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네이버·카카오 상표권 출원 경쟁… 게임·유통업계도 기회 놓치면 안돼
미국 규제법 통과·국내 제도화 가시화되자 대기업 발빠른 대응 나서
​​​​​​​올해 스테이블코인 투자 123억달러 전망… 10배 급증 예상
이미지=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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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전시현 기자] 국내외 스테이블코인 규제가 본격화되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디지털 머니 주도권 선점을 위한 움직임에 속도를 내고 있다.

15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약 57조원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 대비 3배 넘게 급증했다. 이에 각 기업들은 자체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물론, 결제·송금 등 실생활 접목 방안을 구체화하며 본격적인 디지털 머니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요건을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제도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국내에서도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중이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으로 꼽혔으며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가상자산 업계 재직 당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미래 경제를 뒷받침할 새로운 화폐”로 강조하면서 시장의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 게임업계, 자체 코인 발행 러시…게임 경제 유동성↑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게임업계다. 넥슨은 최근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 BNB체인에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KRWx를 등록하고 국내 상표를 출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 게임 생태계에서 현금 대신 사용할 인앱 결제 수단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려는 행보다.

위메이드는 자체 메인넷 위믹스 3.0에 미국 달러와 1대1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 USDC.e를 공식 도입했다. 넷마블은 메타버스 신작 모두의마블2: 메타월드에서 게임 재화 메타캐시를 암호화폐 이네트리움(ITU)으로 교환 가능하도록 설계해 게임 보상을 가상자산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엔씨소프트도 NFT와 P2E를 연구 중이며, 업계에서는 엔씨 코인 발행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게임사들이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이유는 게임 속 경제의 유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법정화폐에 연동돼 가격이 일정하므로 게임 아이템 거래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제레미 알레어 서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스테이블코인은 차세대 금융 인프라의 핵심으로, 향후 글로벌 결제 시장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트코인에 비판적이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도 “스테이블코인은 기업 결제와 송금에서 효율성을 입증했다”며 금융시장 내 실용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카카오와 네이버 등도 스테이블코인 경쟁에 적극적이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6월 원화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염두에 둔 상표를 무더기로 출원했고, 이 소식에 주가가 크게 올라 시장의 기대를 반영했다.

카카오페이는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으로 온·오프라인 가맹점 결제에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하는 실험을 이어가는 한편, 해외송금 등 금융 서비스에의 활용도 검토하고 있다. 네이버페이는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와 손잡고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결제 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초기에는 스테이블코인을 실생활 소액결제보다 업비트 거래소 내 원화 입출금 수단으로 활용해 유동성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네이버페이의 대규모 이용자 기반과 업비트의 유통망이 결합되면 기존 포인트를 뛰어넘는 디지털 원화 모델이 탄생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 유통·수출기업도 관심…쿠팡·롯데 글로벌 결제 주목

유통 및 수출 분야 기업들도 스테이블코인을 새로운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다. 쿠팡은 자체 코인을 통한 해외 역직구(외국인의 국내상품 직접구매) 결제 시스템 도입을 타진 중이다. 쿠팡코인(가칭)을 쓰면 해외 소비자가 환전 없이 원화로 바로 결제해 국내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 결제 절차가 간편해지고 수수료도 줄일 수 있다.

롯데그룹도 통합 멤버십 포인트 엘포인트(L.Point)와 간편결제 엘페이(L.Pay)를 연계한 그룹 통합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으며 계열사 전반에서 통용되는 디지털 화폐로 결제 편의성과 고객 로열티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글로벌 무역 현장에서도 스테이블코인 활용이 늘고 있다. 중국의 일부 수출기업들은 거래 대금을 위안화 대신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테더·USDT)으로 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자본통제가 엄격한 중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으로 해외 거래 비용을 줄이고 결제를 신속히 완료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국내 수출기업들 역시 환율 변동 위험을 낮추고 대금 회수를 빠르게 하기 위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 금융권 새 먹거리 선점 경쟁…제도화 대비 분주

금융권 역시 스테이블코인 흐름에 빠르게 올라타고 있다. 카카오뱅크,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등 주요 은행들이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를 잇따라 출원했고, 이 소식에 은행주가 10~20%대 상승했다. 은행들은 정부의 제도 정비에 맞춰 안정적인 준비자산을 바탕으로 은행발 스테이블코인을 내놓고 결제·송금·환전 등에 적용하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한편 한국은행 등 당국은 민간 기업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에 신중한 입장이다. 가이드라인 마련 전에 뛰어들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국내외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미국에선 페이팔이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하는 등 글로벌 금융사들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핀테크 업계가 가상자산 기반 송금 서비스 등에 뛰어들며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 경쟁에서 사용처 확대와 유동성 확보가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출시된 원화 코인들이 유통량 부족으로 안착에 실패했던 만큼, 각사가 자기 생태계에서 얼마나 실제로 쓰이는 디지털머니를 만들어내느냐가 디지털머니 전쟁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 정부도 제도화 박차… 2025년 하반기 규제 마련

정부도 스테이블코인 제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하반기 중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이나 운용에 관한 규제 내용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지난달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가상자산 발행 및 유통 등을 규율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발행 주체 요건을 자본금 5억원 이상으로 설정하고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도록 규정했다.

다만 한국은행은 신중한 입장이다. 이병목 한은 금융결제국장은 "외부충격으로 스테이블코인 가치가 법정화폐 가치에 정확히 1대1로 연동되지 않고 가치가 축소되면 상환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며 별도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연례 통화정책 포럼에 참석해 “비은행 금융기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한국은행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으로, 정부 부처와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는 가상자산 생태계 대중화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며 "각 산업별로 특화된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의 스테이블코인 사업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디지털머니'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최고 경영진이 이를 핵심 금융 인프라로 인식하고, 발행사 리스크와 사이버 보안 위협에 대한 선제적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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