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전시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상화폐 친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이 대거 암호화폐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WP)는 약 300명의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재산 공개 신고서를 분석한 결과 70명이 가상화폐를 보유하거나 블록체인 기업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트럼프 내각의 3분의 1 이상이 가상화폐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들이 신고한 가상화폐 자산 총액은 최소 1억9300만달러(약 2686억원)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5100만달러(약 709억원) 상당의 가상화폐 관련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1억2000만달러에 달하는 가상자산을 보유해 조사 대상 중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러트닉 장관은 투자은행 캔터피츠제럴드 CEO 출신으로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는 수억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고, 그 숫자는 곧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는 또 "비트코인이 자유의 통화"라며 암호화폐에 대한 강한 지지 의사를 표명해왔다.
J.D. 밴스 부통령도 25만~5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밴스 부통령은 지난 5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비트코인 2025 컨퍼런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암호화폐가 마침내 백악관에서 챔피언과 동맹자를 갖게 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 트럼프 정치행동위원회를 위한 모금 행사를 주최하며 참석자 1인당 100만 달러의 기부를 요구하기도 했다.
내각 중에서 가장 많은 암호화폐 자산을 보유한 인물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그는 100만~500만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케네디 장관은 "재산 대부분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으며 비트코인을 "중산층 미국인들을 위한 헤지 수단"이라고 언급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도 최대 50만달러 상당의 디지털 자산을 보유했다고 신고했지만, 재무부 대변인은 그가 취임 전 이를 모두 매각했다고 밝혔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과 툴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도 암호화폐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 규제 및 법 집행 권한을 가진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 중에서도 12명 이상이 디지털 자산을 신고했다. 연방주택금융청(FHFA)의 빌 펄트 청장은 100만~200만달러 상당의 디지털 통화를 보유하고 있다. 펄트 청장은 최근 모기지 대출 위험 평가에서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도록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지시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트럼프의 주요 대사 지명자들 중 최소 14명이 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켄 하우어리 덴마크 대사 지명자는 최소 1억2200만달러의 디지털 자산을 보유해 행정부 내에서 러트닉 장관 다음으로 큰 규모를 기록했다. 하우어리는 페이팔 공동 창업자로 일론 머스크의 오랜 친구이자 피터 틸의 사업 파트너로 유명하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 고위직들의 대규모 암호화폐 보유는 미국 정치사상 전례가 없는 현상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내각 관료들 중 최종 재산 공개에서 가상자산을 신고한 인사는 단 한 명도 없었으며, 다른 어떤 대통령도 가상자산을 보유한 적이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구성은 가상화폐 업계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미국 하원은 어제(17일) 스테이블코인 규제를 위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포함한 암호화폐 3법을 통과시켰다. 지니어스 법안은 찬성 308표, 반대 122표로 가결됐으며, 이미 상원을 통과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암호화폐 기업들을 상대로 진행 중이던 12건 이상의 소송을 중단하거나 보류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 하에서 가상화폐 업계에 대한 강력한 규제 기조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정책 전환이다.
또한 트럼프는 재무부에 두 개의 국가 차원 암호화폐 비축량 창설을 지시했다. 이는 비트코인을 금, 외화 등과 함께 미국의 전략적 자산 보유고에 포함시키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리슨 필즈 백악관 수석부대변인은 "이런 투자는 트럼프 인사들이 민간에서 거둔 성공을 반영한다"며 "행정부에서는 이해충돌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은 디지털 금융 기술에 대한 명확한 규제를 정립하고, 미국을 디지털 자산 경제의 세계적 리더로 만드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이러한 친화적 정책 기조에 힘입어 이번 주 사상 최고치인 11만6000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대비 2배 가까이 오른 수치다.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의 릭 클레이풀 연구국장은 "트럼프 행정부와 암호화폐 업계 사이의 공생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신호"라고 말했다. 전 미국 정부윤리청 청장 돈 폭스는 "이런 선례가 어떤 새로운 행동 규범을 만들어낼지 우려된다"고 전했다.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