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임준혁 차장./
산업부 임준혁 차장./

[한스경제=임준혁 기자] 해운·조선·항만산업 등을 총칭하는 ‘해사(Maritime)산업’은 미국발 관세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개편, 미국의 조선산업 재건 추진 등의 이슈와 맞물려 최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해사산업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예전보다 높아진 사실을 해당 산업 종사자들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다.

특정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산업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해사산업을 바라보는 대중(국민)의 인식은 구미 해양 선진국에 비해 썩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은 해사산업을 ‘해양안보산업’으로 분류함으로써 그 위상을 격상시켰다. 영국도 선박 검사와 선박의 안전 기준 등을 제정하는 선급 기술의 중요성을 오래전부터 강조해 오고 있다. 영국 로이드선급은 세계 3대 선급 중 하나로 국제 방산·해군 함정시장에서 최고의 공신력과 기술 표준 영향력을 획득·보유했고 그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해군을 ‘로열 네이비(Royal Navy, 왕립 해군)’로 부르며 가족이나 지인이 해군에 복무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해사산업 종사자(선원, 선박 기술자 등)가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인식, 정책·제도적 지원이 잘 갖춰져 있다.

이달 중순 서울에서 열린 한국선급 창립 65주년 기념식 및 세미나에서 발제자와 패널, 플로어 여기저기서 한결같이 해사산업에 대한 인식 제고를 주창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해운업은 국제수지 개선에 기여하는 외화가득 및 수입대체 산업이다. 동시에 해운업은 조선, 금융, 항만 등 전후방 산업의 연계 발전을 주도하는 선도 산업이기도 하다. 2022년 국내 해운기업 170개 사는 총 1665척, 992만2000톤의 외항 선박을 보유했다. 이 같은 한국 외항 선대 규모는 당시 세계 4위였으며 운임 수입으로 383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같은 해 우리나라 국제수지 중 서비스 부분 외화가득액 1302억달러의 29%에 해당한다. 품목별 수출실적에서는 6대 수출 산업 중 하나인 철강 제품 수출액(384억달러)과 비견될 정도다.

2009년 8월 부산·울산항에서 예선 노조가 파업을 벌였다. 한시적이었음에도 선박이 제때 입·출항하지 못하면서 선사와 화주는 물론 터미널 운영사, 육상 운송 물류회사와 트럭 운전자가 동시에 패닉에 빠졌다. 당시 파산 전이던 한진해운은 부산항에서의 물동량 처리에 비상이 걸렸고 재산·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파업이 장기화됐더라면 글로벌 정기 선사들이 부산항을 기항지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실행에 옮겨졌다면 부산항의 대외신인도 하락은 물론 해운을 통한 수출입으로 국가 경제가 유지되는 한국 경제에 큰 위기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물과 공기는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다. 사람은 평상시에는 그 중요성, 고마움을 느끼지 않지만 둘 다 수 분, 수 시간 동안 차단됐을 때 중요성을 실감한다. 해사산업도 마찬가지다. 평상시에는 못 느끼던 중요성이 어느 하나라도 삐걱대며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면 국가 경제·물류 관점에서 절대적인 존재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한국에서는 국토의 전부를 흔히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이라고 표현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전국 ‘진진포포(津津浦浦)’라고 부른다. 방방곡곡은 말 그대로 산골 구석구석, 골짜기 골짜기를 뜻하며 진진포포는 나루터와 나루터 사이, 바닷가를 의미한다. 이같은 차이는 해양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인식이 접근부터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한국은 대륙(육지) 지향형 민족이었고 반대로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에 바다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으며 일본이 20세기 해양 강국으로 도약했던 저력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1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산하 조직에서 주최한 해양 인식 전환 프로그램을 동행 취재했다. 순천만 견학과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조선소 투어 등을 통해 참석한 서울시 초등학교, 중학교 교장 선생님과 교육청 관계자들에게 해사산업이 미래의 먹거리이자 대한민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블루오션임을 강조하고 이를 후세에 집중 교육해야 한다는 취지의 행사였다.

해군사관학교 수학 이력이 있는 당시 주최 측 관계자의 말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문과 학생들에게 해양에 대한 기초과학적 소양은 물론 해사산업이 정책적·경제적·국가안보적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적극 가르쳐야 합니다. 이들 중에서 장차 한국의 해양·해사산업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관료가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14년이 흐른 지금 이 관계자의 메시지가 참석 대상 일선 교육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됐을까? 아직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 하다.

임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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