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라인 중단에 재고 폭증 악순환
수익성 악화·긴축경영...타개책 불투명
[한스경제=김종효 기자] 국내 시멘트산업이 올해 들어 1980년대 수준 ‘수요 절벽’에 직면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내수 출하량이 급감하고 생산라인 가동 중단과 재고 급증 등 업계 전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멘트 산업은 1991년 이후 30여년간 지켜온 연간 내수 4000만톤 출하 목표마저 달성하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올해 1~2월 시멘트 내수 출하량이 445만톤이라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24.8% 급감한 것으로 이는 최근 5년간 1~2월 내수 판매 중 가장 낮은 수치다. 2023년 같은 기간 712만 톤에 비해 2년 만에 37.5%(267만톤)나 줄었다.
업계는 올해 내수 출하 목표를 4000만톤으로 잡았지만 1~2월 최소 500만톤대 출하가 이뤄져야 달성 가능한 수치였다. 현실은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친 것이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올해 1~2월 출하량 흐름대로 간다면 올해 내수 출하량은 4000만톤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 IMF 외환위기 시기보다도 못한 실적”이라며 “국내 시멘트업계가 1980년대 수준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시멘트 내수 4000만톤은 1991년 처음 돌파(4420만톤)한 이래 IMF 외환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등 굵직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지켜온 마지노선이었다.
당시에는 생산능력 4361만톤을 초과 달성한 수요였지만 현재는 국내 생산능력이 약 6200만톤에 달하는 상황에서 내수 4000만톤은 생산능력 대비 가동률이 64.5%에 불과한 수치다. 시멘트업계가 기업경영 유지를 위한 최소 가동률을 70% 이상으로 잡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가동률은 심각한 경영 위기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출하량 급감은 생산라인 가동 중단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국 시멘트 공장 35기 중 8~10기가 이미 가동을 멈춘 것으로 나타났고 추가 중단도 예고된 상태다. 일례로 한일시멘트 단양공장은 생산량 조절을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6기 중 2기를 가동 중단했다. 아세아시멘트 제천공장 역시 가동률이 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생산라인 중단에도 불구하고 재고는 폭증하고 있다. 올해 2월 말 기준 업계 전체 클링커와 시멘트 재고는 340만톤으로 저장능력인 379만톤 대비 90%에 육박한다. 시멘트는 장기 저장 시 품질 저하와 재처리 비용 증가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저장시설 용량 초과를 우려한 일부 업체들은 생산라인 추가 중단을 검토 중이다.
시멘트 수요 급감 핵심 원인은 건설경기 침체다. 신규 주택 분양, 대형 인프라 사업, 민간 개발 등 전방산업이 위축되면서 시멘트 소비가 급감했다.
시멘트 산업은 내수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아 수출로 위기를 타개하기도 어렵다. 지난해 시멘트 내수 출하량은 약 4359만톤, 수출은 59만톤에 불과했다. 올해는 내수 4000만톤, 수출 330만톤으로 총 출하량 4330만톤이 예상된다. 이는 2014년4371만톤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다. 업계는 올해 내수 출하량이 3800만톤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시멘트업계는 포트폴리오 다각화가 쉽지 않은 구조다. 일부 업체가 신사업에 진출하고 있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한일시멘트의 경우 신사업 매출은 전체 매출의 18.7% 수준에 그친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 회복 없이는 수요 절벽에 따른 시멘트업계 위기 해결책이 없다.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어려워 긴축경영만이 대안”이라고 토로했다.
출하량 감소와 생산라인 중단은 곧바로 경영실적 악화로 이어진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시멘트업계 매출은 11%, 영업이익 24%, 순이익 65%가 감소했다. 전기료·연료비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업체는 시멘트 생산 핵심설비인 소성로 가동을 중단하고 긴축경영에 나서고 있다.
시멘트업계는 올해 남은 기간 내수 출하량 4000만톤 달성이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정부의 건설경기 부양책, 규제 완화,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 등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업계 내에서도 친환경·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신사업 진출 등 체질 개선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출하량 급감, 생산라인 중단, 재고 폭증, 수익성 악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건설경기 회복과 정책적 지원 없이는 위기 탈출이 어렵다. 시멘트 산업의 생존과 재도약을 위한 근본적 해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김종효 기자 sound@sporbiz.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