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테라·루나 붕괴로 인한 59조원 규모, 투자자 손실
도피 끝에 미국으로 송환된 권도형 최대 130년형
국내 28만명 피해자들의 불확실한 손해배상 전망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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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경제=전시현 기자] 2022년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뒤흔든 테라(UST)·루나(LUNA)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테라폼랩스 창업자가 1년 9개월간의 도피 끝에 미국으로 송환됐다. 몬테네그로 정부는 2024년 12월 31일 권씨를 미국 법무당국에 인도했으며, 그는 지난 1월 3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사기·시세조종·자금세탁 등 9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미국 법무부는 "테라폼의 가상화폐가 폭락한 이후 광범위한 사기에 연루되고 범죄 수익금을 세탁했으며, 범죄를 은폐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400억달러(약 59조원) 이상의 투자자 손실을 초래한 역대급 금융사기로 평가받으며, 미국 검찰은 "블록체인은 무법지대가 아님을 입증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 젊은 천재에서 글로벌 사기범으로…테라·루나 붕괴의 시작

권도형은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후 실리콘밸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촉망받는 인재'였다. 2018년 티몬(티켓몬스터) 창업자 신현성과 함께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하며 암호화폐 업계의 '젊은 천재'로 주목받았다.

그의 핵심 제품인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와 연동된 루나(LUNA)는 알고리즘을 통해 1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표방했다. 특히 '앵커 프로토콜'이라는 디파이(DeFi) 서비스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연 20%의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며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그러나 이는 허구로 드러났다. 2021년 5월 테라 가치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지자 권씨는 홍콩의 투자사 타이모샨과 협약해 2000만달러 규모의 테라 매입으로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양했으며, 이를 투자자에게 "자동 회복 알고리즘"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민사소송에서 이러한 사실이 증거로 제시되었다.

앵커 프로토콜은 수익을 내려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루나와 UST를 매집해 알고리즘 기반으로 가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지만, 처음부터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있었다. 당시 다른 디파이 프로젝트들이 제공하던 수익률(3~5.5%)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20% 수익률은 업계에서도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 2022년 5월, 59조원 증발

2022년 5월, 테라와 루나는 연쇄 폭락하며 시가총액 59조원이 증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문제는 테라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금 대부분이 비트코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당시 비트코인 가격이 급격히 변동하면서 시스템이 붕괴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루나 시가총액은 52조7000억원에서 3조8000억원으로 급락했고, 테라USD(UST)의 가격이 1달러 페깅에서 이탈하는 '디페깅' 사태가 발생했다. 투자자들이 앵커 프로토콜에서 자금을 대거 인출하는 일종의 '뱅크런' 현상이 일어났고, 이는 시스템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다.

이 사태로 인한 피해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한국에서만 약 28만 명의 투자자가 피해를 입었으며, 국내 피해액만 3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400억 달러(약 59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당시 권씨는 사태 직전인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UAE,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 국가를 옮기면서 도피했고, 2023년 3월 몬테네그로 공항에서 위조 여권 사용으로 체포됐다.

◆ 한국 vs 미국, 신병 쟁탈전…결국 미국에서

권도형 체포 후 한국과 미국은 치열한 범죄인 인도 경쟁을 벌였다. 한국 법무부는 2023년 3월 24일 즉시 인도 요청을 시작했고, 미국 역시 뉴욕 남부연방지검을 통해 8개 혐의(사기공모·시세조종·증권사기 등)로 기소하며 압박했다.

몬테네그로 법원은 초기 1·2심에서 '한국 송환'을 권고했으나, 대법원은 '법무장관이 최종 결정권자'라며 사건을 환송했다. 결국 보얀 보조비치 법무장관은 '범죄의 중대성과 장소, 청구 순서'를 이유로 미국 송환을 확정했다.

권씨 측은 "한국 송환이 국제법에 부합한다"며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가처분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병과주의(범죄별 형량 합산)로 최대 130년형을 선고할 수 있어 중범죄자 인도에 적극적"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40년이며, 권씨는 이 점을 이용해 한국 송환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권씨가 몬테네그로 현지와 국내 최고 로펌에서 활동 중인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변호인단을 꾸려 한국행을 위해 노력했다고 분석했다. 이들 중에는 지검장 출신 등 전직 검찰 고위 간부가 대거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테라 사태에 연루된 다른 핵심 인물들도 김&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등 전관 변호사를 대거 선임해 왔다.

◆ 미국 법정서 벌어지는 '디지털 월가의 추락'…유죄 인정땐 130년형 가능

2025년 1월 3일,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26호 법정은 숨죄인 듯 조용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권도형은 수갑과 차꼬를 찬 채 경호원에 둘러싸여 입장했다. 그는 영어 이해 능력을 확인받은 뒤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의 진술을 경청했다.

검찰은 기소장을 79페이지로 확장해 자금세탁 공모 혐의를 추가하며, "뻔뻔한 속임수로 투자자들을 유인해 500억 달러 규모의 거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미 법무부는 혐의 중 ▲상품사기 2건은 각 최고 10년 ▲증권사기 2건은 각 최고 20년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2건은 각 최고 20년 ▲상품 사기와 증권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공모 2건은 각 최고 5년 ▲자금세탁 혐의 1건은 최고 2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최대 130년형이 가능하다.

그의 재판은 가상자산 거래소인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25년형을 선고받은 바로 그 법원에서 진행됐다. 검찰은 권씨가 테라폼랩스의 기술력을 과장한 SNS 게시물과 TV 인터뷰, 타이모샨과의 암묵적 계약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권씨의 재판은 2026년 1월로 예정되었으며, 현재 뉴욕 브루클린 연방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그는 보석 없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뉴욕 남부연방법원의 존 크로넌 판사가 담당하며, 재판 준비를 위한 심리는 2025년 4월 28일로 예정됐다. 그러나 최근 2025년 4월 10일에 열린 재판 전 협의에서 일정이 3주 연기됐다.

한편 권씨는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44억7000만달러(약 6조5000억원)의 벌금 납부에 합의한 상태다. SEC는 "테라의 안정성을 의도적으로 속였다"는 판결을 받아냈으며, 이는 형사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국내 피해자들의 구제는 다소 불투명

한국 내 테라·루나 사태 피해자들은 권도형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게 됨에 따라 피해 구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피해자는 약 28만 명으로, 총 피해 규모는 약 3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서울남부지검은 권도형과 신현성 전 대표 등 테라폼랩스 전현직 임직원 10명의 부당이득을 환수하기 위해 2468억원대 재산을 추징 보전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권씨가 SEC와 합의한 6조원이 넘는 벌금이 국내 피해자 구제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권도형이 미국으로 송환됨에 따라 한국 피해자들이 손해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 권씨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 미국의 피해자들이 우선 배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테라폼랩스의 파산 승인에 따라 피해자들이 일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지만, 회수 가능한 금액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테라폼랩스의 파산 승인 이후 피해자들에게 지급 가능한 금액은 약 24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 가상화폐 신뢰 회복 가능할까

현재 브루클린 연방 구치소에 수감된 권도형의 다음 재판 준비 심리일은 5월 19일 경이다. 법정 밖에서는 "사기꾼에게 엄벌을"이라는 피해자 집회가 열렸고, 암호화폐 업계는 '규제 강화' 움직임에 고삐를 죄고 있다.

테라·루나 사태는 '디지털 자산 시장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투명성 없는 알고리즘, 과장된 마케팅, 감독 기관의 부재가 초래한 참사다. 한 금융 분석가는 "권도형의 처벌이 미래 사기 방지의 기준이 될 것"이라며 "기술 혁신과 규제의 균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검 관계자는 "블록체인은 무법지대가 아니며, 권도형과 같은 범죄자들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시장을 조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암호화폐 시장이 더 엄격한 규제와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8만 명에 달하는 국내 피해자들과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해 구제다. 권도형이 수십조원의 손실을 초래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그리고 법체계가 이런 대규모 금융사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향후 디지털 금융 시장의 발전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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