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애 국민대 글로벌기후환경융합학부 연구교수
김선애 국민대 글로벌기후환경융합학부 연구교수

[한스경제=김선애 국민대 글로벌기후환경융합학부 연구교수] ‘2025년 글로벌 어벤져스: UNEP 케냐∙두바이’ 프로그램으로 10명의 학생들과 함께한 케냐 나이로비, 그리고 마사이마라에서의 시간은 내게 깊은 울림을 안겨주었다. 특히 마사이마라에서 마주한 광활한 풍경과 인간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생태계는, 몇 해 전 읽었던 책 앨런 와이즈만의 '인간 없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했다. 인간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연을 바라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오히려 더 조화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상상해 보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마사이족 출신 가이드의 한마디였다. “동물들은 우리의 사촌입니다. 여기는 그들의 집이고, 우리는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 말은 단순한 안내를 넘어, 자연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와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자연과 동물, 인간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삶.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온 내게는 낯설지만 어쩌면 더 본질적이고 조화로운 삶의 방식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유엔환경계획(UNEP)과의 교류로 시작한 이번 프로그램의 첫번째 방문지나이로비는 UNEP 본부가 위치한 도시이자, 아프리카 대륙의 환경정책 허브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이번 일정에서 이틀 간의 기후환경 교육 과정을 진행한 왕가리마타이 연구소는, 환경운동으로 2004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타이 여사를 기리기 위해 나이로비대학교 내에 설립된 기관으로, 개발도상국의 관점에서 기후정책을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자료와 문헌으로만 접해온 글로벌 기후환경 거버넌스의 현실을, 생생한 정책 실천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기후변화 이슈와 함께 하고 탐구한 지 15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수많은 질문과 회의 속에서, '내가 추구하는 변화가 정말 지구와 인류 모두를 위한 올바른 방향인가?'라는 고민도 반복해 왔다. 때로는 환경운동가들의 구호나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케냐 방문은 그러한 혼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던 거 같다.

자연을 통제하고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 그 안에서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감각이야말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인식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년 생물다양성 특강에서 소개한  '인간 없는 세상'을 읽었다는 학생이 이번 방문에 함께했는데 이 학생에게는 이 여정이 그 책의 메시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생생하고도 깊이 있는 체험으로 남았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또한 케냐 방문 이후 이어진 두바이 일정에서 미들섹스대학교 두바이캠퍼스(Middlesex University Dubai)와의 공동 워크숍을 통해 만난 현지 학생들과의 대화도 인상 깊었다. 석유 이후 시대를 대비하여 산업 다각화와 지속가능성 중심의 전략을 추진 중인 두바이의 모습에서,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자각뿐 아니라 동시에 인간만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자연과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이성과 능력을 가진존재라는 사실 또한 학생들이 되새기게 되었길 바래본다.

이러한 미래를 이끌어갈 10명의 future decision makers들과 함께한 이번 여정은 단순한 학술 교류나 문화체험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기후정의와 생태 회복에 대한 철학적·실천적 기반을 다지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자연과의 진정한 공존,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다시 돌아온 대도시의 일상 속에서 우리의 발걸음은 한층 더 단단해졌을 것이다.

 

김선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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