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1(1부) FC서울을 떠나는 기성용. /서울 제공
프로축구 K리그1(1부) FC서울을 떠나는 기성용. /서울 제공

[한스경제=류정호 기자] 프로스포츠 세계에서 영원한 동행은 없다. 많은 시간과 추억을 쌓아온 레전드도 어느 순간은 이별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이별의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현역 연장을 위해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누군가는 친정팀의 품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프로축구 K리그1(1부)과 프로야구 KBO리그 SSG 랜더스를 대표했던 두 레전드 기성용(36)과 김강민(43)의 선택은 이를 잘 보여준다.

K리그1 FC서울의 상징과도 같던 기성용은 결국 팀을 떠나기로 했다. 새 둥지는 포항 스틸러스다. 서울 구단은 앞서 25일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원한 캡틴 기성용과의 인연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며 결별을 공식화했다.

2006년 서울에서 데뷔한 기성용은 셀틱(스코틀랜드), 스완지 시티(웨일스), 뉴캐슬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레알 마요르카(스페인) 등 유럽 무대에서 10년 이상 활약했다. 이후 2020년 서울로 복귀해 K리그 통산 198경기 14골 19도움을 기록했다. 하지만 김기동(53) 감독 체제에서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올 시즌 들어선 출전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기성용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 팀의 계획에 제가 없다는 걸 들었고, 처음엔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이적 배경을 밝혔다. 포항 이적은 박태하(57) 감독의 적극적인 러브콜에서 시작됐다. 기성용은 “박태하 감독님이 먼저 ‘네가 필요하다’고 연락을 주셨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저를 품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는 연봉도 대폭 삭감하며 현역 연장 의지를 보였다.

FC서울에서 뛰던 기성용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FC서울에서 뛰던 기성용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이번 선택에는 단순히 선수 생활 연장을 넘어 자신을 온전히 필요로 해주는 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기성용의 의지가 담겼다. 박태하 감독은 대표팀 코치로 재직하면서 기성용과 인연이 있었던 인물이다. 또한 포항에는 김치곤(42) 코치 등 과거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어 새로운 도전을 결정하는 데 힘이 됐다. 기성용은 끝으로 “서울은 제 고향이자 자존심이었다”며 “함께해준 동료들, 팬들의 사랑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라고 작별 인사를 남겼다. 그는 서울 유니폼을 벗지만, 서울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반면 KBO리그 SSG의 레전드 김강민은 친정팀과 마지막을 함께했다. ‘짐승 중견수’로 불렸던 그는 28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전이 끝난 뒤 은퇴식을 가졌다.

김강민은 2001년 SK 와이번스(현 SSG)에 입단해 23년 동안 팀의 전성기를 함께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5회, 2022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통산 1960경기 출전 등 그의 커리어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지난해 2차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지명을 받으면서 원 클럽맨의 꿈은 잠시 멈췄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무대는 여전히 인천이었다. 이날 SSG는 김강민을 특별 엔트리에 등록해 1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전시켰고, 그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교체되며 상징적인 마지막 플레이를 마쳤다.

28일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SSG는 김강민의 은퇴식을 열었다. /구단 제공
28일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가 끝난 뒤, SSG는 김강민의 은퇴식을 열었다. /구단 제공

은퇴식은 감동을 자아냈다. 김강민은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 끝내기 홈런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그라운드를 돌며 팬들과 작별했다. 동갑내기 친구 추신수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고, SSG 후배들은 더그아웃 앞에서 김강민을 헹가래 쳤다. 행사는 단순한 은퇴식이 아니었다. 김강민의 현역 시절을 함께했던 동료들과 코치진, 팬들의 진심이 녹아든 자리였다. 김강민의 세 딸도 그라운드에 함께 나와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보였다. 추신수는 말없이 끌어 안았고, 장동철(64)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 김재섭(53) SSG 대표이사, 김광현(37) 등도 기념품과 트로피를 전달하며 김강민의 마지막을 축하했다.

김강민은 “한화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저를 기다려준 SSG 팬들께 정말 감사하다. 영원히 SSG의 ‘짐승’으로 남고 싶다. 5회 우승은 제 인생의 자부심이다. 앞으로도 짐승처럼 치열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김강민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최정(38)은 “형과 함께 5차례 우승을 한 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했고, 김광현 역시 “언젠가 감독과 선수로 다시 만나고 싶다”고 바랐다.

현역 연장을 위해 불가피하게 이적을 택한 기성용과 친정팀의 극진한 예우를 받고 웃으며 떠난 김강민의 마지막이 대조를 이룬다. 두 레전드의 선택은 사실 프로 세계에선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다만 둘의 뒷모습은 프로 세계 ‘레전드 예우’에 대한 부분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류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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