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현실적 해법을 제시하는 신간 '리빌딩 코리아'가 출간됐다.
한국은행에서 통화 및 거시 경제 최고 전문가로 알려졌던 저자는 2023년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에서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기업 및 산업계가 직면한 국내외의 다양한 도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지난해 상반기부터 경제 전문가들과 ‘피크 코리아(Peak Korea)’ 주장이 타당한지, 또 이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한 결과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쏟아져 나오는 책들과 달리, 진보·보수의 진영과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금융과 실물을 포괄하는 종합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가 직면한 엄중한 상황을 진단하고 재도약하기 위한 발전 전략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중 패권 경쟁과 각자도생 시대의 도래부터 첨단 디지털 산업 및 기후 기술 경쟁, 에너지 믹스, 저출생·고령화, 지역 소멸 문제, 극단적 이념 갈등 및 리더십 부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경제가 처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대해 논한다. 엄중한 국내외 여건하에 피코 코리아 극복을 위한 국가 재도약 프로젝트로, 일명 『리빌딩 코리아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먼저 프로젝트 수행 시 지켜야 할 원칙으로 기본 생존권을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 구축, 진검 승부를 유도하는 거시 경제 정책 수행, 산업 정책과 규제 완화의 조화로운 설계, 복합 문제에 대한 포괄적 솔루션 도출, 실용적 리더십과 사회적 대타협 추진 등을 제시한다. 추진 방안으로 혁신과 선도의 생산성 주도 성장 전략을 내세워 R&D 개선, 교육 및 금융 개혁 등에서부터 신산업 정책 추진, 구조 개혁 성공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한국 경제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려하는 소위 ‘피크 코리아’의 기로에 서있다. 지난 20여 년간 주력 산업에 거의 변화가 없이 안주하는 모습인데, 세계적으로는 첨단 산업 및 기후 기술 관련 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극단적 저출생 현상으로 2040년대 후반이면 평균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른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로 표출된 극단적 정치·사회적 갈등,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의 예측할 수 없는 세계 경제 질서 등은 우리 앞에 닥쳐올 퍼펙트 스톰을 예고한다. ‘한국 경제호’는 이러한 복합 위기 앞에서 좌초하고 말 것인가?
한국 경제호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념 논쟁 속에 리더십 부재로 한발 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데 있다. 첨단 산업 육성, 기후 기술 개발, 에너지 수요 급증 등 엄중한 상황에서 원전과 재생 에너지, 소득 주도 성장, 기본 소득 등과 관련한 이념 논쟁으로 정권마다 정책 기조를 바꾸니 어느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도전적으로 투자를 하겠는가? 주요국들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엄두도 못 냈던 산업 정책을 추진하며 경쟁력 강화에 매진하고 있는 이때, 우리는 여전히 과거 이념에 스스로 발목을 묶어 놓고 있지는 않은가? 선진국처럼 축적해 놓은 부(wealth)가 많아 이념 논쟁으로 쓸 시간이 충분하다면 모를까, 그런 선진국들조차 전략적 경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에겐 한가롭게 여유부릴 틈이 없다.
기성세대들이 모이면 “우리 세대는 좋은 시절 살았어”라며 미래 세대를 걱정하지만 정작 미래 세대를 위해 뭘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고 양보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걱정은 되는데 내 파이는 나누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진정 자기들이 한 만큼만 보상받은 것인가, 선조들 덕에 노력 이상의 혜택을 받은 것은 아닌가? 기성세대는 성장하던 시대라 몸만 움직일 수 있으면 무엇을 해서라도 굶어 죽지는 않았으니,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도래로 창조적인 일에 나서야만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 세대들을 위해 과거에 비해 부유해진 우리 사회가 기본 생존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런 질문들에 다음과 같이 답하며 한국 경제를 재도약시키자고 주장한다.
“‘세상을 지나치게 관조적으로 접근하지 마시고, 이제는 저희 세대를 위해 무언가 해 주시길 바래요’라는 딸 친구들의 부탁에 첫 번째 답으로 이 졸저를 내놓는다(에필로그).”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대통령 탄핵,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으로 위기의식이 극대화된 지금이 국가 재도약을 위한 개혁 추진의 기회라 생각한다(본문 p.96).”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한국 경제를 재도약시킬 것인가?
저자는 가치 중립적이고 민생과 실리에 초점을 둔 실용의 리더십을 기반으로, 혁신과 선도의 ‘생산성 주도 성장 전략’을 채택해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첨단 산업, 기후 기술 등 신산업의 생산 시스템은 내생적 성장(endogenous growth)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같은 노동과 자본을 투입하더라도 기술 혁신, 규제 완화, 시장 선점 등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는 것이다. 찰스 킨들버거의 말처럼 개혁을 통해 쇠퇴기에 이른 경직된 경제 사회 시스템에 역동성과 유연성을 부여한다면 두 번째의 S 곡선, 즉 경제의 재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저자는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현재의 상황에서는 성장 산업을 타깃으로 하는 신산업 정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교육, 금융, 규제 등 제도를 개선하고 노동·연금·재정 등의 구조 개혁을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새로 생겨나는 분야는 미래 유망 산업이라는 점에서 국민을 설득하기가 낫고 이해관계도 크지 않아 규제 개혁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리빌딩 코리아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를 재도약시킴으로써 미래 세대가 탄 대한민국 경제호가 밝은 대양을 항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변화된 국내외 환경에 따른 피크 코리아 극복을 위한 재도약 프로젝트 요약
주력 산업의 성숙 단계 진입, 뒤처진 첨단 산업 경쟁력, 저출생·고령화, 성장률의 지속적 하락, 정치·사회적 갈등 격화 등 국가 발전 주기상 정점에서 쇠퇴로의 기로에 선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 사회 시스템에 유연성과 역동성을 회복시키는 것이 피크 코리아 극복의 길이다.
·중 간 패권 경쟁의 구도하에 바이든 정부는 경제 안보 차원의 동맹국 간 협력 체계 구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고립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더욱 강화하며 관세 인상 등을 통해 우방국 기업과의 연대를 넘어 미국 국내로의 기업 유치를 추구한다.
차 산업 혁명 시대에 AI 등 첨단 산업 기술은 생산성 향상과 글로벌 시장 선점 효과를 통해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에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투자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반기업 정서 등을 극복하고 정부의 과감한 재정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기 현실화로 ESG 경영이 실천적으로 진화함에 따라 공시가 의무화되고 탄소 국경 조정 제도 등 무역 장벽이 등장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온적 반응에 따른 속도 조절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방향이므로 이해 당사자 간 설득을 통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한다.
중립 위한 국가 온실 가스 감축 목표는 기업 적응 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설정하되, 배출권 거래제 등 시장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설계하여 경제 주체 간 비용을 적절히 분담해야 한다. 기후 및 전환 기술 개발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산업 발전 및 생활·산업 부문 전기화로 에너지는 제3의 생산 요소가 되고 있다. 탄소 중립 및 무역 장벽 극복을 위해 재생 에너지, 원자력 등 적절한 에너지 믹스로 발전량을 빠르게 늘려 가야 한다. 에너지정책 방향이 정권마다 바뀌며 일관성을 가지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요원하다.
저출생 현상은 인류사적 최적화라는 글로벌 트랜드에 초경쟁 사회라는 특이 요인이 복합된 결과다. 선진국들의 경험에 비추어 일·가정 양립 등 정책 추진에도 인구 수준을 유지하는 합계 출산율에 도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연금 재정 등 사회 시스템의 개혁은 불가피하다.
·고령화 추세를 반전시켜 인구 감소를 피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적응·관리 측면의 접근도 필요하다. AI, 로봇 등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 고령 인력의 활용도 제고 및 글로벌 혁신 인재 영입 등 성장 전략을 통해 잠재 성장률 하락을 막고 사회 시스템 조정의 고통을 완화해야 한다.
차 산업 혁명 시대에 창의적 인재 발굴, 적극적 노동 이동 및 창업 등 경제의 역동성 확보를 위해 기본 생존권을 보호하는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다. 기본 소득, 마이너스 소득세 등과 관련한 이념 논쟁은 그만두고 리더십을 발휘하여 재원 확보 및 국민 설득 가능성을 고려한 최선의 방안을 디자인해야 한다.
수요를 늘리기 위해 소득 주도 성장 전략을 활용할 수 있으나 단기적 경기 부양책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생산성 향상에 기반한 장기적 시계에서 추진해야 하며, 통화 및 재정 정책을 장기간 완화적으로 가져가는 부채 주도 성장 전략도 구조 조정만 지연시킨다. 미국 경제의 부활은 2010년대 이후 정권을 넘어서며 추진된 강력한 산업 경쟁력 강화 정책의 결과이다.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자원 배분 기능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다만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시장 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하다. 현대 화폐 이론처럼 과도한 발권력 투입과 이를 통한 정부 채무 부담 경감 시도는 위험한 발상이다.
사고로 산업 정책을 금기시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규제 완화·철폐를 통해 경제의 역동성을 높여야 한다. 첨단 산업 육성, 기후 기술 개발 등을 위한 신산업 정책과 혁신 친화적 규제 시스템 구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산업 성숙기 진입, 녹색 무역 장벽, 생산 가능 인구 감소 등에 따른 피크 코리아 위험은 국토의 비효율적 활용과도 연결되어 있다. 저출생, 지역 소멸, 탄소 중립, 첨단 산업 육성, 규제 완화 등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는 개별적이 아닌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부활이냐의 기로에서 대통령 탄핵,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위기감이 극대화된 지금이 경제 시스템 전환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보수, 진보를 아우르는 실용적인 경제 리더십을 통해 정교하게 설계된 피크 코리아 극복 방안을 수립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기반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선도의 생산성 주도 성장 전략을 골자로 하는 국가 재도약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고 사회 통합을 강화하여 지속 가능한 행복 국가를 만들 필요가 있다.
주도 경제로 전환하기 위해 획기적으로 제도를 개선한다. 출연연의 개편 등을 통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 AI 시대에 맞는 교육 시스템 구축, 혁신 성장을 위한 금융 개혁 및 규제 완화, 서비스업 및 중소기업 제고 등을 추진한다.
디지털 산업, 탄소 중립 산업, 고령 친화 산업 및 과학 기술 관련 산업 등의 분야를 타켓하여 신산업 정책을 추진한다. 규제 완화 및 적극적 재정·세제 지원 등의 측면에서 경쟁국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지원함으로써 과감한 선제적 투자를 유도한다.
인구 증가로 인한 복지 지출 증가, 신산업 정책 추진을 위한 재원 확보, 정년 연장 등 인력의 활용도 확대를 위해 연금·노동·재정 부문의 개혁을 추진한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노동 시장의 유연성과 이중 구조를 개선하며 지출 구조 개선 등을 통해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한다.
책이 제시하는 <리빌딩 코리아 프로젝트> 추진 방향 요약
<리빌딩 코리아 프로젝트> 추진 방향은 다음과 같다.
주도 성장을 통한 선도 경제로의 전환을 위해 디지털 및 그린 산업, 고령 산업, 첨단 과학 기술 산업 등의 분야에 대해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하고 재정 및 세세 지원을 집중하여 투자를 유도하는 신산업 정책을 실시한다.
향상을 선도적으로 도모할 수 있도록 도전적 연구·개발(R&D), 창의적 교육, 생산적 금융, 선순환적 벤처 생태계 구축, 스마트한 규제 등을 위해 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한다.
정책 추진, 4차 산업 혁명 및 고령화 시대에 맞춘 사회 시스템 조정을 위해 재정·노동·연금·의료 등의 분야에 대한 구조 개혁을 추진한다.
유연성과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맞게 기본 생존권을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한다.
주체들의 지대 추구 행위 만연, 구조 조정 지연 등을 피하기 위해 부채 주도 성장으로 흐르지 않는 거시 정책을 수행한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되 규제 혁신 등을 통해 시장 기능이 활성화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신자유주의와 정부 개입주의 간 이념적 논쟁은 무의미하다.
경제가 처한 복합적 문제를 개별이 아닌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솔루션을 찾고 진영, 세대, 이해당사자를 어느 정도 아울러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을 확보하도록 설계한다.
저자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에서 32년여 재직하며 조사국, 금융안정국, 경제통계국, 경제연구원 등 주요 부서를 거쳤다. 한은 재직 중 통화 및 거시 경제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았으며, 다수의 학술 논문과 『경제 전망의 실제: 직관과 모형의 종합 예술』(한티미디어 2011) , 『21세기 자본을 위한 이단의 경제학』(아마존의나비 2017) 등 저서를 발간했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을 거쳐 2023년부터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을 맡고 있으며, 현재는 첨단 산업, 탄소 중립, 국제 통상, ESG 경영, 인구, 지역 성장 등의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정우성 기자 wsj@sporbiz.co.kr



