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튀 논란 지속…피해자 보호 대책 필요
[한스경제=석주원 기자] 개발 중인 게임의 내용 일부를 미리 유료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개발사를 지원하는 ‘앞서 해보기(Early Access)’가 선보인 지도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개발사들이 앞서 해보기의 도움을 받아 높은 완성도의 게임을 선보였으며 인디게임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만큼이나 부정적인 영향도 커지면서 최근에는 앞서 해보기 게임을 기피하는 이용자들도 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개발사가 게임 개발을 중단해 버리는 상황이다. 앞서 해보기는 체험판과 달리 이용자가 직접 돈을 내고 구매해야 즐길 수 있다. 완성되지 않은 게임이지만 미래에 완성될 제품을 기대하고 선금을 지불하는 셈이다. 만약 개발사가 게임 개발을 중단해 버리면 구매자는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먹튀 상황은 실제로 비일비재하다. 더욱이 개발은 중단됐지만 이와 관련한 공지도 없이 방치되는 경우 이용자는 기약 없는 업데이트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다. 처음엔 앞서 해보기 게임에 호의적이었던 이용자도 이러한 상황을 몇 번 당하다 보면 점차 앞서 해보기 게임을 꺼리게 된다.
2013년 디지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이 처음 선보인 앞서 해보기는 이용자가 게임 개발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시작됐다. 게임의 일부 콘텐츠를 미리 즐겨보고 개선점 등을 개발사에 전달하면 개발사는 이를 반영해 게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이용자들이 미리 지불한 비용은 자금이 넉넉지 않은 중소개발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23년 주요 시상식에서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한 ‘발더스 게이트 3’는 가장 성공적인 앞서 해보기 게임으로 꼽힌다. 발더스 게이트 3는 2020년 10월 1장만 열린 상태에서 앞서 해보기로 출시됐다. 가격은 6만6000원으로 앞서 해보기 게임치고는 다소 비싼 편이었지만 출시하자마자 100만장을 판매하며 기대를 모았다.
발더스 게이트 3의 개발사인 라리안 스튜디오는 이러한 이용자들의 호응에 부응하듯 꾸준히 게임 내용을 업데이트해 나갔고 약 3년 후인 2023년 8월 이용자들과의 약속대로 완성된 게임을 정식 출시할 수 있었다. 개발 과정에서 이용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발더스 게이트는 2023년 최고의 게임으로 꼽히며 많은 휩쓸었다. 지난해까지 판매량은 1500만장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반대의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에 앞서 해보기로 출시된 ‘더 스톰핑 랜드’가 있다. 더 스톰핑 랜드는 2013년 크라우드 펀딩으로 초기 자금을 모은 뒤 2014년 스팀 앞서 해보기로 출시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업데이트가 뜸해지다가 2015년에 홈페이지를 삭제하고 개발자도 잠적해 버리면서 게임을 구매한 이용자들은 그대로 피해를 봐야 했다.
이처럼 앞서 해보기는 활용하기에 따라서 게임의 완성도를 끌어 올리며 게임사와 이용자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안겨준다. 하지만 반대로 개발사에게 책임감과 열의가 부족하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가 입게 된다. 앞서 해보기를 도입한 스팀에서는 피해를 본 이용자에게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고 있다. 최근에서야 업데이트 되지 않는 앞서 해보기 게임에 대해 경고 문구를 추가한 게 전부다.
그럼에도 앞서 해보기는 개발사에게 이점이 많기 때문에 지금도 수많은 게임사들이 앞서 해보기로 게임을 출시하고 있다. 현재 스팀에 등록된 앞서 해보기 게임만 1만3700여개에 이른다. 스팀에 등록된 게임이 6만여개로 알려져 있으니 약 20%는 앞서 해보기 게임인 셈이다. 이 중 상당수가 중소개발사나 1인 개발자의 인디게임일 만큼 앞서 해보기는 인디게임 시장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인디게임의 경우 게임 완성도는 천차만별로 차이가 있지만 종종 기대 이상의 게임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게임 장르를 개척하는 경우도 있다. 2017년 앞서 해보기로 출시한 ‘슬레이 더 스파이어(Slay the Spire)’는 로그라이크 덱 빌딩 게임의 유행을 주도한 바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팰월드(Palworld)’는 일본의 인디게임 개발사 포켓페어에서 개발했지만 스팀에서만 1200만장 이상을 판매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포켓페어의 경우 전작인 ‘크래프토피아(Craftopia)’를 앞서 해보기로 출시했다가 업데이트를 중단하면서 먹튀 논란에 휩싸인 전력이 있어 앞서 해보기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로 꼽힌다.
국내 게임사들도 앞서 해보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크래프톤을 국내 최고의 게임사로 이끌어 준 ‘배틀 그라운드’도 앞서 해보기로 출시한 후 게임성을 다듬어 나갔다.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나 네오위즈의 ‘산나비’도 앞서 해보기 이후 정식 출시를 통해 성공한 사례다. 최근에는 크래프톤의 ‘인조이(inZOI)’가 앞서 해보기로 서비스 중이며 내년 정식 출시를 예고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앞서 해보기는 개발사 입장에서 게임의 피드백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앞서 해보기 이용자들은 돈을 주고 게임을 구매했기 때문에 더 냉정한 평가를 내리며 이를 바탕으로 게임의 방향성을 개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게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고 개발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주원 기자 stone@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