI 산업과 디지털 자산 분야는 모두 당분간 실적 개선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미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종목들의 주가가 상당히 올랐지만, 실적과 연동된 성장세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IBK투자증권 정용택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관세 부과는 비미국 기업에는 불리하지만 미국 기업들에게는 오히려 혜택"이라며 "이런 정책적 우위에다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가까워지면서 투자자들이 대거 미국 시장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한 주(11∼17일) 동안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을 3억4000만달러(약 4757억원) 순매수했다. 개별 종목별로는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6800만달러), 엔비디아(5800만달러), 양자컴퓨터 업체 아이온큐(5200만달러),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4100만달러) 순으로 매수세가 몰렸다.

흥미롭게도 이 같은 미국 주식 열풍은 국내 증시 호황과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투자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17일 기준 66조6349억원으로 집계됐다.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빚투' 자금인 신용거래융자도 11일 21조2669억원에서 17일 21조588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단기 여유자금의 대표격인 CMA(자산관리계좌) 잔고는 최근 한 주 사이 89조5960억원에서 86조1497억원으로 3조원 이상 감소했다. 반면 또 다른 단기자금인 MMF(머니마켓펀드)는 같은 기간 약 7조5000억원이 늘어 17일 잔고가 231조3731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주식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미국 주식의 경우 AI 기술 발전과 디지털 자산 법제화라는 장기적 성장 동력이 뒷받침되면서 '동학개미'에 이어 '서학개미'까지 활개를 치는 모양새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의 높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과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고려해 신중한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2025년 현재 S&P 500 지수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2배를 넘나들며 역사적 평균을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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