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전문가·관료 출신 인사 3파전 양상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수장 교체 잔혹사
노조, 류광수·강은호 후보 반대 입장 표명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강구영 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임기를 3개월 정도 남겨둔 이달 초 퇴임했다. 강 전 사장이 조기 사퇴하면서 차기 사장 인선에 방산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벌써부터 KAI 노동조합이 하마평에 오른 일부 후보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8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강 전 사장은 지난 1일자로 물러났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 취임 첫날인 지난달 4일 최대 주주인 한국수출입은행을 찾아 사퇴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KAI는 차기 대표이사 선임 때까지 사장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KAI는 이달 1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현재 사내이사로 등재된 고정익사업부문장인 차재병 부사장을 사장 대행으로 선임했다고 공시했다. 차 사장대행은 차기 대표이사 선임 시까지 KAI 사장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동안 KAI 사장은 군과 관료 출신이 독식해 왔다. 역대 사장 중에서 하성용 전 사장만 내부 승진했다. 이번에 사퇴한 강 전 사장도 공군사관학교 30기로 군 출신이다. 국내 1세대 시험비행 조종사로 KT-1와 T-50 고등훈련기 등 국산 훈련기 개발에도 참여했다.
강 전 사장은 최고경영자 역량과 관련해 꾸준히 의문이 제기돼왔다. 2022년 9월 KAI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 핵심 임원들을 다수 해고했는데 당시 KF-21 개발을 총괄하던 류광수 부사장도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재임 중 ‘천리안위성 5호’ 개발사업 등 대형 수주를 연이어 실패한 점과 국내 방산업계 호황이 지속되던 지난해 KAI만 실적 부진을 겪으며 경영 성과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KAI는 2024년 매출 3조6337억원, 영업이익 240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4.9%, 2.8% 감소했다.
2022년 대선 때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과 함께하는 국방포럼’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강 전 사장은 재임 기간 내내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KAI는 26.41% 지분율의 수출입은행이 최대 주주다. 2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으로 9.0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정부 지분율이 35%를 웃도는 기업으로 사실상 준정부기관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지배 구조로 KAI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장이 교체돼 왔다.
KAI의 차기 사장 후보로는 강은호 전북대 교수와 류광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사장, 문승욱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유력하게 거론되며 3파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3명 모두 군 출신은 아니지만 전직 방위사업청장인 강은호 교수와 문승욱 전 장관은 관료 출신이다.
류광수 부사장은 2023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입사하기 전 KAI 부사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흔히 '한국형 전투기 KF-21의 산증인'으로 알려진 항공우주 전문가다. 업계 일각에서는 류 부사장이 경공격기 FA-50 개발도 함께한 베테랑 엔지니어로서 기술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는 KAI를 이끌 적임자로 평가하고 있다.
강은호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 방사청장을 역임해 방산 수출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고시 33회 합격 후 공직에 입문한 강 교수는 방사청장 재임 시 아랍에미리트(UAE)와 4조원 규모의 '천궁-Ⅱ(M-SAM2)'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바 있다.
2006년 방사청 개청 당시부터 함께한 원년 멤버로 방위산업 전반에 대한 전문성과 이해도가 높다는 것이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그는 현재도 전북대 특임교수로 방산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문승욱 전 장관 역시 행시 33회 출신으로 산자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2011년 방사청 한국형헬기개발사업단 민군협력부장, 2016년 방사청 차장으로 각각 근무하며 방위산업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다. 당초 강 교수와 류 부사장의 이름이 많이 거론되는 상황에 최근 문 전 장관이 가세하면서 3파전 구도가 형성됐다.
이 밖에도 KAI 차재병 사장대행(부사장)의 내부 승진 가능성과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박인호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군인공제회 이사장을 지낸 김도호 예비역 소장 등도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KAI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사장도 교체되는 ‘낙하산 테스트 베드’로 전락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수년 단위의 연구·개발과 수출 프로젝트가 이어지는 방산기업의 특성과 맞지 않고 중장기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서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KAI의 노조는 더 이상의 ‘낙하산 인사’는 좌시하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벌써부터 류광수·강은호 후보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두 후보는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의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KAI 노조는 7일 성명서를 통해 "강 전 사장 후임으로 정권 입맛에 맞는 인사가 언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가장 우려되는 인물로 류 전 부사장을 지목하며 "그가 KAI와 한화 간 기술·인력 유출 통로 역할을 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강 전 방사청장에 대해서는 "공공기관 수장으로서 기본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며 "재임 시절 업무추진비 허위 기재, 부적절한 술자리 논란으로 고발된 전력이 있어 이미 사회적 신뢰를 상실했다"고 꼬집었다.
노조는 문승욱 전 장관을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목하며 “직접적인 실무 경험은 부족하지만 산업 정책에 대한 이해와 행정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우리는 이미 낙하산 세력이 회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뼈저리게 경험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검증 없는 낙하산 인사가 강행된다면 즉시 총력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KAI는 항공체계, 무인기, 위성 등 전략무기 개발과 수출을 동시에 수행하는 국내 대표 방산기업”이라며 “단순한 정치 코드 인사가 아닌 산업 전문성과 경영 안정성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준혁 기자 atm1405@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