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전시현 기자] 때는 202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는 특별한 코인 하나가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바로 퀸비코인(QBZ)이었다.
같은 해 2월 빗썸 거래소에 상장된 퀸비코인이 5월 들어 본격적인 홍보에 나서자 시장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장 당시 가격이 25원에서 275원까지 무려 11배나 치솟으며 거래액이 690억원을 돌파했다. 투자자들이 열광한 이유는 단순했다. 한류스타 배용준이 투자에 참여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 배용준 투자설에 열광…300억원 편취한 2단계 사기 구조
이로 인해 이 기상화폐에는 '욘사마 코인'이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퀸비코인 개발업체는 "배용준이 투자할 정도로 사업성을 갖춘 업체"라며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열광 뒤에는 정교한 사기극이 숨어 있었다.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 조사 결과 퀸비코인 개발업체 실운영자 A(45)씨와 대표 B(40)씨는 애초부터 가상화폐 사업을 운영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오직 투자자들의 돈을 빼먹기 위해 허위·위조 서류를 제출하고 브로커를 동원해 거래소에 상장시켰다.
A씨 일당의 사기 수법은 2단계로 나뉘어 치밀하게 진행됐다. 1차로 2020년 2월부터 3월까지 가짜 홍보 기사를 배포하고 시세를 조작해 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퀸비코인 2억3000만개를 매도해 피해자 4000여명으로부터 151억원을 가로챘다.
더욱 악랄한 것은 다음해인 2021년 1월부터 4월까지 벌어진 2차 사기였다. 이들은 스캠코인 처리업자에게 남은 코인 전부를 팔아버리고도 사업을 계속할 의사가 있는 것처럼 홍보해 투자자 9000여명으로부터 150억원을 추가로 뜯어냈다. 결국 약 1만3000명의 투자자가 총 300억원의 피해를 당했고 퀸비코인은 주가조작 의혹으로 2021년 8월 상장 폐지됐다.
◆ 자금 추적 중 우연히 포착된 건진법사…김건희 연루 의혹까지 확산
사건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24년 들어서였다. 피해자들의 고소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같은 해 7월 A씨와 B씨를 포함한 4명을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수사진이 퀸비코인 관련 자금 흐름을 추적하던 중 예상치 못한 인물이 포착됐다. 바로 건진법사 전성배 씨였다.
수사 과정에서 퀸비코인 개발업체 운영자 중 한 명인 이모 씨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유력 정당의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한 C씨를 전성배 씨에게 소개해준 사실이 드러났다. 이것이 퀸비코인 사기 사건과 정치권을 연결하는 첫 번째 고리였다.
C씨는 전성배 씨에게 공천을 대가로 1억원을 건넸고 축구선수 이천수가 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C씨는 "전성배 씨가 유력 정치인들을 많이 알고 있어 공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지만 전성배 씨는 이 돈이 기도비 명목이었다고 주장하며 맞섰다.
전성배 씨에 대한 의혹은 정치자금 수수에서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전성배 씨를 체포하고 서울 서초구 주거지와 강남구 법당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 발권 스티커가 붙은 비닐 포장된 관봉권 현금 다발이 그의 자택에서 나와 상당한 규모의 미신고 또는 불법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전성배 씨가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콘텐츠의 고문 명함을 소지하고 다녔으며 전시회 그림을 대신 팔아주고 수수료를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또한 통일교 측으로부터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할 선물 명목으로 60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통일교 전 고위 관계자는 전성배 씨의 도움을 받아 윤석열 정부 때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추진하려 했으며, 2022년 5월 윤석열 전 대통령과 독대해 ODA 연대 프로젝트에 대한 암묵적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ODA 예산 증액 시점과 같은 해 11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캄보디아 방문 시점이 이러한 로비 활동과 겹치는 부분에 주목했다.
◆ 검사 인사 청탁까지…확산되는 수사망
이러한 가운데 전성배 씨의 휴대전화, 이른바 법사폰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모친 최은순 씨와 여러 차례 장시간 통화한 기록도 발견됐다. 검찰은 지난 1월 전성배 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현재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전성배 씨와 관련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최근 특검은 전성배 씨가 현직 검사와 관련해 인사 청탁을 받은 정황을 담은 문자메시지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전성배 씨의 영향력이 사법부 인사에까지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전성배 씨는 1960년생으로 일광조계종 소속 승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전통적인 종교인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각종 정치적 활동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20년 화려하게 데뷔했던 욘사마 코인에서 시작된 수사가 5년이 지난 지금 초대형 스캔들로 발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순한 가상화폐 사기 사건에서 시작된 수사가 정치권을 뒤흔드는 초대형 스캔들로 번진 것은 금융 범죄와 정치 권력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