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한스경제 신희재 기자] "확실히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팬들과 함께하는 올스타전이 됐다."
프로야구 KT 위즈 베테랑 우규민은 12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 뱅크 KBO 올스타전을 앞두고 과거와 현재 올스타전의 가장 큰 차이로 퍼포먼스를 꼽았다. 그는 드림 올스타(롯데 자이언츠·KT·SSG 랜더스·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 감독 추천 선수로 선발돼 2007년 이후 18년 만에 올스타전 무대를 밟았다.
2007년 올스타전에서 서군 투수로 나선 우규민은 동군 타자였던 1985년생 동갑내기 강민호와 오랫동안 회자될 명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몸에 맞는 공을 던져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는 듯하다가 서로 미소 지으면서 포옹했다. 우규민은 "퍼포먼스라는 게 없을 때 강민호와 즉흥적으로 구상했는데, 다행히 좋게 비쳤다"며 당시를 회상한 뒤 "지금은 어린 친구들이 퍼포먼스를 많이 준비한다"고 놀라워했다.
우규민의 말처럼 KBO리그 올스타전은 과거와 달리 축제 성격이 강해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19년부터 베스트 퍼포먼스상을 신설하면서 올스타전을 대하는 10개 구단의 기조가 확 바뀌었다. 구단과 선수 모두 마운드에 오를 때나 타석에 들어설 때, 어떻게 하면 팬들에게 좀 더 재밌는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연구하고 고민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화려한 퍼포먼스의 향연이 이어졌다. 10개 구단 관계자는 이날 올스타전을 앞두고 취재진을 대상으로 소속 선수들이 어떤 퍼포먼스를 무슨 의도로 준비했는지 소개하는 자료를 공유했다. 올스타 선수를 홍보하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나눔 올스타(한화 이글스·LG 트윈스·KIA 타이거즈·NC 다이노스·키움 히어로즈)에 속한 홈팀 한화 선수들이 초반부를 장식했다. 1회 초 선발 등판한 우완 코디 폰세는 본인이 사비를 들여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코스튬을 미국에서 직구해 착용했다. 우상인 류현진의 유니폼을 입고 왼손으로 느린 공을 던지기도 했다. 1회 말 선두타자로 출격한 타자 문현빈은 대전의 상징 '꿈돌이' 탈을 쓰고 나와 환호성을 자아냈다.
지난해 올스타전처럼 자녀와 함께 등장해 미소를 자아낸 선수들도 여럿 나왔다. KIA 박찬호는 로미 공주로 분장, 하츄핑 옷을 입은 딸 박새얀 양과 2년 연속 동행했다. 이 과정에서 새얀 양은 상대 팀 포수 강민호 품에 안겨 아빠를 당황하게 했다. 세 자녀 아빠인 삼성 류지혁은 막내를 번쩍 들어 올려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의 심바를 재현했다.
LG 박해민은 아들 박이든 군과 함께 넓은 수비 범위에서 착안한 '스파이더맨' 의상을 착용한 뒤 특별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팀 동료 홍창기와 오스틴 딘을 향해 '창기 삼촌, 우리 기다리고 있어요', '오스틴 삼촌, 얼른 나아서 홈런 팡팡 쳐주세요'라고 적힌 스케치북을 펼쳐 보이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적극 활용한 사례도 나타났다. 신예 선수들이 맹활약할 때 일대기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그는 누구인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한화 문현빈과 두산 오명진이 이 문구를 활용하면서 입장, 나란히 안타까지 기록하며 존재감을 뽐냈다.
KT 권동진은 방송인 유병재의 밈인 '축하사절단'을 선보였다. 꼬깔콘, 피리 등을 불면서 올스타전에 선발된 선수들을 축하하는 콘셉트로 주심까지 합류해 배꼽을 잡게 했다. 모교 사랑으로 유명한 NC 박민우는 'KBO 휘문인 모집, 연락 기다립니다' 피켓과 관련 티셔츠를 착용했다. 그 외에도 키움 이주형은 '진격의 거인' 주인공 에렌 예거, SSG 이로운은 닮은 꼴로 언급되는 영화 '업'의 주인공 러셀로 코스프레해 눈길을 끌었다.
베스트 퍼포먼스상은 롯데 전민재가 차지했다. 올 시즌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전민재는 '담을 넘은 천사' 컨셉으로 생애 첫 올스타전에 참여, 14만3843표 중 3만5687표(25%)를 획득했다. 3년 연속 롯데 선수가 이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데 공을 세웠다.
올스타 최우수선수(MVP) 격인 '미스터 올스타'는 LG 박동원이 선정됐다. 그는 2점 홈런 포함 4타수 3안타 1홈런 3타점 1득점으로 맹활약, 나눔 올스타의 8-6 승리를 이끌며 기자단 28표 중 27표를 차지했다. LG 출신으로는 2011년 이병규 이후 14년 만이다. 이름에서 유래한 '동원참치' 탈을 쓰고 나왔던 박동원은 경기 후 부상으로 기아자동차 EV4 차량을 받았다.
선수와 팬 모두 만족한 축제였다. 이날 한복을 입고 나선 롯데 빅터 레이예스는 "전사 느낌으로 입었다. 구단 마케팅팀에서 추천해 줬는데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골랐다"며 "팬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많이 좋아해 주셨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팬들은 4년 연속 매진으로 응답했다. 1만6850명 관중이 유니폼을 착용한 채 온종일 대전 곳곳을 누볐고, 경기 내내 10개 구단 응원가를 떼창하며 분위기를 돋웠다. 현장에서 만난 삼성 팬 김민정 씨는 "예매가 너무 힘들어서 2년 연속 실패했는데, 지인을 통해 표를 구하고 2시간 운전해서 왔다"며 "10개 구단이 다 같이 참여하면서 인기 선수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게 올스타전의 매력"이라 강조했다.
신희재 기자 gale0324@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