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부 통제냐 민간 혁신이냐···디지털 화폐, 운명의 갈림길
CBDC, 파산 걱정 없는 안전자산···프라이버시 침해 논란 여전
스테이블코인, 금융 혁신 이끌지만 화폐 주권 위협 딜레마 직면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33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6분의 1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미국·EU·일본이 잇따라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을 시행하며 디지털 통화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국내도 올 하반기 제도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본지는 디지털 달러의 글로벌 통화패권 재편부터 월스트리트 금융 거인들의 스테이블코인 쟁탈전, 각국의 규제 전략,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가능성과 한계, 디페깅 리스크, CBDC와의 경쟁, 그리고 2030년 미래 시나리오까지 7회에 걸쳐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모든 쟁점을 분석합니다. [편집자주]

이미지=freepik
이미지=freepik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디지털 화폐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전 세계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와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두 갈래 길 앞에서 고심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발행해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CBDC는 파산 위험이 없다는 압도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라는 그림자를 안고 있다. 반면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 금융(DeFi) 생태계를 이끄는 혁신의 아이콘이지만, 국가의 화폐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해 있다.

◆ 빅브라더 논란 속 CBDC, 안전과 감시 사이 딜레마

CBDC의 가장 큰 강점은 중앙은행이 발행 주체라는 것이다. 2022년 테라-루나 사태 당시 테더(USDT)가 119달러에서 0.0001달러로 99.99% 폭락했으며,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당시 써클(USDC)마저 0.87달러까지 떨어졌던 것과 달리, CBDC는 발행 기관의 파산 위험이 전무하다. 이는 곧 사용자에게 가장 안전한 디지털 자산이라는 신뢰를 준다.

하지만 CBDC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빅브라더(Big Brother) 논란이다. 정부나 권력 기관이 국민의 개인 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고 감시하며 통제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이 용어처럼, CBDC는 정부가 모든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감시할 수 있는 우려가 곧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함께 사회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실례로 지난해 7월 기준 개인 지갑 1억8000만개, 거래 규모 1조2000억달러를 기록한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e-CNY)는 이 같은 우려를 현실화가 됐다. 상당수 중국인이 "현금으로 전환한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로 정부의 금융 감시와 개인정보 노출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한국은행 또한 이러한 우려를 의식해 "CBDC 테스트에서 한국은행이 고객 정보를 직접 볼 수 없도록 설계했다"고 강조했지만, 감시 가능성이라는 근본적인 숙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 스테이블코인, 혁신성 빛나지만 '화폐 주권'은 도마

CBDC와는 정반대 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마치 인터넷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하고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만들어져 남다른 구성 가능성을 자랑한다. 이는 마치 아이들이 레고 블록을 쌓아 자신만의 멋진 건물을 만들 듯, 누구든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손쉽게 만들고, 또 다른 서비스와 연결하며 발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등 전통적인 중간 기관 없이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탈중앙화 금융(DeFi)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500억달러(한화 약 345조원)에 달하며, 그 대부분이 미국 달러 기반이다. 시장을 양분하는 테더(USDT)와 써클(USDC)의 담보 자산 중 무려 90%가 미국 단기 국채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곧 미국 국채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는 분석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함을 방증한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의 급성장은 화폐 주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폐 발행권은 국가의 핵심 권한인데 이를 민간 기업이 가져가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 정부 또한 이러한 우려를 반영해 국내 스테이블코인 규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췄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적절한 규제 틀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혀, 민간 혁신과 국가 통제 사이의 균형점 찾기가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 역할 분담론 부상…안전·혁신 투 트랙 전략 모색

이러한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제결제은행(BIS) 등 주요 국제기구들은 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각자의 장점을 살려 상호 보완적인 역할 분담론을 제시한다. 최근 BIS 보고서에 따르면 거액 결제나 통화 정책과 같은 영역에서는 안전성이 높은 CBDC가 역할을 담당하고 소액 결제나 금융 혁신 분야에서는 유연성이 뛰어난 스테이블코인이 그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는 디지털 화폐 시대에 안정성과 혁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현재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 연구하는 CBDC는 일반인이 직접 사용하는 소매용 CBDC보다는 금융기관 간 거액 결제를 위한 도매용 CBDC에 가깝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금융기관 관계자는 "도매용 CBDC는 프라이버시 우려가 적고 기술적 구현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어 우선적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규모 금융 거래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부담을 줄이려는 현실적 접근으로 해석된다.

한편 CBDC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프라이버시 해결을 위한 기술 혁신 또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영지식증명(Zero-Knowledge Proof)과 같은 암호 기술은 거래 내역을 공개하지 않으면서도 거래의 유효성을 증명할 수 있어 CBDC의 보안과 프라이버시 강화를 위한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블록체인 영지식증명이 CBDC 보안의 핵심 기술"이라며 관련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디지털 화폐 시대의 궁극적인 과제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안정성과 혁신이라는 두 가치, 그리고 국가 주권과 개인 프라이버시라는 상충하는 개념들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전시현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