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홈스테이 집 주인 부부와 함께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마르디히말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다. 사람 좋은 집 주인 부부가 큰 길가까지 배웅을 나와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모퉁이를 돌아서며 뒤돌아보니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을을 벗어나니 완만한 흙산의 등성이 마루금 위로 길이 길게 뻗어있다. 길옆으로는 분홍색의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키 큰 선인장도 가끔 눈에 띈다. 걷기 좋은 초가을 날씨에 계단식 논밭은 밀, 벼, 보리, 메밀 등으로 온통 초록색이다. 숙영지까지는 15km 안팎에 완만한 구릉지와 숲길이어서 비교적 쉬운 코스다. 가벼워진 발걸음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탁 트인 시야에 저만치 만년설의 히말라야 연봉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오른쪽 겹겹의 구릉과 깊은 계곡 너머로 마차푸차레의 물고기 꼬리 같은 검은 봉우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마를 덮은 만년설이 아침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바라만 봐도 힐링이 되는 히말라야 풍경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 특히 만년설의 히말라야는 마약 같다. 히말라야의 만년 설산은 설렘이고 두근거림이고 축복이다. 이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들썩이는 엉덩이를 주체하지 못하고 10여 차례가 넘게 히말라야를 찾지 않았나 싶다.
마르디히말 트레일은 근래에 개방돼 지명도가 낮고 이름이 낯설다. 15년 넘게 히말라야를 찾은 나도 마르디히말 트레일을 안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다른 히말라야 트레일에 비해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때를 덜 탄 날 것 그대로의 자연경관과 순박한 구룽족,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마차푸차레의 웅자 등은 트레커들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준다. 트레일의 난이도는 누구나 도전해 볼만 한 비교적 평탄한 수준이다. 마르디 히말은 1961년 뉴질랜드 탐험가 바실 브롬로우가 최초로 등정하면서 이름이 붙었다. 이 산은 높이가 해발 5,587m로 바로 옆에 있는 마차푸차레와 함께 오랫동안 현지인에게 성스러운 산으로 여겨졌다.
마르디 히말라야라는 봉우리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건 해발 고도가 높지 않아서다. 안나푸르나 보전지역에는 유일한 8,000m 봉우리인 안나푸르나 1봉(8,091m)을 시작으로 안나푸르나 2봉(7,937m), 안나푸르나 3봉(7,555m), 안나푸르나 4봉(7,525m), 강가푸르나(7,455m),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틸리초(7,134m), 마차푸차레(6,993m), 히운 출리(6,441m) 등 해발 6,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가 많다. 히말라야에서 5,000m는 대개 무명봉으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한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 트레킹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조망하기 위해 반드시 오르는 칼라파타르(5,545m) 보다도 낮은 봉우리다. 마르디히말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은 정상보다 해발 1,000여m 아래에 있는 베이스캠프(4,500m)까지 올라간다.
마르디히말 트레일은 2012년 네팔 정부와 안나푸르나 보존지역 프로젝트(ACAP)의 협력으로 공식 개방됐다. 개방 전에는 원주민인 구룽족과 마가르족이 방목이나 삼림자원 채취를 위해 이동하던 길이었다. 2000년 초부터 몇몇 모험적인 트레커들이 알음알음 비공식 트레킹 코스로 다녀간 것 외에는 롯지 등 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미개척 오지로 남아있었다. 마르디히말 트레일에 롯지와 식당 등 인프라가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 년 전으로 아직도 전기, 샤워, 충전시설들이 미흡한 상황이다. 태양광 전력 사용이 제한적이어서 롯지에서 충전 요금을 받는 곳도 있다.
포카라에서 바로 올라올 수 있는 양호한 접근성과 비교적 훼손되지 않은 원시의 자연풍광과 지역주민의 순수성, 코앞의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장엄한 전망 등으로 트레커에게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성산인 마차푸차레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찾는 네팔인 트레커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찾는 트레커가 많지 않아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ABC, EBC, 랑탕, 마나슬루 등 히말라야의 주요 트레킹 코스는 시즌이 되면 줄을 서서 올라가며 교통체증을 겪기도 하는 등 시장바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혼잡하다. 10~11월과 3~4월이 날씨가 맑아 트레킹 적기다.
드문드문 마을이 보이고 계단식 논에서 일을 하는 마을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언덕 위 넓은 공터에 굵고 키 큰 대나무 4개를 아치형으로 묶어 만든 그네에서 아이들이 힘차게 발을 구르며 허공을 가르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그네 높이가 10여m는 됨직해 허공을 나는 모습이 물 찬 제비 같다. 담푸스에 가까워질수록 안나푸르나 산군과 마차푸차레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담푸스(Dhampus.1,650m)마을은 롯지와 식당, 찻집 등이 깔끔하고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예쁜 꽃들로 장식된 마을과 집들이 화사하고 아름답다. 언덕 위에 있는 전망대에서 다울라기리 등 히말라야 산군을 감상하는데 아이들이 몰려와 카메라 앞애서 포즈를 취하는 등 난리다. 전망 좋은 마을 찻집에서 버팔로 우유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데 옆집에서 아저씨가 고기를 써는 모습이 생소해 보인다. 이곳은 고기를 도마에 놓고 자르지 않고 바닥에 칼날을 고정시켜 고기를 칼날에 갖다 대고 누르며 자른다. 다음 롯지가 있는 포타나까지 숲길과 계단 길이 계속 이어진다. 제법 넓은 초원이 들어선 산등성이 마을들이 멋진 목가적 전원풍경으로 그림같다.
만년 설산과 울창한 열대우림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 네팔 히말라야다. 햇빛이 안 들어올 정도로 울창한 숲속 길은 음이온과 피톤치드, 산소가 넘쳐나는 신선한 공기로 온몸의 세포가 팔딱이며 기분을 고조시킨다. 마을 귀퉁이에 붉은색 십자가가 보여 가이드에게 물으니 교회란다. 힌두교, 불교국가인 네팔에서 처음 보는 십자가라 그런지 낯설다. 오스트렐리안 캠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포타나와 피탐 데우랄리, 포레스트캠프는 푼힐 전망대나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등으로 가는 갈림길들이 있어 길을 잘 들어서야 한다.
포타나(Pothana.1,890m) 롯지에서 햄버거와 피자를 시켜 콜라와 함께 늦게 점심을 먹는다. 갈림길 길목이어서 그런지 서양인 트레커들이 몰리면서 주문 후 1시간이 지나서야 식사가 나온다. 느림과 여유는 히말라야의 일상이다. 느긋하게 식사하며 눈을 돌리면 마차푸차레 등 만년 설산이 초록의 숲, 뭉게구름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그린다. 입맛보다 눈맛이 더 큰 것 같다. 하트모양 장식의 의자에 앉아 히말라야의 정취에 한껏 빠져든다. 이곳은 히말라야의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향자곳서 포타나까지 4시간이 채 안 걸렸다.
한 시간 반 정도 숲속 오르막길을 올라 고개 정상에 새로 지은 롯지에서 생강차를 마신다. 롯지 주인이 우리 가이드와 친구인데다 한국공장에서 몇 년 일을 해 한국말을 잘한다. 숲속 길을 한참 걸어 피탐 데우랄리(Pitamdeurali.2,100m)에 도착한다. ABC로 가는 갈림길인 삼거리를 지나 한참을 올라 오후 3시쯤 오늘의 목적지인 수퍼 톱 뷰호텔 롯지에 짐을 푼다. 넓은 정원에 조각 조형물까지 있고 안나푸르나 남봉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있다. 전망 좋은 롯지다. 오는 길에 여기저기 키 큰 대마초가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네팔도 대마초 흡연은 불법이란다.
짐을 풀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롯지 진열장에 옛날 신라면 봉지가 진열돼 있다. 한글로 된 모조품 과자도 눈에 띈다. 몇 년 전 인도 칸쳉중가와 시킴왕국을 가는 길에 오지마을의 길가 구멍가게에서 한글로 된 국적 불명의 라면과 과자를 본 적이 있다. 중국에서 인기 좋은 한국산 짝퉁을 제조해 공급하는 가짜 식품이란다. 서양인 중년 부부가 야영을 하는 롯지 마당의 원색 텐트가 안나푸르나의 은빛 만년설을 배경으로 노을빛에 더욱 화사하게 빛난다. 히말라야는 산 높고 골이 깊어 눈 깜짝할 사이 어둠에 잠긴다.
김성태 사진작가 taiki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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