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로 제작한 스테이블코인 일러스트. / 연합뉴스
챗GPT로 제작한 스테이블코인 일러스트. / 연합뉴스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지니어스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월가 대형 은행들과 비금융 기업들 간의 디지털 달러 발행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그동안 테더와 서클 등 핀테크 기업들의 전유물이었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JP모건, 골드만삭스 같은 전통 금융권이 대거 뛰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NH투자증권은 18일 보고서에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안 통과로 인해 업체들의 발행 경쟁이 촉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이 본회의에서 찬성 308표 대 반대 122표로 가결 처리한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의 법정 정의, 발행 절차, 공시 의무 등을 규정해 제도권 편입의 토대를 마련했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대형은행, 기타 금융사, 비금융사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서클과 경쟁하는 양상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테더의 USDT가 61%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서클의 USDC가 24%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법안 통과로 JP모건,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등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 구도가 크게 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형 은행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 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해왔다. JP모건은 기관 투자자 대상 디지털 결제 서비스인 'JPM코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골드만삭스도 자체 디지털 자산 플랫폼을 구축해놓은 상태다. 이들이 보유한 막대한 자산과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지니어스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홍 연구원은 "이자가 아닌 형태의 프로모션을 통해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법안 초안에는 이자 지급 금지 조항이 없었으나, 이후 제출된 수정안에는 명시적으로 금지 조항이 포함됐다.

이런 제약으로 인해 새로운 서비스 영역도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 연구원은 "보유한 스테이블코인으로 이자를 획득할 수 있게 해주는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서비스들이 주목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코인데스크는 "지니어스 법안이 수익 생성 스테이블코인을 죽였지만, 그것이 디파이를 구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존 결제 시장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홍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스테이블코인 결제 비중이 상승하며 비자, 마스터카드 등 결제 기업의 실적이 압박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지난해 28조 달러로 마스터카드·비자 합산 실적을 이미 넘어선 상태다.

다만 월가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결제 시장 위협을 과도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시각도 나온다. 바클레이즈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결제 시스템을 위협하기엔 아직 인프라와 소비자 신뢰가 부족하다"며 "오히려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 참여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은행권도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홍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때문에 예금 수요가 축소될 수 있기 때문에 자체 스테이블코인, 예금토큰 출시로 이에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대형 유통업체들이 막대한 카드 수수료 절감을 위해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인프라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서클의 IPO 성공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지난 6월 뉴욕증시에 상장한 서클은 첫날 공모가 대비 168% 급등하며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했다. JP모건, 시티그룹, 골드만삭스가 IPO 주관사로 참여한 것도 월가가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법안 통과로 국내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한 만큼 한국도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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